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 성당, 한국 현대건축의 고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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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끼고 있는 절벽은 참으로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절두산이 그렇다. 그곳에 갈 참이면 늘상 작두에 머리를 잘린 우리나라 초기 천주교인들의 비명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 땅에 이희태(1925?1981) 선생이 설계한 순례성당이자 순교기념관이 1967년에 건립되었다. 절두산 순교복자기념성당(이하 ‘절두산 성당’)이다. 우리나라 옛 건축의 조형언어로부터 추출된 외관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프랑스에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롱샹 성당이 있다면 한국엔 이희태가 설계한 절두산 성당이 있다. 세계 중심에서 한국 건축의 위상이 변방에 머무르고 있었던 1960년대에, 당대를 풍미했던 국제주의 양식의 기능주의적 건축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건축가의 독습에 의해 자생적 모더니즘 건축의 한 사례로 탄생한 것이 이 건물이다. 더욱이 한국을 지배하던 엘리티즘에 기반한 모더니즘 건축 스타일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했다. 그런 연유로 주목되는 것이 이상할 정도인 이 건물이 1992년에는 공간사가 제정한 ‘건축25년상’을 수상했다. 지어진 지 25년이 넘은 건물 가운데 건축적 가치가 높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원 목적으로 잘 사용되는 건물에 주어지는상으로 김중업의 프랑스대사관도 수상했는데 아쉽게도 이 상은 그 후 지속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이희태는 동년배 건축가들처럼 일본 대학의 학벌이 있거나, 서구제국의 유학파도 아닌, 일제 하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상 상급 학교로 진학을 포기한 채 곧장 직업 학교로 들어가 건축 기술 교육을 받은 것이 학력의 전부다. 정황이 이러하니 그는 평생 학력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다. 그러나 가방끈이 짧고, 기댈 데가 없었던 까닭에 그는 누구보다도 일찍 건축설계 실무에 뛰어들었다. 스물한 살에 자기 이름을 건 설계사무소를 개업한 것이다. 절두산 성당은 직설적 표현으로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스타일을 리메이크한 것이 특징이다. 성당의 몸체와 지붕은 갓을 쓴 이 땅의 선조들을 연상시킨다 수직 종탑은 단두대의 모습이다. 초기 천주교인들이 무참히 참수당했던 한 시대, 땅의 역사를 건물의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건축수법을 두고 유비적 건축이라고 말한다. 기념관을 받치고 있는 하부 기둥들은 경복궁 경회루 하부 돌기둥 형태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적 모더니즘 건축언어에 지배당했던 동년배 건축가들과 서구지상주의의 당대 사회 분위기에서 그의 건축언어는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로 평가 절하되었고, 1980년대 국내 건축계에서 비판의 표적이 되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선험적인 전형으로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90년대 이후 그의 건축이 재조명을 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서구 건축학자 케네스 프램프턴의 비판적 지역주의에 근거한 지역성이 짙은 건축으로 이희태 건축의 특성이 부각되면서부터였다. 그 시기 대학에서는 석사학위 논문에서 이희태 연구가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종전까지 그의 건축 세계에 대한 왜곡된 선입견이 상당 부분 걷히는 결과를 낳은 것은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 그의 건물은 독특한 비례체계를 갖는다. 제도판 하나 구하기 힘든 시절에 그는 모눈종이 위에서 설계를 진행했다. 그 시절의 많은 건축가들이 그러했겠지만 모눈종이의 그리드 체계는 그의 건축을 복잡한 도형의 세계에서 일탈하는 기회를 주었고, 그가 그리는 건축의 선들은 단순화되었다. 모눈종이의 그리드를 따라 일정 비율로 확장되는 평면과 입면의 변화는 그가 설계한 건물의 기하학적 특징을 이룸과 동시에 비례체계의 단순함을 극복하려는 건축가의 의지로 말미암아 건물의 외관을 기단-몸통-지붕이라는 고전주의 건축수법을 따라 하며 그 위에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형태미를 가미하는 방법론을 채택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건축을 서구 고전주의와 인본주의 건축을 잇는 르네상스 건축 스타일의 현대적 변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편 이제까지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특징을 목구조 건축의 가구식 체계에서 찾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순교기념관의 내·외부 공간을 구축하는 조형언어는 목구조 건축의 체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벽체를 비운 채 쌍주 형식의 장식 기둥과 처마를 받치고 있는 돌출보가 그렇다. 건물의 볼륨이 약화되면서 전체적인 이미지가 가벼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성당의 외관은 벽돌을 쌓아 만든묵직한 매스의 건축으로 다가온다. 성당과 기념관이 서로 다른 구축 방식을 통해 대비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건축의 조영 원리로서 상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쌓기 건축의 역사성을 조명한 저술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그동안 목구조 건축의 가구식 체계를 보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 점에서 보면 일찍이 이를 간파한 이희태의 한국 건축에 대한 성찰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기도 하다. 그가 단순히 감각에 호소하는 형태미의 건축으로서 우리나라 건축의 특징을 수용했다는 편협된 시각을 무색케 할 정도로 이미 이 방면에서 한국 건축의 가치를 앞서 깨닫고 선도한 위대한 인물이라는 점이 부각될 만하다. 이 건물의 탐방 시 놓쳐서는 안 될 공간이 있다. 성당과 순교기념관을 하나로 묶어주는 발코니 형태의 건축적 산책로다. 평소 외부인에게 개방적이진 않지만 이 건물의 외부 동선을 풍요롭게 하는 장치임에 분명하다. 서로 다른 기능과 형태의 건축을 외부 통로로 연결함으로써 건립 당시 절벽 위 대지라고 하는 한계로 인해 발코니 통로를 이용하여 14처와 같은 전례 공간을 만들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종탑과 함께 이 건물의 조형을 완성시키는 장치가 되었다. 이처럼 의미 있는 한국 현대건축의 고전이 일반 대중의 시선 밖에 머물고 있다. 절두산성지 인근을 지나는 지하철 2호선 경로 때문이다. 소음 방지가 이유겠지만 당산철교 교각 위 철길에서 합정역 지하로 연결되는 상당 부분이 차폐형 터널 형식으로 가려져 이 성당의 서북쪽 조망이 극히 제한되고 있다. 동일 이상의 소음차단 기능이 있는 투명 재질로 변화를 주어서라도 성당의 외관이 시민에게 좀 더 개방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Profile전진삼은 건축비평가로 격월간 건축리포트 발행인 겸 광운대 겸임교수다. 1960년생. 최근 네 번째비평집 를 냈다. 1980년 6월, 시 ‘참회’를 월간 시문학에 발표하면서 등단한 시인이다.*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8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