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팬과 손흥민 팬의 공통점과 차이점은?_라파엘의 한국살이 #26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BTS 팬과 손흥민 팬의 공통점과 차이점은?_라파엘의 한국살이 #26

두 슈퍼스타의 팬들은 ‘직관’을 위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까지 날아가곤 한다. 하지만 한쪽은 ‘열정’으로, 다른 한쪽은 ‘광기’로 묘사된다. 이건 두 팬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두 팬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다.

양윤경 BY 양윤경 2020.07.24
EPL 토트넘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축구 선수 손흥민. ⓒGetty Images

EPL 토트넘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축구 선수 손흥민. ⓒGetty Images

영국에서 남자아이로 자란다는 건 축구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아니, 축구를 좋아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사실은, 단 한번도 축구에 관심을 가져본 적 없다. “가장 좋아하는 팀이 뭐야?” “어떤 선수를 좋아해?” 온통 축구 이야기를 하는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첼시’라는 팀을 좋아하는 척 하는 것뿐이었다. 만약 내가 축구에 대해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라도 하면 1초만에 이상하다는 눈초리와 ‘여성스럽다’는 말이 돌아왔으니까 말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팀이 있었다. 누구나 ‘최애’ 그리고 ‘차애’가 있었고 해당 선수의 번호와 이름이 적힌 팀 저지를 입곤 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벽에 선수 사진이 들어간 포스터가 걸려 있었고 팀 로고가 박힌 가방 속에 같은 디자인의 공책과 펜을 넣고 다녔다. 10대가 되면서 친구들은 보통 아빠와 경기를 보러 갔다. 팀 저지를 맞춰 입고 배너 같은 응원 도구를 챙기는 건 필수였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스타디움은 물론이고 전국의 모든 펍도 북적거렸다. 펍 앞엔 직관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경기를 생중계 한다는 안내판이 내걸렸다.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플레이어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팀 슬로건과 각 선수의 응원가를 달달 외웠으며, 경기의 승패에 기뻐하고 좌절했다.
성인과 어린이를 위한 저지는 물론, 생후 3개월 아기를 위한 보디수트도 있다.

성인과 어린이를 위한 저지는 물론, 생후 3개월 아기를 위한 보디수트도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친구들이 클럽 멤버에 가입돼 있었다. 클럽 멤버가 되면 시즌 티켓, 개별 경기 티켓 구매와 좌석 선택의 우선권을 비롯해 크고 작은 혜택들이 주어진다. 클럽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느린 인터넷 같은 이유로 예매에 실패했다면? 긴 줄을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웃돈을 주고 암표를 기꺼이 구입했다.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세대를 초월해서, 남성만큼은 아니지만 몇몇 여성들도 함께 성별을 초월해서, 지구 반대편에서도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서,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열과 성을 다해 축구를 ‘사랑’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 축구를 좋아하는 건 멋지고, 쿨하고, ‘남자다운’ 일이니까. 축구뿐 만이 아니라 농구, 야구, 미식축구 등 인기가 있는 어떤 스포츠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2020년 나는 비슷한 장면을 마주했다. (한국에 사는 누군가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본방 사수를 위해 밤을 지새우는 것처럼) 영국이나 미국에 사는 누군가가 한국 V라이브를 보기 위해 새벽 4시에 벌떡 일어나는 광경을. (나의 어릴 적 축구광 친구들처럼) 티켓 구매를 위해 ‘분노의 클릭질’을 마다하지 않고, 굿즈를 구입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경기가 있는 날 펍이나 스타디움에서처럼) 배너와 봉 등의 도구를 흔들며 응원하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축구 팬들과 그들은 놀랄 정도로 닮아있었다. 하지만 각 팬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정반대였다. 후자는 주로 이런 말로 묘사됐다. ‘미친’ ‘망상에 가득 찬’ ‘히스테리’ ‘기괴한’ ‘한심한’… ‘빠순이’. 그렇다. K팝 팬덤 얘기다.  
 
