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면과 수많은 직선이 수직 교차하는 집 || 엘르코리아 (ELLE KOREA)
CULTURE

새하얀 면과 수많은 직선이 수직 교차하는 집

비주얼 디렉터 조미연이 만들어 낸 가장 미니멀한 공간.

이경진 BY 이경진 2023.05.25
 
화이트 오크우드 컬러의 책장으로 한 벽면을 채운 거실.

화이트 오크우드 컬러의 책장으로 한 벽면을 채운 거실.

HPIX 도산과 로스트 성수, 양재동의 카페 피크와 신사동 가로수길의 로우 클래식, 신당동의 더 피터 커피 등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로 사랑받는 공간을 무수히 탄생시킨 디렉터 조미연의 집은 놀라울 정도로 텅 비어 있다. 그리고 이는 또 한 번 놀랍게도 그녀의 일곱 살 쌍둥이 자녀들이 원했던 ‘하얗고 호텔 같은 집’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벽에 걸린 작품은 섬유예술가 윤정희의 ‘텐션(Tension)’.

벽에 걸린 작품은 섬유예술가 윤정희의 ‘텐션(Tension)’.

예전 집은 맥시멀리즘에 가까웠어요. 온갖 물건에 둘러싸여 살았죠.
4년 전, 서울 신당동에 문을 연 더 피터 커피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던 절친한 친구가 클라이언트였다.
 
복도 끝에 놓인 의자는 럭셔리 아이템과 일상용품을 결합해 독특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아티스트 사라 콜먼(Sarah Coleman)의 작품. 프라다 백으로 만든 폴딩 체어다.

복도 끝에 놓인 의자는 럭셔리 아이템과 일상용품을 결합해 독특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아티스트 사라 콜먼(Sarah Coleman)의 작품. 프라다 백으로 만든 폴딩 체어다.

동양적 모티프를 넣고 싶다고 하기에 함께 교토 여행에 나섰어요. 경주와 부산도 다녀왔습니다. 고재와 고가구, 대들보를 닮은 천장 디테일까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접목하려고 했어요. 돌 소품과 콩자갈 바닥 등 함께한 여정에서 골라낸 아이디어가 더 피터 커피의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서 콩자갈 바닥은 흔하지 않았죠.
 
선과 면의 다중적이고 경쾌한 교차. 마이너스 몰딩부터 구멍을 뚫어 매립한 실링 램프까지. 실내 구조를 이루는 요소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테두리를 없앴다.

선과 면의 다중적이고 경쾌한 교차. 마이너스 몰딩부터 구멍을 뚫어 매립한 실링 램프까지. 실내 구조를 이루는 요소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테두리를 없앴다.

놀랍게도 조미연은 인테리어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다. 이전에는 패션 회사 R&D 업무를 15년 동안 수행했다. 어느 분야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운 자극과 유행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무리들 속에 한두 개 시즌을 앞당겨 작업해 온 세월 덕분일까. 그녀가 완성한 프로젝트의 감각은 항상 시류보다 한두 걸음 빨랐다. “아직까지도 패션을 좋아하고, 남편 역시 패션 쪽 바이어이다 보니 감각적으로 혹은 직감적으로 시류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HPIX 도산이 등장하기 전, 가구를 판매하는 쇼룸의 레이아웃은 평면적이었다.
 
플로어 램프는 루미나(Lumina)의 다피네 테라(Da Phine Terra). 소파는 볼리아(Bolia)의 코시마(Cosima).

플로어 램프는 루미나(Lumina)의 다피네 테라(Da Phine Terra). 소파는 볼리아(Bolia)의 코시마(Cosima).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의 한눈에 쇼룸의 모든 제품을 볼 수 있었다. 로스트 성수 프로젝트를 앞두고는 베를린을, 더 피터 커피의 작업을 위해 교토를 다녀온 그는 HPIX 도산 프로젝트에 앞서 멕시코시티 여정에 나섰다. “HPIX 대표님이 예약해 준 덕분에 루이스 바라간 하우스 앤 스튜디오 같은 곳도 갈 수 있었어요. HPIX 도산처럼 혹은 지금 제 집처럼 실내에 확실한 동선을 만들고 유도하는 문법은 바라간 하우스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조미연은 HPIX 도산이 전개하는 신진 작가들의 전시를 직접 설치하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백설기처럼 겉과 속이 하얀 집, 최소한의 가구만 자리 잡은 공간에서 홀연히 아트워크 한 점이 클라이맥스처럼 한쪽 벽에 걸려 있는데, 이는 HPIX에서 전시 설치를 맡으며 인연을 맺은 윤정희 작가의 작품이다.
 
수납공간의 정교한 그리드가 돋보이는 안방.

수납공간의 정교한 그리드가 돋보이는 안방.

아침 10시에 만나 저녁 7시가 될 때까지 작품을 설치하더라고요. 실로 구조물 전체를 겹치지 않게 감아야 하는 작업이었죠. 작품을 들일 땐 작가의 성품과 성향도 알게 돼요. 우리 집과 너무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도 그 작가의 결이 우리와 맞지 않으면 그 작품을 집에 들이고 싶지 않아요.
 
양면형 슬라이드 미러 월. 다이닝 룸부터 아이들의 공부방까지 오가며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나누고 합친다.

양면형 슬라이드 미러 월. 다이닝 룸부터 아이들의 공부방까지 오가며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나누고 합친다.

의아하리만큼 텅 빈 집. 비주얼 디렉터로서 흥미로운 공간을 수없이 창조해 낸 그의 숨겨둔 욕구가 ‘어떤 것도 하지 않은 공간’인 건 아닐까.
 
직관적이고 호불호가 강해서 항상 임팩트 있는 공간을 지향해 왔어요. 하지만 저희 집을 작업할 때는 조금 달랐죠. 가족과 함께하는 집은 각자 다른 사람들, 각각의 만족도를 극대화해야 하는 공간이니까요. 가족의 바람을 적용하다 보니 점점 더 단순한 집이 됐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미니멀하게 만들 수 있는 집은 우리 집뿐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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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경진
    사진 김재훈
    아트 디자이너 박한준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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