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 내가 챙기면 왜 안돼? #엘르보이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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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 내가 챙기면 왜 안돼? #엘르보이스

내 생일인데, 우리 만날까? #비혼세 곽민지가 자기 생일에 진심인 이유

이마루 BY 이마루 2022.02.16
 
내 생일인데, 우리 만날까

늘 생일을 기준으로 앞뒤 일주일, 그러니까 총 2주 정도 시간을 잡고 생일 파티를 한다. 파티라고 해봤자 어떤 사람들과는 카페에서 차 한잔할 뿐이고, 때로는 줌(Zoom) 모임이 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늘 내가 사람들을 모으고, 스케줄러를 보면서 일정과 장소를 잡는다. 언제부터 이런 생일을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문득 우리 모두가 너무 바쁘다는 생각이 들었고, 좋아하는 내 생일 시즌이 오면 친구들이 내 곁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어떤 선물에 대한 욕망보다 앞섰다. 그래서 생일 한 달 전부터 친구들에게 “선물은 괜찮으니 나를 만나줘”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연차를 내야 하는 직장인이든, 밤낮을 직장인과 다르게 사는 프리랜서든 한 달 정도의 시간과 14일의 선택지는 필요하니까. 가족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생일 파티로 캘린더를 채우고 나면 그중 한 번 정도는 원하는 케이크를 직접 산다. 올해는 좋아하는 배구 팀인 IBK기업은행 대전 원정 경기를 다녀오는 길에 성심당에 들러 ‘팡도르’를 샀다. 나는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지만 유명한 빵집 케이크를 친구들을 위해 준비하는 마음이 설레서 좋았다. 지난해엔 고등학교 친구와 친구 20주년 기념일이었고, 월미도에 가서 놀이기구를 탔다. 불혹 파티는 20대 때부터 계획했다. 그쯤이면 코로나19가 눈치껏 사라져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가능한 방식의 축하를 하면서 포옹하겠지.
 
일 년 중 한 번은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닿아 있고 싶다. 세상 모든 기념일이 결국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서로가 당연하고, 마주 보는 걸 잊고, 함께하는 기쁨을 미루며 사는 어느 날, 그래도 한 번쯤은 유난스럽고 시끄럽게 손잡고 마주하기 위한 날이라고. 열심히 창밖을 보며 기다리면 타이밍 좋게 커다란 케이크에 잔뜩 초를 꽂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내 이름을 불러주길. 그래서 나는 천천히 뒤만 돌아보면 되길 바라는 사람도 있고,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그 파티를 준비하는 과정에도 격하게 끼고 싶다.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쁘고, 일상을 침범하는 자잘한 일이 너무 많은 우리에게 단 한 번의 화려한 경기만 치르는 건 너무 아깝다. 올림픽처럼 성화 봉송도 오래오래 하고 개막식도 하고 폐막식도 하면서  기념할 만한 기념일을 만드는 게 훨씬 즐겁다.
 
“생일 파티를 직접 준비해?  하자는 사람 없어 ?”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와 닿고 싶어하는 욕망을 조롱한다. 지인이 없는 모임에 혼자 참석하는 것, 먼저 애인에게 연락하는 것, 내 생일을 누군가 알아맞히기 전에 먼저 만나자고 제안하는 것…. 먼저 구애받는 연애가 행복하다고, 오죽 친구가 없으면 혼자 모임을 찾아다니냐고, 생일인데 챙겨주는 사람 없느냐고. 누가 먼저 다가갔는지, 다가오는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일종의 ‘스펙’처럼 여기면서 말이다.
 
누군가 만나고 싶은 날마저 타인이 먼저 어떻게 행동할지를 관찰하며 ‘쿨’한 척 앉아 있다가, 관심이 매년 줄어들면 “나이 들수록 친구가 없어” 하고 체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은 삶의 연차를 멋지게 쌓아가며 우리 모두 너무나 바쁘고, 당장의 일상에 진심인 것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은 교복을 입고 자리에 앉아 서로를 가구처럼 옆에 두던 시절을 더 이상 살지 않지만, 그런 장치가 사라진 지금도 서로에게 닿아 있으려고 손을 뻗는 시도는 그 자체로 고백이고 사랑이다. 어쩌면 기념일은 그 날짜 자체의 상징성보다 그런 시도를 멈추지 않는 오늘의 우리를 기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월에는 밸런타인데이가 있다. 여성이 성애적 감정을 느끼는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한국식 밸런타인데이의 정의는 좁아도 정말 너무 좁다. 수동과 능동의 주체를 가르지 말고, 내 방식의 사랑을 내가 고른 대상에게 마음껏 발산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늘 주저 없이 먼저 손을 뻗게 만드는, 수많은 나의 밸런타인들에게 사랑을 보내며.
 
곽민지 다양한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걸어서 환장 속으로〉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를 썼다.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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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이마루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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