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바 알토와 브루노 맛손의 미학, 탈로 제주
」 제주식 가옥을 근대 북유럽의 모더니즘 디자인으로 채운 탈로 제주.
길고 춥고 어두운 북유럽의 겨울이 자아낸 미학이 제주식 가옥을 입었다. 30년 된 서울 도심의 한 빌라를 알바 알토가 창립한 아르텍 디자인의 가구와 조명, 식기로 채웠던 탈로 서울이 제주로 향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주 공항에서 차로 20분 남짓 달리면 상업 공간 하나 없이 고요한 마을로 들어선다. 푸근한 마을 보호수와 이웃한 작은 집, 탈로 제주다. 공동대표인 고광수의 증조할아버지 댁이었던 건물을 개조했다.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각기 다른 네 가족을 차례대로 품어왔어요. 시간이 축적된 만큼 곳곳이 분별없이 필요에 따라 고쳐지기도 하며 10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세심하게 손보면 여전히 부족함 없는 공간이 되리라 생각했죠.
툇마루와 상방, 큰 구들방, 정지 등 구옥의 구조는 분명히 읽을 수 있게 남겨두면서, 바깥채와 안채는 작은 복도로 연결해 확장을 꾀했다. 툇마루 아래에는 구옥에 있던 오래된 타일 바닥을 그대로 두고, 전면 유리를 더해 현관을 만들었다. 알바 알토와 브루노 맛손이 설계한 집에서 볼 수 있는 개방형 양면식 수납장이 거실과 부엌 사이의 경계에 있다.
붓으로 그린 듯한 서까래 아래로 햇빛을 가득 머금은 따뜻한 질감의 푸른 도기 타일이 바닥을 채운 모습에선 일렁이는 제주 바다와 오름의 완만한 능선이 연상된다. 무엇을 얼마나 남겨두고, 어떤 것을 고쳐 쓰며 제주 옛집에 근대 북유럽의 모더니즘 스타일을 적용할지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다.
브루노 맛손, 알바 알토, 한스 베르거, 시그바르드 베르나도트, 에릭 한센 등 북유럽 디자이너의 가구와 조명, 소품이 제주의 옹기 항아리, 주병, 구덕 등의 골동 사물과 사이 좋게 어우러진 모습은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서까래와 빈티지 아르텍 조명 A810은 그윽한 자태로 어울리고, 알바 알토가 디자인해 그가 설계한 건축물에 사용했던 빈티지 도어 핸들은 이미 수천 번의 손길이 닿아 반들반들해졌다.
100년이 다 된 집, 오래 쓴 빈티지 가구와 조명, 오래된 책, 낡은 손잡이. 온통 낡은 것투성인 집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온기야말로 여행자에게 가장 큰 쉼이 되지 않을까. 탈로 제주의 가장 끝 방인 바깥채 침실에는 에밀리 스피백이 쓴 〈낡은 것들의 힘〉이 놓여 있었다. 브루노 맛손이 디자인한 빈티지 미나(Mina) 체어에 앉아 오래된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에 얽힌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읽으며 탈로 제주가 들어선 이 집의 100년 산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브루노 맛손의 다이닝 룸과 같은 조합으로 테이블과, 의자, 조명을 구성한 탈로 제주의 다이닝 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