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드 고유의 이야기를 연구하는 라보토리
」 라보토리가 프로젝트를 맡기 전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들의 디자인과 브랜딩 언어를 구축하는 거였다. 정진호 · 박기민 소장을 주축으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공간의 이유와 근거를 찾은 것. 이를 하나의 언어로 재구성한 라보토리는 고유의 디자인 철학을 ‘프리즘’에 비유한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좋은 디자인에 대한 정의가 분명하면 어떤 빛이 관통하더라도 다양한 컬러를 펼쳐내는 프리즘처럼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미래적인 도시 풍경을 상상해 구현한 중식당 Fei. LED 디지털 타이포그래피와 그리드의 조화를 통해 화려한 도시의 밤 전경을 묘사했다.
무신사는 온라인 기반으로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강력한 팬덤을 가진 브랜드다. 무신사 스탠다드가 어떤 공간인지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을 때 첫 번째 오프라인 스토어 프로젝트를 의뢰 받았다. 우리는 무신사 스탠다드가 모든 시간의 중심에 있기를 바랐다. ‘타임리스’를 키워드로 공간의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해 각 층을 과거, 현재, 미래라는 테마로 구성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을 관통하는 미디어 타워는 무신사 스탠다드의 시간을 연결한다.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강남점은 시간 개념에 집중하되 공간 언어로 속도감을 변주했다. 여러 층의 미디어 월이 교차하면서 시간 개념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다. 홍대점은 의도적으로 스토어 바깥에서 돋보이도록 디자인했는데, 이유는 주변이 조용해서다. 반대로 강남점은 화려한 건물이 많고 거리가 시끌벅적하다. 그래서 거리의 모든 빛을 흡수할 수 있는 마감재를 활용했다. 강남역 부근은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라 사람들을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느낌으로 바닥과 천장을 디자인했다.
무신사 스탠다드와 강남점. 층별로 시간의 속도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2022년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인크커피는 브랜드 기획부터 전개, 웹페이지와 패키지 그리고 공간까지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인크커피는 매달 아프리카에서 원두를 직접 공수하는 한국의 1세대 커피 전문가 알렉스 최의 큐그레이더와 함께 시작했다. 훌륭한 품질의 커피가 보장된 상황이었다. 전문적인 커피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거의 커피 전문가가 돼야 했다. 그래서 역사부터 파고들기 시작했다. 소수 귀족을 위한 음료였던 커피가 계급과 직업의 귀천 없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하나의 문화가 됐을땐 그 중심에 광장과 시장이 있었다. 커피는 당시 사람들에게 이야기꽃을 피우게 하는 도구이자 콘텐츠였다. 공간 컨셉트를 ‘커피 시장’으로 제안하고 ‘테이크 더 오리진(Take The Origin)’이라는 슬로건을 개발했다. 인크커피는 가산동 오피스 상권에 있다. 주중에 사람이 많고 카페가 많은 동네였다. 어떻게 하면 공간 집중도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원형의 서클 라운지를 만들어 시장 느낌을 표현했다. 인크커피는 주말에도 사람이 북적이는 하나의 여행지로 거듭났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좋아하던 공간의 뿌리를 계속해서 찾아보니 한국 건축에서 온 거였다. 서양 건축은 수직적 기둥이 있고, 신전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반대로 한국 건축은 수평적 건축이다. 자연과 함께하려는 시도다. 우리는 한국 건축의 특징을 모던하게 풀어내고 있다. 자연 요소를 내부로 끌어들여 건축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을 만들고 싶었다. 몸 전체의 감각인 ‘몸각’을 느낄 수 있는 공감각적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라보토리를 찾는 사람들에겐 간절한 꿈이 있다. 그 마음을 절대로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함께 공감하면서 작업해야 공간을 온전하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출발선은 ‘건강한 우리’이기에 팀원들과 어떤 식으로 호흡을 맞춰나갈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지난해엔 근로기준법 안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회사 시스템을 재정비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순풍보다 강풍에서 연이 더 높이 오르는 걸 알고 있기에 잘 자리 잡는 게 목표다.
스테이지 바이 고디바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역사를 모던하게 해석했다.
무신사 스탠다드 강남점과 홍대점의 디지털 미디어는 시간을 공간언어화하는 매개체로 활용됐다.
인크커피는 공간에 사람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원형으로 증축한 후 시간별로 달라지는 빛을 연구해 공간의 쓰임을 규정했다.
빛이 안 드는 곳은 원두를 보관하는 창고와 로스팅 공간으로, 햇빛이 드는 곳은 사람들이 교감할 수 있는 카페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