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인스타그램 피드 속 스크롤을 잠시 멈추게 하는 아름다운 이미지가 있다. 바로 런던을 기반으로 한 아티스트 시몬 구츠(Simone Gooch)가 이끄는 ‘퓨라(Fjura)’의 작업들이다. 몰타어로 ‘꽃’이라는 뜻을 지닌 퓨라는 지금 플라워 신에서 가장 독보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플로럴 아티스트 중 하나다. 샤넬, 에르메스, 루이 비통, 프라다 같은 패션 브랜드부터 다양한 매거진, 소더비 같은 미술품 경매회사에 이르기까지, 경계 없는 고객 리스트는 10여 년 간 쌓아온 그녀의 국제적 명성을 증명한다. 동서양 스타일을 넘나들며 틀에 얽매이지 않는 퓨라의 조형 작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아하고 시적인 힘을 지닌다. 미니멀한 작업을 추구하는 그녀는 영국 장미와 호접난을 조합하는 등 조용하고도 대담하며, 풍부한 표현력으로 꽃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런던에서 플로럴 아티스트로 다채로운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의 스튜디오 문을 두드렸다.
지난 며칠 동안 로마에서 일했다. 잊을 수 없는 한 주였다. 현지 농장과 고객, 우리가 작업한 공간까지 로마에서의 시간은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줬다.
사진가 데렉 헨더슨(Derek Henderson)과 협업한 새 프로젝트 〈로사 Rosa〉 출간도 앞두고 있다. 뉴질랜드 한 농장의 장미로 작업한 프로젝트라고
2018년 데렉과 〈플레저 가든 Pleasure Garden〉 매거진 의뢰로 뉴질랜드 왕거누이에 있는 장미 농장 ‘매튜스 너서리스’(Matthews Nurseries)를 방문했다. 매튜스 너서리스는 다세대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인데, 희귀하고 독특한 품종의 장미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작업하면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고, 이듬해 매튜 가족과 손잡고 장미를 주제로 한 새 프로젝트가 바로 〈로사〉다. 유서 깊은 꽃의 여왕, 장미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담았다.
사진가 데렉 헨더슨과 협업한 퓨라의 첫 번째 책 〈로사〉에 실린 장미 작업의 일부.
한 농장과 협업해 생산지에서 재배한 꽃으로 곧장 작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 장미 품질이 매우 높았고, 선택할 수 있는 품종도 방대하고 다양했다. 각 어레인지먼트를 촬영한 후에는 이를 모두 분해한 뒤 양동이에 넣어두었다가 다른 어레인지먼트를 만들 때 재사용했다. 또 촬영이 끝난 장미는 농장 퇴비로 반환했다. 책 뒷부분에서는 장미 농장주인 매튜 가족과 나눈 인터뷰와 각 어레인지먼트에 쓰인 꽃의 자세한 정보도 정리해 두었다.
고등학생 시절 용돈을 벌기 위해 방과 후 꽃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이것이 내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내가 가장 열정을 쏟는 일이 됐다.
〈로사〉 작업에 사용된 모든 장미는 촬영이 끝난 후 농장 퇴비로 사용됐다.
2005년 모국인 호주 시드니에서 ‘퓨라(Fjura)’를 시작해 10년 뒤인 2015년 런던으로 스튜디오를 옮겼다
런던으로 이주한 이유는 작업을 좀 더 확장하고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선한 영감이 필요했다.
독보적인 컬러 감각, 생경한 조합과 구성, 조각같이 대담하고 유려한 형태까지. 오랜 시간 구축해 온 ‘퓨라’만의 세계와 고유한 스타일은 하나의 새로운 장르처럼 느껴진다. 이전 인터뷰에서 “그저 흐름을 따라간다.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편곡”이라고 작업방식을 설명했는데
작업의 초점은 항상 재료에 있다. 계절과 지역의 가장 아름답고 품질 좋은 꽃, 여기에 어울리는 화기를 찾고 고르는 데 중점을 둔다. 내게 꽃을 꽂는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고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각 줄기와 각각의 꽃이 지닌 본연의 모양과 크기, 움직임, 색상, 형태를 최대한 존중하며 이를 배치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퓨라가 추구하는 심플함과 미니멀리즘이 담긴 플라워 작업.
퓨라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동서양의 오묘한 조화는 매우 독특한 인상을 준다. 때론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영국식 시골 정원 같기도 하고, 일본의 전통 꽃꽂이인 이케바나처럼 정교한 작업으로 시선을 사로잡을 때도 있다.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스타일을 한데 접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는데.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나는 시각적인 것에 매우 민감하다. 자연스럽게 여행이나 관심사가 작업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삶에 있어선 명료하고 단순한 걸 좋아하고 즐긴다. 내 작업이 특이하고 미학적이지만, 정확히 그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건 어린 시절부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오랜 시간 플로럴 아티스트로 일했다. 매일 아침 꽃 시장에 가고, 시들고 소멸하는 아름다움을 다루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새벽 시간에 시장에 가는 건 때때로 도전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른 아침의 고요함과 일출을 좋아한다. 하루 중 가장 특별한 시간이기도 하다. 꽃 시장에 감도는 특유의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가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됐다.
정원에서 막 꺾어온 듯 만개한 장미와 시든 장미가 공존하는 퓨라의 아티스틱한 작업.
당신에게 꽃은 어떤 의미인가? 계절 불문하고 가장 애정하는 꽃이 있다면
작업을 위해 매일 시장에서 다른 종류의 꽃을 가져온다. 이 과정이야말로 이 직업이 가진 매력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크고, 향기롭고, 활짝 피어난 정원 장미는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내가 집착하는 꽃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