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화 작가가 작업 중인 대형 드로잉 작품. 두 사람이 즐겨 쓰는 백색과 청색의 조화가 캔버스에 담겨 있다.
세상의 모든 애틋한 시절은 찰나지만 그래서 더 귀하고 아름답다. 24절기 중 여덟 번째 절기로, 만물이 성장해 세상에 가득 찬다는 소만. 학교 선후배로 만나 부부가 되고 함께 작업을 이어가는 김덕호 · 이인화 작가에게 그들의 집이자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소만’은 그런 의미다.
해가 잘 드는 시간이면 이인화 작가가 추구하는 빛의 투과와 중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릇의 패턴이 작은 창 같기도 하다.
그들이 양구에 오게 된 것은 고려시대부터 백자 생산을 해온 백토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양구백자연구소에서 재료를 탐구하던 차에 박수근미술관 부지에 그들만의 공간을 세우게 되면서 양구에 정착한 것이다. 건축가 이현호가 설계한 집 겸 스튜디오는 1층은 작업실, 2층은 집으로 구성됐다.
정확한 질감과 컬러를 확인하기 위해 부부가 수없이 시도하고 고민한 흔적들.
2층의 살림 공간을 제외한 자리에 큰 부엌과 너른 테이블이 놓인 다이닝 룸을 만들었어요. 우리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고, 가끔 오픈 스튜디오나 강원도에서 재배된 차를 나누는 다회가 열리기도 하죠.
도자의 표면을 섬세하게 여러 번 깎아 패턴을 만드는 김덕호 작가의 작업.
부부는 각자의 이름으로 작품활동을 하지만 사실상 모든 작업을 함께하고 있다. 서로의 작품에 영감을 주며 같은 양구 백토를 사용하지만 각자의 백자는 조금씩 다르다. 김덕호 작가가 다른 색의 흙을 겹치고 도자의 표면을 깎아 섬세하게 문양을 만든다면, 이인화 작가는 중첩과 투과를 통해 면면이 이어진 조각보 같은 패턴을 백자 속에 완성한다. 둘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데는 색깔도 한몫했다.
부부는 백색과 청색의 점토를 겹쳐 자연스러운 패턴을 만들어낸다.
모두 백자의 정통이라 할 수 있는 청색의 흔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는 백색과 청색이라는 컬러 팔레트 속에서 자유롭게 새로움을 생산해 낸다. 올봄에는 일상에서 사용하기 좋은 식기들을 두루 판매하는 온라인 스토어를 개설할 예정이다. 그들이 실생활에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많은 이들이 제작을 요청한 것이다.
스튜디오 소만의 2층 부엌 겸 거실. 부부의 작품을 전시하고 다양한 모임이나 오픈 스튜디오가 열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개설해 양구의 사계절, 푸른 눈의 반려 고양이 진주, 부부의 작업생활을 담고 있는 유튜브 채널을 확장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정 중 하나다. “양구에서 작업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흘러요. 놓치면 사라지는 아름답고 흥미로운 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남기고 싶습니다.” 그들에게는 백자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소만의 시간인 셈이다.
고도의 집중과 선택을 해야 하는 도예 작업의 매 순간을 함께하는 도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