바다 위로 보이는 ‘마나모’ 섬. 아만풀로의 직원 중 상당수가 마나모 섬 원주민이다. 아만이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방식.
원목과 블루 컬러가 우아하게 배치된 빌라. 필리핀 건축 국가 예술가로 선정된 프란시스코 마노사가 디자인한 객실은 대나무와 야자잎을 활용해 필리핀 전통과 예술성을 고스란히 살렸다.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 착륙해 섬으로 향하는 경비행기에 오른 지 1시간 30분. 직원들의 환대와 따뜻하고 축축한 공기를 가로질러 빌라에 도착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빌라 뒤편과 이어지는 해변 산책로의 흰 모래와 에메랄드빛 바다를 목격한 순간 뛰어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아만풀로’는 1988년에 오픈한 이래 수많은 팬을 거느리며 성장해 온 프리미엄 리조트 브랜드 ‘아만(Aman)’의 초기 정신을 담은 곳이다. 특별한 위치와 현지 문화에 대한 존중, 세심함과 상냥함, 새로운 경험이 진정한 평화로 여행자를 이끌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오키나와와 발리, 몰디브, 하와이의 바다에 조금 익숙해진 내게도 아만풀로가 자리한 파말리칸(Pamalican) 섬의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언덕과 해변 등 최적의 장소에 고르게 자리 잡은 42채의 카시타(Casita)와 2~4개 객실로 꾸려진 18채의 프라이빗 빌라를 포함해 고작 60채의 객실이 25만 평의 섬을 차지하는 만큼 머무는 동안 자연과의 밀접한 교감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호텔의 웰니스 전문가 타냐 (tania.balasch)가 차려준 핑크 후무스. 빌라 타입 객실에 머문다면 프라이빗 셰프의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해안에 상주하는 매부리바다거북들. 사람에게 호의적인 거북이와 함께 수영을 즐겼다.
아만풀로의 다채로운 다이닝 프로그램. 해변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즐기는 비치 바비큐, 석회암 절벽에서 즐기는 와인, 경비행기가 착륙하는 활주로에서 파인다이닝 코스를 맛보는 런웨이 다이닝까지. 가격은 1인 기준 1만~1만5000페소(약 23만~35만 원).
결과적으로 섬에 머무는 내내 경험한 것은 다음과 같다. 매일 먹기 좋게 썬 망고와 용과가 담긴 과일 접시로 아침 시작하기, 일출을 감상하다가 해변에 남은 새들 발자국 좇기, 스노클링을 하다가 구멍 속에서 알을 품고 있던 거북이와 눈 마주치기, 혹은 함께 수영하던 거북이가 ‘어푸’ 하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 때의 숨소리 듣기, 필리핀 대나무(카와얀)로 만든 플로팅 보트 위 선베드에 누워 일광욕하기, 그러다가 서프보드 위에 올라타 대단한 항해자라도 된 것처럼 비장하게 노 젓기, 자전거를 타고 섬을 달리다가 산책로에 등장한 물왕도마뱀에게 인사하기, 제트보트 타고 바다 한복판에 뛰어들기, 스파 라운지 통창을 통해 보이는 숲속의 둥지로 날아드는 박쥐들의 날갯짓에 감탄하기, 저녁 식사 중에 천체망원경으로 행성 관찰하기…. 조금 더 용감했다면 건너편에 자리한 마나모 섬에서 주민들과 피크닉을 즐기고, 카이트 서핑을 하거나 바닥이 크리스털로 된 카약 보트를 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토록 자연을 만끽하면서도 안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고급 리조트에 버틀러 서비스를 최초로 도입한 ‘아만’답게 머무는 내내 사려 깊게 따라오던 직원들의 친절함 덕분일 터.
파말리칸 섬을 통째로 차지한 아만풀로의 자연.
자연의 소중함을 한 번 더 깨닫게 된 여행자라면 환경을 위한 아만풀로의 노력에 마음을 쓸어내리게 될 것이다. 수년 전에는 직접 식수정화시설을 설치해 플라스틱 물병을 없앴고, 지금은 자체 전기발전 시설을 준비 중이니까. 리조트의 식사는 다소 반복적인 패턴을 띠기 마련이지만 아만풀로에서는 그럴 염려가 없다. 돼지와 닭고기를 100% 활용한 전통 요리부터 신선한 굴과 회, 리조트 내 정원에서 기른 허브들을 활용한 프랑스 & 이탈리아 요리와 직접 구워낸 발효 빵 등 이곳 주방은 멈추는 법이 없으므로. 얼마 전 부티크 와이너리와 함께 협업해 선보인 ‘아만’ 샴페인을 곁들이는 것도 잊지 말 것. 오직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술이니 말이다. 아만풀로를 떠난 지금도 내 등에는 섬의 태양이 남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언젠가 돌아가고 싶다고. ‘자꾸 돌아오게 되는 섬’이라는 뜻을 가진 ‘파말리칸’의 이름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