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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한국 찜질방은 처음이지?_라파엘의 한국살이 #29

몸도, 마음도, 생각과 사상도 허물을 벗는 곳. 한국 찜질방이 내 마음을 열었다.

BY양윤경2020.08.21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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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처음 한국으로 여행 왔을 때 나는 아주 들떠 있었다. 새로운 것들을 보고 직접 경험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공항리무진을 타고 종로 3가에 도착해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자마자 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어딘지 찾았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던 때였고 모든 여행서적과 책자들은 비빔밥과 불고기를 맛봐야 한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또한 인사동, 경복궁, DMZ, 설악산 국립공원, 부산, 경주와 같은 곳들을 꼭 방문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그 많은 리스트 중 내가 유독 피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찜질방이었다.
 
생각만 해도 공포스러웠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알몸으로 사람들 앞에 서다니! 엄마가 씻겨주던 유년기 이후 타인 앞에서 알몸이었던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탈의실에서 거리낌 없이 옷을 벗어젖히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주요 부위(!)를 감춰야 한다고 여기는 친구도 많았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찜질방에서 자발적으로 알몸이 되는 건 막연한 공포였다. 설사 상대방 역시 알몸일지라도.  
그러던 어느 날, 몇몇 한국 친구들과 함께 북한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으로 즐겁게 하산하는 길, 누군가 갑자기 던진 한 마디. “찜질방 갈까?” 곧바로 대세가 그쪽으로 기울었다. 갑자기 무리에서 이탈하는 것은 어색한 모양새였고, 머리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응”이라 대답하고 말았다. 회피할 마땅할 구실도 생각나지 않았다.
설상가상, 근처에 찜질방이 있었다. 불편한 마음을 감추며 탈의실까지 애써 발을 들였다. 양말을 벗고 겉옷을 하나둘 벗는 모든 과정이 나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중요한 순간(!)을 미루고 미루다 ‘에라 모르겠다’ 팬티만 남기고 황급히 타월을 찾아 들었다. 타월을 두른 후 팬티를 내리고 주위를 돌아 봤지만 친구들은 이미 사우나에 들어가 있었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황급히 사우나로 들어가는데 때밀이 아저씨로 보이는 분이 고함을 쳤다. 
 
“학생! 수건 안 돼!”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 듯했다. 본능적으로 ‘쥐구멍’을 찾았다. 타월을 재빨리 벗어던지고 몸을 온탕에 숨겼다. 그 안에서 나는 마음 속 깊이 ‘나는 투명 인간이야’를 반복하며 최면을 걸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몇몇 사람이 나와 같은 탕 안에 편안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나의 존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투명인간인 것처럼. 내가 의식하던 ‘주변’은 수증기와 함께 사라져갔다.
그렇게 ‘첫 경험’을 시작했고 그날 이후 나는 찜질방에 거의 중독되었다. 온탕, 냉탕, 찜탕, 약탕 등을 오가면서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불결함을 땀과 함께 날려버리는 그 느낌! 나아가 찜질방이 우리를 가장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로 만드는 공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러모로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사회적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진정한 ‘나’를 마주하는 공간…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어떤 차를 모는지, 어떤 시계를 차는지, 어떤 브랜드의 의류를 입는지, 패션 센스가 있는지 없는지, 알몸 상태에서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어린아이부터 배 나온 아저씨, 축 처진 몸매의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서로 안면식이 없는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알몸이 될 수 있는 공간이라니! 장 자크 루소가 말하는 자연상태에 근접한 그 공간에서 우리는 잠깐이나마 타인의 기대, 시선,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아, 사회적 자아를 잠시나마 옷장에 잠가 둘 수 있는 찜질방에서 숨을 돌리고 싶다. 언제 다시 가능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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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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