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회 현장에서 ‘자유’를 외쳤던 아이는 2020년 11월, 미국 부통령직을 받아들였다. 역사상 첫 동양계 흑인 여성이 이룬 업적이다. ‘자유’ ‘정의’ 같은 단어가 지금 이 순간, 정의 구현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순진한 바람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질문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실재하는 고통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카멀라 해리스를 지켜보는 수많은 눈이 그녀에게 가장 묻고 싶은 건 다음 질문일 것이다. 과연 이 정치인이,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관심을 기울이고 ‘옳은 일’을 해줄 것이라고 믿어도 되는가? 화상 인터뷰를 위해 화면 쪽으로 몸을 기울인 해리스는 자신이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해요. ‘나는 당신을 봅니다. 완전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라고. 특히나 사람들이 존엄성을 느낄 수 있도록 완전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중요한 때니까요.” 이처럼 ‘존엄’은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2016년 11월, 최초의 흑인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으로 워싱턴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그는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권리를 옹호해 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행한 여행 금지령으로 가족과 방문객이 공항에 갇히고, 결혼과 입양 절차가 제약받고, 많은 이가 혼란에 빠진 당시, 해리스는 워싱턴의 아파트에서 수년간 함께 일했던 인권 변호사들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캘리포니아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에도 행정부에 허가를 요청하지 않는 게 제 방식이었죠. 하염없이 승낙을 기다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는 국토안보부 장관인 켈리 장군 자택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가 제게 건넨 첫 마디는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죠? 왜 집으로 전화를 거는 겁니까?’였어요. 그래서 대답했죠. 나는 미국을 대표하는 11명의 상원 의원 중 한 사람으로 왜 당신네 부서 사람들이 사람을 구금시켜 놓고 변호사와 상의할 수 없도록 하는 건지 당장 설명을 듣고 싶어 전화했다고.”

지난 11월 당선이 확정된 후 연설 중인 카밀라 해리스.
인권 보호에 힘써온 검사에게 정의란 어떤 의미일지 묻는 질문에 해리스는 미소를 띠고 답한다. “그건 자유입니다. 그리고 평등, 존엄성과 깊이 연관돼 있기도 하죠. 여러분이 평등과 자유, 공정성을 성취했다면 그건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부여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스스로 권리로 여겨 투쟁했기 때문에 얻게 된 것이죠. 정의는 박애 정신이나 자선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가져야 할 천부적인 권리예요. 그렇다면 그걸 얻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정의란 내게 그런 것입니다.” 인권 운동가인 부모 밑에서 성장한 해리스는 ‘국민(The people)’이나 ‘통합(Unity)’ 같은 단어를 곧잘 언급한다. 그와 가족에게 이런 가치는 막연한 희망이나 바람이 아닌,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제였기 때문이다. “진정한 통합은 단순히 같은 곳에 서 있거나, 누군가가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며 다른 사람의 입을 막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대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이뤄지죠.” 어린 시절의 해리스는 니나 시몬, 마야 안젤루 같은 명사들이 종종 찾았던 흑인 가족을 위한 문화 시설, ‘레인보 사인’을 드나들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논쟁을 피하지 말라’는 부모의 가르침은 여전히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정의를 위한 투쟁을 할 때는 어느 정도 이상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수단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그건 우리의 영향력이자 타인을 위해 베풀 수 있는 것이기도 하죠. 이것이 제가 자란 방식이에요. 저는 정의를 위한 행동이 자선이나 선행이 아니라 의무라고 배우며 자랐어요. 여러분이 그것을 쟁취했다고 해서 축하할 일도 아닙니다. 그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니까요.”
누군가는 그녀를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리스처럼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믿는 바를 위해 투쟁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그들의 삶 또한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카멀라 해리스에게는 어떤 일이 펼쳐지게 될까. 조 바이든과 함께한 선거 캠페인을 마친 그에게는 일단 2020년을 강타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란 가치를 계속해서 지지하고 경찰의 폭력성을 종식시킬 방안을 위한 대화의 장에 참여하는 일정이 예정돼 있다. 경찰의 성실한 임무 수행과 범죄 개혁은 그가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 시절부터 힘써 온 과제 중 하나다. 그는 지금의 인종주의가 백인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인종 차별적 시스템이나 법률에 반발할 것으로 믿는다. 그 예로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백인들에게 그가 묻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다. “가난한 흑인 여성만 콕 집어 ‘복지 혜택의 여왕’이라고 비난하는 게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됐나요? 인종과 상관없이 배를 곯고 있는 모든 아이에게 말이죠.”
영화 속 슈퍼히어로조차 죽음을 맞이하고 소외 계층의 힘겨운 삶을 강조하는 뉴스들이 쏟아지는 깜깜한 나날 속에서, 우리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찾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구원자나 슈퍼히어로가 아닌, 진실을 위해 싸우려는 더 많은 투사라면 어떨까? “낙관주의야말로 저를 싸울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에요.” 해리스는 말한다. “상황이 나아질 수 있거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동기를 부여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존 루이스 의원을 떠올려보세요. 마틴 루서 킹과 함께 워싱턴 대행진을 이끌었던 그는 자신의 신념에 한평생을 바쳤죠. 왜냐하면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때로 주장과 요구가 과격한 반대처럼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면 그 힘을 바탕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는 흑인 여성으로는 역사상 두 번째로 미국 상원의원에 당선된 몇 년 전의 밤을 떠올린다. “선거 때마다 당선 파티에 가기 전에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과 조촐한 저녁 식사를 갖곤 해요. 45대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 날이기도 했죠. 일곱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제게 와서 울면서 ‘카멀라 이모, 설마 그 아저씨가 이기지는 않겠죠?’라고 묻더군요. 저는 아이를 껴안았어요. 그때 아이의 심정과 제 기분을 떠올리니 지금도 마음이 아프네요.” 그날 밤 행사에서 해리스는 미리 준비했던 연설문을 찢어버렸다. “대신 단상에 올라 말했어요.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요.” 우리가 카멀라 해리스에 대해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 적어도 자유에 관한 문제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