뮤지컬 〈Fangirls〉의 작가인 이브 블레이크(Yve Blake)는 테드 토크 〈For the love of fangirls〉에서 팬덤을 향한 이중잣대를 꼬집었다. 왜 남자아이들이 축구에 미쳐있는 건 단순히 스포츠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것이고 여자아이들이 아이돌에 열광하는 것은 한심한 ‘히스테리’리면서 혀를 찰 일인지에 대해 말이다. “19세기 때, 히스테리는 여성에게서만 발생하는 정신질환이라고 여겼어요. 과도하게 감정적인 여성들이 대다수였죠. ‘히스테리컬’하다 라는 단어는 ‘히스테리커스(Hystericus)’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되었고, ‘태내의’ 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자궁에 문제가 있으면 이 병에 걸린다고 생각했답니다. 히스테리를 치료하는 방법은 헤스테렉토미(Hysterectomy)라고 하는데 이것은 자궁을 떼어내는 거였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여자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여성이 열정을 가지는 것을 ‘미친’, ‘싸이코 같은’ 혹은 ‘히스테리컬’ 하다고 들으면 그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뭐라고 생각할까요? 그건 마치 ‘여자들은 남자들 보다 덜 이성적이고 덜 합리적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Jimmy Kimmel Live〉에 출연한 방탄소년단. ⓒGetty Images

〈Jimmy Kimmel Live〉에 출연한 방탄소년단. ⓒGetty Images

 
순수하게 무엇을 사랑하는 것을 시간을 낭비하는 일로 치부하는 것. 왜 아이돌을 좋아하는 소녀들에게만 이 사회적 시선이 쏟아지는 걸까? 백스트리트 보이즈, 저스틴 비버, 원디렉션 그리고 지금의 BTS에 이르기까지, 왜 아이돌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는 ‘여성스럽다’라고 놀림 받고 그 사실을 숨겨야 할까? 왜 손흥민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 가는 것은 열정이고 같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의 콘서트를 보고자 비행기표를 끊는 건 광기인가? 아니, K팝에는 사생팬 같은 극단적인 케이스가 있지 않냐고? 그럼 경기장을 다 때려부술 듯이 폭력적인 훌리건의 경우는 뭔데?  결국 스포츠 팬덤과 K팝 팬덤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는 성별의 문제로 요약된다. 취향에 급을 매기려 드는데, 특히 여성에 의해 흥행한 대중문화를 폄하하면서 여성 폄하까지 일삼는 것이다.
 
2019년 9월 타이페이 아레나에서 열린 EXO 콘서트. ⓒGetty Images

2019년 9월 타이페이 아레나에서 열린 EXO 콘서트. ⓒGetty Images

 
20년 2월 21일, 뉴욕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컴백 공연을 기다리는 수많은 팬들.

20년 2월 21일, 뉴욕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컴백 공연을 기다리는 수많은 팬들.

사실 나도 그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이브 블레이크가 원디렉션을 사랑하는 소녀들과 ‘히스테리’의 어원을 알게 된 후 이중잣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면 나의 경우엔 BTS, 엑소, 워너원 등 K팝 팬들과의 인터뷰가 계기였다. 〈빌보드〉 매거진의 K팝 팬덤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난 그녀들은 전혀 이상하거나, 기괴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힘든 일들을 이겨내게 도와주고 제 삶을 훨씬 즐겁게 만들어줬어요.” 같은 이유와 동력에 누가 ‘미쳤다’는 비난을 던질 수 있겠나. 아르헨티나의 스트라이커 바티스투타가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항상 축구가 있다”고 했던가. 전설적인 축구 스타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했던 이 낭만적인 명언을 빌려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도 좋을 것 같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항상 BTS, 엑소, 워너원, 아이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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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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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라파엘 라시드
    번역 허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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