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엘르보이스] 똥개 언니의 편지

누가 봐도 똥개 비주얼, 사랑스러운 정원이와 함께 하는 비혼세의 일상.

프로필 by 곽민지 2023.10.10
똥개 언니의 편지
“이보다 더한 지옥을 본 적 없습니다.”
얼마 전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발견된 번식장을 본 한 활동가가 SNS에 올린 말이다. 그곳에서 발견된 1500여 마리 개들의 상태는 처참했다. 식사 시점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텅 빈 위, 분비물과 변으로 완전히 막혀버린 항문, 변형된 관절과 기능할 수 없는 상태가 된 눈과 귀. 냉동실에서는 문구용 커터 칼로 배가 갈린 모견과 제각각의 표정과 동작으로 얼어붙은 자견의 사체들이 나왔다. 이곳은 국가가 허가한 번식장이었다.
 
©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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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에는 대규모 식용 개 도살장이 적발돼 SBS <TV동물농장>에 방영됐다. 앞서 소개한 곳에서는 개를 작게 만들기 위해 개량하다 콧구멍이 너무 작아져 호흡곤란이 수시로 오는 강아지가 발견됐는데, 이 식용 개 도살장 관련 인터뷰를 통해 더 큰 개를 교배시켜 더 많은 고기를 얻게 만든다는 증언이 나왔다. 인스타그램에 보이는 예쁜 강아지를 판매하기 위해 더 작게 만들거나, 더 많이 도축할 수 있게 크게 만들거나. 사이즈와 종이 어떻든 그저 다른 지옥이 배정돼 있을 뿐이었다.
 
나와 함께 사는 김정원은 평생 실외에서 생활하다 3세(추정) 때 구조돼 임시보호를 거쳐 나에게 왔다. 김정원은 원래 산을 지키는 개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10kg이 조금 안 되는 이 강아지는 겁이 많아 처음에는 어린아이만 봐도 벌벌 떨었다. 밖에서 견뎌낸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런 것을 추측하고 복기하기에 우리가 가진 시간이 너무 짧아 그런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김정원에게 눈과 입을 맞추고 심호흡을 할 뿐이다. ‘누렁이’ ‘시골개’ ‘똥개’ 비주얼 그 자체인 정원이는 겨울엔 패딩을 입고 여름엔 우리 집 가장 시원한 자리를 차지한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 반려견 순찰대로 선발됐고, 용산구 뉴스레터에도 소개됐다. 정원이는 공장에서 나온 티컵 강아지와 개 도살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강아지, 그 모두인 존재다. 출산 경험이 있는 모견이고, ‘잡종 누렁이’라 집 안으로 평생 초대되지 못하고 마당을, 컨테이너를, 어느 음식점 뒤 공터에 매인 채 키워졌다가 산 지킴이가 될 뻔한 똥개다. 김정원은 옷을 입고 외출할 때는 ‘애완견’ 취급을 받지만, 목줄만 하고 다닐 땐 ‘이런 애도 집에서 키워요?’ 소리를 듣는다. 반려견 순찰대 조끼를 입고 있으면 동네 어르신들에게 기특하다는 칭찬을 받지만, 조끼가 없을 때는 느닷없이 “똥 싸지 마!”라는 소리를 듣는다. 외모와 복장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이 사회의 습성은 가장 약자인 동물을 대상으로 할 때 가장 노골적으로 극대화된다.
 
© Jessica 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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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한다. 똥개 소리가 싫어 정원이에게 유명 브랜드 로고가 크게 박힌 패딩을 입히고, 순찰대에 지원해 조끼를 입히는 일이 이 사회에 김정원의 존재를 승인받기 위해 버둥대는 나의 세레모니는 아닌지. 보디 포지티브를 외치면서도 중요한 모임에서는 반드시 화장하고 늘 옷가게에서 익숙한 기준으로 고민을 거듭하는 내가 여기 그대로 있다. 그래서 입 주변이 까만 내 사랑 누렁이를 보고 있으면 있는지도 모르는 미래로 이 아이를 안고 도망치고 싶다. 우리 애도 꽤 반려견 같지 않냐며 힘껏 전시하는 일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을 해야 정원이의 세상을, 곽민지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잘 모르겠으니 일단 이 이야기를 쓴다. 이 아이가 나에게 열어젖힌 세상을 지면에 올려본다. 우연히 마주친 인스타그램 포스팅으로 결성된 우리 가족처럼 당신과 우리의 세계를 함께 바꿀 어떤 씨앗으로 어딘가에 잘 숨은 채 배양되다가 피어나길 바라며. 사지 마세요, 먹지 마세요, 버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곽민지
다양한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걸어서 환장 속으로>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를 썼다.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