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자료실.
그녀가 원피스를 입었다는 사실이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인가? 광화문 한복판을 걷다 보면 많은 ‘전문직’ (사실 모든 직업이 전문성을 요구하지만) 여성들이 원피스나 그 외 다양한 종류의 옷을 입고 다닌다. 류 의원 스스로도 그날 아침 별생각 없이 편한 옷을 입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런 선택은 전혀 잘못된 게 아니다.
잘못된 건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의 의상이 논란거리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다름 아닌 국회니까. 국회는 여야 할 것 없이 ‘올드보이즈클럽’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젊은 국회를 외치고 젊은 인재를 영입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젊음이란 자신들이 쌓은 구태를 잘 답습해야 하는 존재 그뿐이다. 국회의원이 취하는 혜택은 OECD 상위권이지만 국회의원의 자질과 행태는 한참 밑돈다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많은 현실이다.
수년간의 많은 ‘논란’들을 지켜보면서 일반적인 패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수의 행동양식에 벗어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낙인찍고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류호정 의원은
1. 28세다 (21대 국회의원 평균 연령 54.9세)
2. 여성이다 (21대 국회의원 중 여성 국회의원은 ‘역대 최다’지만 여전히 19%)
3. 군소 정당 의원이다 (정의당 의원 의석수 6석)
4. 국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옷을 입었다. (대부분이 정장을 입는다)
결론 논란거리를 만든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류호정 의원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여건들이 논란 제조 공식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고로 그녀가 입은 원피스는 ‘관 뚜껑에 못질을 할’ 좋은 먹을거리가 되었다. 관련 기사에 줄줄이 달린 여성 혐오 댓글들은 기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되려 미디어의 반응이 놀라웠다. 그들은 따옴표 “”를 헤드라인에 남발하며 여성 의원을 모욕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헤드라인에 막말 댓글을 그대로 옮김으로써 그에 편승해서 클릭 수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댓글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하더라도 말이다.
“류호정 원피스 차림에 ‘옵빠 한번 외쳐라’”
“‘빨간 원피스’ 등원 류호정에 與 지지자 ‘다방’ ‘도우미’ 성희롱 쏟아내”
“류호정 분홍 원피스 입고 등원에..‘티켓다방이냐’ 도 넘은 비난”
“류호정 분홍 원피스 등원에, 與 지지자 ‘룸싸롱 새끼마담’ 막말”
“‘별 풍선 줄까?’ ‘분홍 원피스’ 류호정에 성희롱 쏟아낸 與 지지자들”
클릭 수에 의존하는 미디어 수익 구조상 센세이셔널리즘에 기대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리고 위의 헤드라인이 여성 기자(부끄럼 없이 혹은 외압에 의해)가 쓴 것이라는 점이 더 슬프다. 현재 미디어 산업 내의 과열된 경쟁구도가 영혼 없는 야만적인 상태를 만드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더욱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일부 매체는 혹시 모를 역효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좀 더 완화된 버전으로 바꾸는 치밀함을 보였다. 일단 센세이셔널한 헤드라인을 뽑아 많은 관심(클릭)을 받고 나서 목표를 달성한 후 제목을 변경하는 거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준 후 제목을 바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홍준표 의원이 빨간 꽃무늬 셔츠를 입었을 때 그 누구도 홍 의원의 옷차림을 저질스러운 단어를 써가며 매도하지 않았다. 만약 대통령이 하와이안 셔츠를 입었다고 미디어가 저급한 헤드라인을 달았다면 어땠을까? 그 어떤 미디어도 감히 그런 제목을 달 수 없었을 것이며 그렇게 달았다고 해도 심각한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 당했을 것이다.
대중들의 의식을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국내 주류 미디어가 점점 더 타블로이드화 되어가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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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