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고양이와 잉가 상뻬의 작업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CULTURE

두 마리 고양이와 잉가 상뻬의 작업실

그녀의 흐트러진 작업실은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ELLE BY ELLE 2023.04.15
 
헤이(Hay)를 위해 디자인한 ‘마틴(Matin)’ 램프가 천장에 고정돼 있다.

헤이(Hay)를 위해 디자인한 ‘마틴(Matin)’ 램프가 천장에 고정돼 있다.

생마르탱 운하 근처에 자리 잡은 디자이너 잉가 상페(Inga Sempe′)의 스튜디오는 빨간 벽돌과 블루 컬러 벽들의 경쾌한 믹스가 회색빛이 만연한 파리의 겨울에 잠시나마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 벽돌 건물 1층에 있는 스튜디오는 잉가의 모든 상상이 작업으로 이어지는 영감의 장이다.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보이는 원형 계단은 그녀의 아파트와 이어진다.
 
잉가의 아틀리에는 모든 가구가 나무로 돼 있다. 블랙 우드 프레임의 빈티지 전신거울 안으로 커피를 만들고 있는 잉가 상페의 뒷모습이 보인다. 천장 램프는 베스트베르크(Wästberg)를 위해 디자인한 ‘Sempé w103’.

잉가의 아틀리에는 모든 가구가 나무로 돼 있다. 블랙 우드 프레임의 빈티지 전신거울 안으로 커피를 만들고 있는 잉가 상페의 뒷모습이 보인다. 천장 램프는 베스트베르크(Wästberg)를 위해 디자인한 ‘Sempé w103’.

항상 집에서 일해 왔기 때문에 8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완벽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파리에서 주거 공간과 스튜디오를 한 빌딩에서 찾는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죠.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편이라 출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는 건 제 생활 패턴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잉가는 스튜디오 안팍에서 많은 식물을 기른다. 아틀리에에 살고 있는 고양이 중 한 마리인 니투슈.

잉가는 스튜디오 안팍에서 많은 식물을 기른다. 아틀리에에 살고 있는 고양이 중 한 마리인 니투슈.

세 명의 어시스턴트와 고양이 니투슈(Nitouche), 우페트(Oupette)와 함께 사용하는 이곳은 그녀의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주는 공간이다. 언뜻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안에 직관적 질서가 느껴지는데, 이는 카테고리 없이 작은 이미지의 조합으로 이뤄진 그녀의 홈페이지를 떠올리게 한다.
 
무심하게 정렬된 잉가의 디자인 아카이브와 작품들.

무심하게 정렬된 잉가의 디자인 아카이브와 작품들.

디자이너 스튜디오는 이렇게 정신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그림을 그리고 만드는 과정이 반복되는 곳이니까요. 개인적 생각으로 온통 하얗거나 까만 먼지 하나 없는 디자이너 스튜디오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무실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말이죠.(웃음)
 
스튜디오와 잉가의 집을 연결하는 원형 계단이 스튜디오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스튜디오와 잉가의 집을 연결하는 원형 계단이 스튜디오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잉가 상페는 파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디자이너(상페의 딸이기도 하다)로 ENSCI(E′cole Nationale Supe′rieure de Cre′ation Industrielle)를 졸업한 후 마크 뉴슨, 카펠리니를 비롯한 다양한 디자인 스튜디오와 브랜드에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00년 본인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시작한 후 리네 로제(Ligne Roset), 헤이(Hay), 루체플란(Luceplan), 알레시(Alessi)등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위한 가구와 오브제를 디자인하고 있다. 잉가의 스튜디오 중앙에 있는 커다란 드로잉 테이블은 두 마리의 고양이와 나눠 쓰는 곳이기도 하다.
 
창가에는 스웨덴 브랜드 아티클(Articles)을 위해 디자인한 ‘트리포트(Tripot)’ 스툴. 무스타슈 에디션을 위해 디자인한 ‘바푀르(Vapeur)’ 램프의 프로토타입이 놓여 있다.

창가에는 스웨덴 브랜드 아티클(Articles)을 위해 디자인한 ‘트리포트(Tripot)’ 스툴. 무스타슈 에디션을 위해 디자인한 ‘바푀르(Vapeur)’ 램프의 프로토타입이 놓여 있다.

