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를 만든 여자 || 엘르코리아 (ELLE KOREA)
CULTURE

펭수를 만든 여자

남극에서 한국까지 헤엄쳐 온 펭수를 이 시대의 슈퍼스타로 만든 것은? 경계를 허물고 좌표를 벗어난 이슬예나 PD의 상상력이다.

ELLE BY ELLE 2019.12.28
 
펭수를 만든 여자

펭수를 만든 여자

<자이언트 펭TV>의 유튜브 구독자 수가 134만 명을 돌파했어요. EBS 사내에서는 이슬예나 PD가 슈퍼스타겠는데요 아니에요(웃음). 사실 하루하루 정신없이 흘려 보내고 있어요. 매일 펭수에 관해 새로운 기사가 뜨고, 전화가 와요. 결정할 일도 많고요. 모든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울 때쯤 펭수에게 생긴 일을 실감하죠.
학창 시절부터 PD를 꿈꿨다고요. 친구 중에서 ‘장래 희망’을 그대로 이룬 희귀한 경우라고 들었어요. 왜 PD가 되고 싶었나요 입사 면접에서 ‘왜 PD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위안과 감동을 주고 싶다’고 말한 적 있어요. 그때 공익광고 같은 대답이라는 피드백을 받았거든요. 마음의 상처를 조금 입었죠(웃음). 하지만 지금도 저는 그런 방송을 만들고 싶어요. 제게도 당연히 창작 욕구가 있죠. 재미있는 것, 흥미로운 것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나 저만 재미있는 건 별로예요. 대중에게도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PD를 지망하다가 대기업에 입사해 광고기획 업무를 했어요. 이후 다시 PD에 도전해 EBS PD로 채용됐는데요. 입봉하면 꼭 만들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있었나요 일단 기존 프로그램과는 다른 걸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아이디어를 내는 일을 좋아해요. 좌표를 벗어난 상상을 즐기고요. B급이면서 톡톡 튀는 생각을 재미있어 하죠. 평소 멍 때리면서 공상을 많이 해요. 그런 과정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편이고요. B급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대중과 소통하는 적절한 선을 찾아서 잘 타야 하죠. 그런 면에서 필요한 ‘대중적인 감’ 같은 걸 가진 것 같아요.
<자이언트 펭TV>의 최초 타깃은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었잖아요. 그런데 2030 세대 직장인 사이에 거대한 팬덤이 생겼네요 저와 제작진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만해요. 우리가 봐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였거든요. 고학년 이상의 시청자가 재미를 느끼는 코드는 성인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본 거죠. 대신 선을 넘지 않도록 주의했어요. 선정성, 폭력성이 없게요. <자이언트 펭TV> 유튜브 구독자가 2만 명도 되지 않았을 때 팬 사인회를 열었어요. 제작진은 펭수가 사인회장에 덩그러니 있게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다양한 연령대의 팬들이 모였더라고요.
<자이언트 펭TV> 제작진의 연령대는 어떤가요 제가 가장 많습니다. 1985년생이고, 다른 제작진은 모두 저와 나이가 같거나 어려요. 2030 세대인 제작진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만든 것에 같은 세대의 대중이 반응을 보인 것 같아요.
<자이언트 펭TV>가 온오프라인과 TV를 넘나드는 프로그램으로 성공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워요. 보통 각각의 플랫폼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애쓰잖아요 처음부터 그 점이 가장 중요했어요. 회사에선 뭐든 좋으니 다 해보라고 했고요. 다양한 채널을 넘나들려면 프로그램의 포맷이나 장르적인 부분은 열어두고, 주체가 되는 캐릭터 하나를 분명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았어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처럼요. 세계관이 또렷한 캐릭터만 있으면 뭘 해도 좋을 거라 생각했죠. 펭수를 만든 일이 <자이언트 펭TV> 제작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에피소드였어요. 정해진 포맷이 없기 때문에 만드는 입장에서는 힘들어요. 매주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분이에요(웃음).
세 가지 플랫폼을 넘나드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모티프로 삼은 다른 아이콘이 있나요 전부는 아니지만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에게서 배운 방송 문법이 있어요. 아이들을 아기 취급하지 않는 것이요. 그들은 ‘친구들 안녕?’과 같은 말을 건네지 않아요. 그냥 대화하죠. 관심 있는 부분에 공감해 주고요. 그런 태도를 차용하려 했어요. 그러나 <자이언트 펭TV>의 코어 DNA는 역시 EBS 특유의 ‘선함’에 있어요.
펭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나면 괜히 더 씩씩하게 살게 돼요. 하지만 <자이언트 펭TV>는 교육적 메시지를 표면에 드러내지 않더군요 첫 에피소드를 만들고 편집할 때, 자기검열을 해봤어요. EBS를 보는 어머니들이 ‘그래서 교훈이 어디 있냐? 교육적인 메시지는 무엇이냐?’고 물을 것 같더라고요. 물론 교육적인 메시지나 선한 메시지는 중요하죠. 그러나 많은 분들이 프로그램을 시청해야 비로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보는 방송’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어요. 무엇보다 누가 어떤 태도로 말하는지가 중요했어요. 좋은 메시지일수록 콘텐츠 소비자들과 유대감이 있는 누군가가 이야기해야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펭수를 그런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전파할 메시지를 고민하기 이전에, 친근하고 사랑받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펭수가 지닌 매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개성이 있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아는 것이요. 되바라진 면이 조금 있다 해도 언제나 주변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면 했고요. 어떤 상황에 놓여도 당황하지 않는, 아니 당황하더라도 당당하게 자신 있게 대처하는 면모도 필요했어요. 펭수는 스튜디오형 캐릭터가 아니니까요. 어떤 현장에서 누굴 만나든 쫄지 않거나, 속으로는 쫄더라도 겉으로는 씩씩하고 당당할 수 있는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며 생각이 건강한 존재인지도 중요했어요.
