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리나에르트의 태양을 찾아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재봉틀 한 대와 400유로를 들고 벨기에를 떠나 모로코로 갔다. 로렌스 리나에르트의 브랜드는 이렇게 시작됐다. | 로렌스,로렌스 리나에르트,벨기에 출신,마라케시,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자신의 집 정원에 앉은 디자이너 로렌스 리나에르트. 카펫과 쿠션은 물론 모든 가구와 신고 있는 샌들까지 직접 디자인했다. 거실 전경. 낡은 패브릭으로 만든 오토만과 의자는 물론, 벽에 걸린 작품과 이곳저곳에 놓인 도자기는 모두 로렌스가 모로코 장인들과 협력해 만들었다. 벨기에 출신의 로렌스 리나에르트(Laurence Leenaert)가 집을 떠나 3000km 떨어진 곳으로 갔을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스물아홉 살이었다. 4년 후, 그녀의 이름은 모로코 전체에 퍼질 만큼 유명해졌다. 휴가를 보내러 왔다가 만난 매력적인 마을과 사막 풍경에 이끌려 새로운 곳에서 살기로 결심한 것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 재봉틀 한 대와 400유로, 가진 것은 그게 전부였다. 현재 로렌스는 피카소와 미로를 연상케 하는 자신만의 드로잉을 활용해 패브릭과 거울, 도자기 등 다채로운 수공예품을 선보이고 있다. 어느덧 마라케시를 넘어 국제적 주목을 받는 젊은 디자이너가 된 비결중 하나로 그녀는 인스타그램의 힘을 꼽는다. “마라케시로 이사 올 때 제 팔로어는 90명이었어요. 지금은 10만 명이 넘어요.”   정원 안쪽 테이블에 점심 식사가 마련됐다. 로렌스의 그림이 담긴 테이블에 로컬 아티스트들이 만든 의자를 함께 놓았다. 회벽 앞 마조렐 블루 컬러의 커다란 꽃병도 로렌스의 작품이다. 자신이 그린 드로잉으로 가득한 작업실에 선 로렌스 리나에르트. 로렌스가 디자인한 패브릭과 쿠션으로 장식한 야외 공간. 벨기에 겐트에 있는 왕립예술학교에서 수학한 로렌스는 독일 패션 브랜드 블레스(Bless)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패션뿐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을 위한 비전을 내세운 블레스는 공정무역 생산을 지지하는 등 철학이 확고한 브랜드다. “블레스에서 일하면서 ‘생산’에 대한 생각의 틀이 바뀌었어요. 저한텐 정말 좋은 일이었어요. 저 역시 원칙을 가진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했으니까요.” 자신의 이름을 줄여 ‘LRNCE’란 상호를 만들었듯이 그녀의 브랜드는 로렌스의 삶과 스타일의 축약판이다. 패브릭과 가구, 도자기 등 다양한 소재와 형태에 더해진 그림들은 더없이 자연스럽고 본능적이다. “벨기에에서는 그림을 그릴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이곳에 온 순간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졌죠.” 로렌스의 설명이 이어진다. “마라케시에선 모든 게 가능했어요. 만약 여러분이 메디나(Medina) 지역에 간다면, 마음으로만 꿈꾸던 뭔가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장인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은 당신이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든 현실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벨기에처럼 최소 100개 이상 만들 필요도 없어요. 딱 한 개만 만들어도 돼요. 게다가 이곳에는 뭐랄까, 고유한 삶의 스타일과 색깔이 있는데….” 그녀는 적절한 문장을 찾다가 끝내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뭔가가 마라케시엔 있다’로 결론지었다.    미얀마 장인들이 핸드메이드로 제작한 침대 커버와 ‘메르시 파리’에서 산 시트로 꾸민 침실.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기도, 원시 부족의 벽화 속 상징 같기도 한 로렌스의 드로잉이 담긴 도자기들. LRNCE의 모든 러그는 30년 넘게 일한 모로코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것들이다. 로렌스의 집은 2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고택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개발된 신시가지 겔리즈(Gueliz) 지역에 있다. 집 뒤쪽에 널찍한 정원이 높은 흙벽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파란 하늘 아래 고요하게 숨은 비밀 안식처 같은 느낌이다. 담장 너머 도시가 어떻게 흘러가든 간에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함께 혼자만의 창작에 몰두하기 그만인 공간이다. 직접 디자인한 패브릭과 쿠션으로 장식한 우아한 데이베드는 휴식을 취하거나 달콤한 몽상에 빠져들기 좋다. 로렌스와 파트너인 아유브 부알람(Ayoub Boualam)은 이곳에서 함께 일하고 살아간다. 아유브 또한 이름난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파리에 두고 이 붉은 도시로 왔다.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가 일상의 리듬을 일깨우는 이곳에서 로렌스는 가끔 벨기에 EDM을 틀어놓고 바닥에 그림을 그린다. “제 그림은 늘 아이가 낙서한 것 같죠.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모든 비유와 상징은 마라케시의 삶과 이 도시의 빛과 어우러집니다.”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스쳐 지나가는 도시 풍경에서 무한한 영감을 받는다는 로렌스. 주말이 되면 40여 분을 더 달려 사막으로 간다. “생각할 시간을 가지러 가요. 큰 드로잉 노트를 가지고 가서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죠. 모래언덕에는 거의 아무도 없어요. 사방 어디에도 야자나무와 뻥 뚫린 시야뿐이죠. 이 끝없는 풍경과 마주할 때 인생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