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요즘 MZ는 90년대 유행했던 옷을 입지? #돈쓸신잡 62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왜 요즘 MZ는 90년대 유행했던 옷을 입지? #돈쓸신잡 62

을지로는 언제부터 ‘힙지로’가 됐을까?

김초혜 BY 김초혜 2022.09.08
@duali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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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상권은 어디인가. 여러 후보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도산대로와 성수동이 빠질 순 없다. 최근 볼일이 있어서 짧은 기간 동안 두 지역 모두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소위 힙스터 느낌이 나는 사람들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패션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럼에도 어떤 공통적인 뉘앙스가 있었다. 짧은 상의, 와이드 팬츠 등등. 바로 복고풍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현재 젊은 사람들이 쿨하다고 여기는 패션은 사실 1990년대 말에 유행했던 옷들과 유사하다. 그 시절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기성세대들은 요즘 20대 옷차림을 보며 ‘이거 룰라, 듀스, 영턱스클럽이 입었던 옷들 아닌가?’라며 잠시 추억에 잠긴다. 실제로 패션 회사들 역시 올해의 트렌드를 ‘Y2K’로 선정한 후 세기말에 유행했던 아이템을 공격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어떤 거대한 유행에는 복잡한 사회, 경제적인 맥락이 뒤엉켜있다. 당연히 복고 열풍도 그렇다.
 

쉽게 꺼지지 않는 복고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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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 열풍이 최근 들어 갑자기 거세진 건 아니다. 3~4년 전부터 복고는 소비 시장의 핵심 키워드였다. 철공소와 인쇄소가 다닥다닥 모여 있는 을지로라는 공간은 어떻게 ‘힙지로’가 됐는가. 나는 을지로 인근 직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이 동네가 어떤 과정을 통해 힙스터 성지가 됐는지 두 눈으로 목격했다. 을지로3가에 ‘신도시’ ‘호텔수선화’라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생겼다. 마치 스피크이지바(Speakeasy Bar)처럼 애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런 업장들은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점차 을지로 일대에 레트로 감성을 무장한 공간이 생겼다. 어두컴컴한 골목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어느 순간 을지로는 ‘힙지로’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어떤가. 과거엔 아저씨들이 찾았던 만선호프 일대는 청춘남녀의 성지가 됐다.
포켓몬 스티커 열풍 역시 마찬가지다. 1990년대 말에 시대를 풍미했던 스티커가 부활하자 기대 이상으로 사람들은 환호했다. 포켓몬빵을 사기 위해서 편의점 앞에서 오픈런을 할 정도다. 희귀한 스티커는 당근마켓에서 프리미엄까지 붙어 거래가 됐다. 이 밖에도 복고 열풍의 증거는 일일이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두룩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돌아가고 싶어, 그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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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던 2008~2009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여파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 시기 미국에선 때 아닌 복고 열풍이 불었다. 어깨에 한껏 힘을 준 파워숄더룩, 킬힐, 붉은색 드레스 등 1980년대에 인기 있었던 패션이 부활했다. 경기는 활력을 잃고 쪼그라들었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풍요로운 시대에 유행했던 옷을 입었다. 이런 트렌드는 당연히 한국에도 상륙했다.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2009년 우리나라 패션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엣지(edge)’였다. 당연히 당시 우리나라 경제 역시 암울했지만, 그럼에도 패션만큼은 풍요로웠던 과거로 회귀하며 엣지를 내세웠다.
복고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검색하면 이런 정의가 나온다. 〈과거의 모양, 정치, 사상, 제도, 풍산 따위로 돌아감〉
다시 말해 복고 열풍 이면에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애잔한 감성이 스며있다. 사람들은 언제 이런 감정을 강하게 느낄까. 지금 이 순간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 사람들의 마음은 과거로 향한다. 막상 과거라고 해도 무조건 좋았던 것만은 아니지만, 추억에는 보정 효과가 있다. 힘들었던 과거도 시간이 지나면 그립게 느껴지는 법이다.
 

과거로 향하는 마음

지금 상황 역시 2009년과 크게 다르진 않다. 세상은 분명히 과거에 비해서 진보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느끼는 인생 난이도 낮아진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올라갔다. 연애, 취업, 독립, 결혼, 내 집 마련, 출산 등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이젠 당연하지가 않다. 그나마 1~2년 전에는 재테크 붐이 강하게 불었고, 미래를 위해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자산시장이 크게 흔들린 탓에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열정도 팍 식어버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신 건강을 지키려면 어떤 가수가 노래한 것처럼 “난 부럽지가 않어”라는 태도를 장착하거나 혹은 자신만의 도피처로 숨어야 한다. 그게 바로 과거다.
물론 복고라는 거대한 현상을 한 가지 방법만으로 분석할 순 없다. 어떤 사람은 그냥 단순히 ‘옛날 감성’이 좋을 수도 있다. 90년대에 대한 기억 자체가 거의 없는 20대에게 복고는 추억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문화일 수도 있다.
다만 그럼에도 이토록 많은 사람이 과거를 지향하고 그리워하는 부분에 대해선 조금은 진지하게 진단해 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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