펭수의 꿈은 우주대스타잖아요. 간혹 펭수가 지금 시대의 ‘인싸’를 ‘펭격화’한 캐릭터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재미있네요. 처음의 컨셉트는 오히려 ‘아싸(아웃사이더)’에 가까웠어요. 처음부터 인싸는 아니면서도, 인싸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졌는지를 보긴 했고요. 절대 인싸 같지 않은 애가 자신을 인싸라고 우기는, 인싸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고 싶었거든요. 펭수가 대중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인싸력’을 발휘하는 캐릭터로 자리를 잡더군요. 펭수의 성장인 거죠.
연출자로서 어떤 부분에 특화돼 있다고 생각하나요 음. 제 입으로 그런 걸 말하기가 좀 그런데요. 인복이요. 인복이 많아요. <자이언트 펭TV>가 잘된 것도 함께해 준 염문경 작가님 등 좋은 제작진을 만난 덕분이에요. 우리 제작진은 모두 자신이 펭수라고 생각하며 <자이언트 펭TV>를 만들고 있어요. 펭수 역시 제작진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 아이디어 회의에 함께하고 있고요.
<자이언트 펭TV>의 모든 에피소드 중, 총괄PD 입장에서 회심의 기획을 꼽아본다면 역시 1~2화에 애착이 있어요. 남극에서 온 열 살 펭수가 초등학교에 찾아가 친구들과 어울린 에피소드인데요. 친구 사이에 펭수가 우뚝 선 순간, 기분이 좋더라고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구성하면서 계속 생각했던, 꼭 담고 싶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으니까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만들었던 납량 특집도 좋아합니다.
펭수 매니저로 자주 출연하는 조연출 박재영 PD의 연기력이 빛났죠. 평소 <자이언트 펭TV>에서 볼 수 없던 다양한 연출도 재미있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예요. 웃기면서도 무서우면서도 묘하게 잘 나온 것 같아요. 드라마화해서 연출하는 걸 워낙 좋아해요. PD 지망생이던 시절 드라마 PD를 꿈꾸기도 했거든요.
펭수가 거리로 나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순간이 <자이언트 펭TV>의 주축을 이뤄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면을 찍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맞아요. 수능 응원편도 그랬어요.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할 수 없었던 콘텐츠였죠. 그래도 펭수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긴장된 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토닥이는 장면이 잘 담겨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았어요.
펭수가 제작진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던, 의외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펭수의 돌발적인 행동에 이제 제작진 모두가 익숙해져서 별로 놀라지 않는데요. 어떤 인터뷰에서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펭수가 “교육은 삶 그 자체”라고 대답한 적 있어요. 그런 현답을 할 줄 몰랐어요. 언제나 펭수와 제작진이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기획 의도나 펭수가 취할 태도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요. 펭수에게 놀랐어요.
펭수와 함께해 보고 싶었지만 아직 실현하지 못한 아이템도 있나요 처음에는 슬라임이나 먹방을 무조건 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에게 그 둘만한 아이템이 없거든요. 그런데 펭수는 날개(손)가 짧고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그런 걸 할 수 없는 거예요. 저는 처음에 거대한 몸과 짧은 날개가 펭수의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했는데요. 촬영에 돌입해 보니, 그 매력 포인트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웃음). 그래도 펭수는 계속 성장하고 있어요. 능력치가 점점 늘어요. 요즘엔 혼자 언박싱도 하고, 앉았다 서기도 하고, 헤드셋도 혼자 써요. 그런데 만약 해외에 가는 에피소드를 만든다면, 펭수가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웃음). 그럴 땐 무조건 헤엄쳐서 가야죠.
제작진끼리 “우리 넷플릭스까지 가볼까?”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 넷플릭스 이야긴 100% 농담이고요. 지금은 어떤 그림을 그릴 여유가 전혀 없는 상태예요. 조금 천천히 가볼 생각이에요. 저희는 굉장히 작은 규모의 팀이어서, 시스템 정비도 필요한 시점이에요.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에요.
펭수의 본체에 관한 호기심에 대응해 ‘펭수가 알고 싶다’는 에피소드를 만들기도 했죠. 그럼에도 펭수를 펭귄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데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앞으로도 펭수를 잘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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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사진 김상곤
    에디터 이경진
    디자인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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