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소환해내는 힘을 가진 향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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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소환해내는 힘을 가진 향기

다중 감각 전시와 후각 예술, 건축가가 만든 향까지. 오랜 시간 소외되었던 감각의 귀환. 저 먼 곳의 기억도 소환해내는 힘을 가진 향기에 관한 이야기.

이경진 BY 이경진 2022.07.26
 
코로나19의 창궐은 인류에게 후각 상실이라는 공포를 가져왔다. 우리는 마스크 속으로 코를 숨기고 냄새를 맡지 못하면서 〈후각의 철학〉을 쓴 철학자 샹탈 자케(Chantal Jaquet)의 말대로 ‘세상의 육신’에 대한 접근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향수 브랜드 ‘도르세’ 대표인 아멜리 휜(Ame′lie Huynh)은 “이에 의해 집단 각성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외모지상주의 시대를 지나 자신의 감각을 통한 감동을 추구하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한다. 얼마 전 건축 디자이너 소피 드리스(Sophie Dries)는 여성 조향사 이렌 파르마키디(Ire‵ne Farmachidi)와 협력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멋진 사진을 찍기 좋은 것이 아닌, 뭔가 다른 경험을 상상하기 위해서다. 둘은 파리 디자인 위크에 전시할 토기 도예 컬렉션에 벤조인과 아이리스, 시클라멘 그리고 미네랄 앰버 향을 입혔다. “냄새뿐 아니라 음악처럼 문구멍으로 보이는 비밀스러운 방을 들여다보려는 사고의 전환을 추구한 사람만 경험할 수 있는 ‘몰입’을 생각하며 만든 향기로운 조각품이에요.” 소피 드리스의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매개가 되는 재료를 후각으로 탐색하려 한 예술가들은 놀라운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위베르 르 갈(Hubert le Gall)이 인위적으로 깬 항아리를 본떠 만든 일련의 작품은 조향사 장-크리스토프 에로(Jean-Christophe He′rault)가 제작한 그리스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머틀(허브의 일종) 향과 머스크 향, 로렐 향을 입었다.
 
향기가 그토록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는 기억을 상기하는 능력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후각은 보다 오래되고 보다 풍부한 감정의 기억을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리옹 신경과학연구소 연구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자극은 청소년기의 기억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반면, 향기는 더 어린 시절, 유아의 기억에 닿을 수 있게 합니다. 냄새와 연관된 기억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고, 우리를 시간 여행자로 만들며, 갑자기 매우 정확하게 다시 나타나죠.” 냄새는 지금껏 우리가 느낀 감동, 감각 중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속해왔다. 딥티크는 ‘르 그랑 투르(Le Grand Tour)’라고 명명한 한정판 컬렉션에서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다섯 명의 디자이너에게 향기에 관해 얘기하도록 했다. “우리는 냄새 맡는 것을 표현하는 데 길들어 있지 않습니다. 시각과 달리 후각은 언어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감각이거든요. 후각이 지닌 이런 불가사의는 매우 내향적인 동시에 아름답죠.” 딥티크의 부사장 로렁스 세미숑은 이렇게 덧붙였다. 프레데릭 말의 향수 제작자는 향기가 지닌 힘을 단언하기도 했다. “아일린 그레이의 근대적이고 순수한 디자인이나 ‘위대한 세기(Grand Sie‵cle; 루이 14세 치하의 프랑스 문예 황금시대)’ 스타일의 호사스러운 장식으로도 실내를 향기롭게 하지는 못합니다. 아일린 그레이가 구사한 공간에는 깨끗하고 상큼한 향을 풍기는 헤스페리데스 향 분위기의 시트러스 향, ‘위대한 세기’ 스타일에는 앰버 향과 스파이시 향이 조화롭게 어울릴 거예요.” 프레데릭 말은 그리스 삽화가 콘스탄틴 카카니아스(Konstantin Kakanias)와 함께 각자의 실내공간에 맞는 향기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 ‘메이크 어 매치(Make A Match)’를 구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향기는 이제 실내를 아름답게 하는 섬세한 예술이자 스타일 그 자체다.
 
머무는 공간을 향기롭게 하는 것만으로 그곳은 거대한 놀이터가 된다. 사람들은 명상을 위해 시트러스 향이 나는 실내를 꾸리고, 집중하기 위해 나무 향이 나는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이제 향수는 나쁜 냄새를 상쇄한다는 처음의 목적뿐 아니라 사람들의 시간이자 이야기 그리고 경험과 역사가 된다. 그렇다면 지금껏 우리 문화를 형성해 온 냄새는 무엇일까? 과학자와 역사학자, 후각 전문가들이 모인 한 연구 팀은 수백 년 전의 냄새를 알아내는 330만 달러의 프로젝트 ‘오되로파(Odeuropa)’에 착수했다. 프로젝트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냄새는 우리의 세상 속 경험을 만들지만, 우리는 과거의 후각 정보를 거의 알지 못합니다.’ 오되로파 팀의 목표는 19~20세기 유럽을 채우던 냄새를 재창조해 백과사전을 만드는 것. 시대의 표상이 될 이 열광적인 연구는 후각을 향한 진정한 찬사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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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경진
    글 LAITITIA MØLLER
    일러스트레이션 DANIEN FLOREBERT CUYPERS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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