디자인을 시작할 때는 특정 아이디어 없이 끊임없이 스케치해요. 다른 디자이너들은 특별한 생각이나 주변 사물, 여행에서 영감을 얻곤 단숨에 디자인한다는데, 저는 그냥 앉아서 무언가를 계속 그리죠. 직관적으로 일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나아가야 할 디자인의 방향이 잡히게 되죠. 정말 말도 안 되게 이상한 그림을 엄청나게 그리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려요. 디자인을 완성하는 데 꽤 느린 디자이너죠.
 
이런 드로잉 아카이브는 작업실 책꽂이에 연도별로 보관돼 있다. 삼면이 유리창인 이곳은 한겨울에도 빛이 들어오는, 디자이너에게는 완벽한 공간이다. 여기에 그녀가 좋아하는 식물이 안팎으로 가득하다. 또 다른 작업실 한쪽에는 각종 재료와 도구가 가득 차 있다. 그녀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고 그 느낌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그 안에서 디자인의 모든 프로세스가 가능하다. 잉가의 작업은 큰 가구보다 램프나 오브제 등 비교적 크기가 작은 오브제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커다란 가구는 작은 오브제보다 훨씬 더 디자인하기 힘들어요. 작은 샘플로 봤을 때는 예쁘고 맘에 드는데, 막상 실물 크기로 접할 때는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실망할 때가 많거든요. 세상에는 하기 싫지만 하게 되는, 그리고 꽤 잘해내게 되는 일이 많잖아요. 저에겐 가구 디자인이 그런 셈이죠.
 
아틀리에 곳곳에는 다양한 프로토타입과 재료들이 즐비하다.

아틀리에 곳곳에는 다양한 프로토타입과 재료들이 즐비하다.

곧 선보일 헤이의 무스크통(Mousqueton) 램프는 그녀의 디자인 세계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제품이다. 충전이 가능한 캠핑용 램프를 기획했다가 시작된 램프는 실내외에서 모두 사용 가능하고, 메탈로 만들어 무엇보다 견고함이 눈에 띈다. 오픈 가능한 손잡이로 나뭇가지에 걸 수도, 램프 아래쪽에 나뭇가지를 끼워 세워놓을 수도 있어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다.
 
벽에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벽에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캠핑용 램프를 만들려고 했는데 사실 캠핑을 해본 적도, 그다지 관심도 없지만 캠핑을 어떻게 하는 건지는 알고 있었죠. 용도를 모르는 오브제는 디자인하지 않거든요. 저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견고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스케치해 온 잉가의 드로잉 아카이브는 아틀리에 한쪽에 월별 · 연별로 정리돼 있다.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스케치해 온 잉가의 드로잉 아카이브는 아틀리에 한쪽에 월별 · 연별로 정리돼 있다.

호기심 많고 비판적 정신을 가졌으며,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동시에 유머러스한 잉가의 성격은 그녀의 디자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디자이너들이 흔히 말하는 영감의 대상이나 여행의 감동도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방학을 맞는 아이들이 없다면 자신의 규칙적인 리듬을 방해하는 바캉스를 떠나고 싶은 마음도 없단다.
 
일상의 리듬이 깨지면 복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에요. 그림을 그리면서 영감을 얻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 바캉스 동안엔 아예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전 일할 때만 그림을 그리거든요.
 
곧 출시될 헤이의 ‘무스크통(Mousqueton)’ 램프를 들고 있는 잉가.

곧 출시될 헤이의 ‘무스크통(Mousqueton)’ 램프를 들고 있는 잉가.

이렇듯 주변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 나가는 그녀이기에 디자인 작품 역시 자신의 색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 얘기하는 것엔 관심도 없고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잘하는 일을 제 방식대로 잘해나가고 있거든요. 이것이 디자이너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일 수도 있겠네요.
 
베스트베르크를 위해 디자인한 ‘Île/ w153’ 램프.

베스트베르크를 위해 디자인한 ‘Île/ w153’ 램프.

잉가 상페에게 아름다움이란 가볍고 어긋나 있으며, 놀라움을 주는 것이다. 디자인업계의 최고 기술을 이용해 삶에 위트와 활력을 주는 오브제를 만드는 것, 아름다움과 기능성의 밸런스를 한데 모으는 것, 그리고 현대적인 것과 오래된 것 사이에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그녀가 디자이너로서 가진 신념이다.
 
벽돌과 블루 타일, 커다란 통창과 화분의 조화가 인상적인 아틀리에 외관.

벽돌과 블루 타일, 커다란 통창과 화분의 조화가 인상적인 아틀리에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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