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운전자의 기쁨과 기쁨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엘르보이스] 운전자의 기쁨과 기쁨

나를 운전자로 만든 것은 우정과 용기였다. 본격 운전영업기.

이마루 BY 이마루 2023.03.07
운전자의 기쁨과 기쁨
사람은 어떻게 운전자가 되는가. 운전면허를 땀으로써?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면허를 취득한 이후에 시작된다. 주변 지인을 무작위로 취합한 결과 운전자와 장롱면허자, 비면허자가 거의 1:1:1 비율로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장롱면허자는 결코 운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운전자와 비운전자의 실질적 비율은 1:2로 볼 수 있다. 운전면허가 있는 것과 없음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적어도 운전면허를 딴 사람은 장롱면허자로 남을 것인가, 운전자가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운전면허 취득인이 운전자의 길을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가? 누군가는 ‘자차’라고 대답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내 경우는 용기와 친구였다. 나는 면허시험에 두 번 떨어졌다. 거의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첫 운전면허시험 날은 대선일이었고, 선거 전날 밤, 심란한 마음에 지인들과 술을 많이 마셨다. 다음날 흐릿한 컨디션으로 시험을 치르면서 ‘설마 떨어지겠어?’ 하는 생각으로 닥쳐올 개표 방송 결과에나 신경 썼다. 그리고 낙방한 후 멍하니 집에 돌아와 초저녁부터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두려워했던 결과가 현실이 돼 있었다. 낙방의 슬픔은 곱씹을 틈도 없었다. 이날 운전면허 취득에 실패한 데 좀 더 집중했다면 한 번 더 떨어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시험비가 얼만데, 멍청한 놈! 나는 세 번째 시험에서 비로소 운전면허자가 됐다. 당시 나는 차가 없었고 셔틀버스를 타고 매일 출판단지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장롱면허자가 될 훌륭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렵사리 취득한 면허를 장롱에 재우고 싶지 않았다. 겁도 없이 친구들과 렌터카 여행을 추진했는데, 우리 그룹에 운전 숙련자가 한 명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내 주변에서 유일하게 진실한 의미의 ‘운전자’였는데, 여행 때마다 도심을 벗어나면 내게 운전대를 넘겨주었다. “자, 해봐.” 그가 나를 ‘운전자’로 키웠다. 초반에 내가 핸들을 잡으면 조수석에서 측면 손잡이를 꽉 쥐고 긴장했던 그가 점점 여유 있게 휴대폰을 보거나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마침내 조수석에서 잠든 그를 봤을 때 합격 도장을 받았음을 알았다. 어엿한 운전자가 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계절마다 구례, 삼척, 강릉, 영월 등 많은 도시를 다녔다. 그사이 나는 국제면허증을 만들 수 있는 연차가 됐다. 다음 도전은 해외였다. 일본 여행 일정 중 하루만 차를 렌트해 보기로 했다. 일본 운전자들은 너그러울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감행했는데, 어느 정도 틀리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게 한겨울의 홋카이도라는 점이었다.
 
눈이 한없이 내리는데 도로 양측에 눈이 제방 높이로 쌓여 있었고, 차선도 보이지 않아 어디를 어떻게 달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운전석과 주행 도로가 한국과 반대인 점도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방향지시등을 켤 때마다 와이퍼를 대신 작동시키며(이것도 반대다) 혼란에 휩싸여갈 때 비면허자인 동행자는 조수석에서 평온하게 있었다. 그의 신비로운 낙관에 힘입어 홋카이도 최북단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새하얀 풍경 속을 운전한 일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하지만 눈의 도시 홋카이도에서 북쪽 해안의 곶 하나를 목적지로 찍고 무작정 달렸던 경험은 내게 영구히 운전 욕심을 갖게 했다. 관광버스도, 관광객도 없는 얼어붙은 해안을 뚫고 나아가는 쾌감은 그만큼 특별했다. 차를 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행 외의 일상에서는 오래도록 뚜벅이였다. 하지만 일본 시골 여행에 재미가 붙어 오키나와, 시코쿠, 나가노, 돗토리, 도야마, 야쿠시마까지 많은 지역을 렌터카로 다녔다. 
 
자동차 여행이 아니었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길을 지금도 소중하게 회상한다. 시마네 현의 어느 시골마을 깊숙이 자리한 샘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그렇게 맑고 작은 물을 볼 수 있다니, 용감한 렌터카 운전자여서 정말 다행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금은 3년 차 자차 운전자다. 차가 생기니 ‘운전자의 길’에서도 다음 단계가 펼쳐졌다. 생활 운전자다. 여기부터 자동차 관리와 보험, 정기 점검과 수리 등 즐겁지 않은 과정들이 함께했다. 지긋지긋하게 빽빽한 서울이라는 도시가 무대가 되자 다른 의미로 긴장됐다. 여행지와 생활권의 차이일 수도 있다. 함께 달리는 차들은 물론, 주유소며 정비소 직원 등 앞으로 일상에서 운전자로서 나와 연루될 모든 동료 시민에게 어쩐지 합격점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조수석에서 나를 지켜봐주던 다정한 친구와는 달리 사무실 경비원은 심보가 사나웠다.
 
지시에 따라 정확히 차를 대야 하는 좁은 주차공간에서 두세 번만 왔다 갔다 해도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긴장해서 ‘한 번에 잘 대야지’ 했는데 어느 날 다른 아저씨가 주차할 때는 네댓 번을 헤매도 묵묵히 지켜보는 꼴을 보고 나서 의기소침하기를 멈출 수 있었다. 사람은 어떻게 자차 운전자가 되는가. 차를 구입하면서부터? 그렇지 않다. 여기서부터 또 무언가가 시작된다. 새벽에 벌떡 일어나 소복이 쌓인 눈을 털어내는 경험, 공업사를 돌며 견적부터 수리까지 원활히 마치는 경험 등이 쌓였다. 덧붙여 마음도 강해졌다. 생활 운전자가 된 뒤 운전대를 잡은 내게 의심과 못미더움의 눈초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싶어 하는 남자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기운 빠지고 불쾌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극복했다. 어쩌라고? 나는 ‘무사고’ ‘무딱지’에 주차도 잘한다. 불쾌한 아저씨들보다 새로 알게 된 즐거움이 중요하다. 새벽에 잠든 도시를 달려 충동적으로 영화를 보러 가거나 훌쩍 당일치기로 친구들과 서해 일몰을 보고 오는 일은 생각보다 좋았다. 운전석에 앉는 사람이 됐기에 닿을 수 있었던 많은 시간과 장소에는 압도적으로 기쁨이 많다. 운전하길 정말 잘했어!
 
이두루
출판사 ‘봄알람’ 대표. 베스트셀러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와 〈김지은입니다〉 등을 펴냈다. 현실 이슈를 다룬 텍스트와 논의가 여성의 삶에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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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이마루
    디자인 장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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