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여자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멜린다 게이츠는 세계 각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워왔다. 그녀가 최근에 알게된 건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가정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멜린다 게이츠,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빌 게이츠, 세계 문제, 사회 운동, 봉사, 라이프, 엘르, elle.co.kr:: | 멜린다 게이츠,페미니스트,페미니즘,빌 게이츠,세계 문제

여느 때처럼 식사를 마친 저녁, 멜린다 게이츠는 문득 불편한 진실을 발견했다. 남편 빌 게이츠와 세 아이는 자리를 뜬 반면 자기만 부엌에 남아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멜린다가 누군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생산관리자로 일하며, 남성이 장악한 IT 업계에서 살아남은 그녀는 이 오류를 즉시 수정하기로 결심한다. “제가 부엌을 떠날 때까지 아무도 부엌에서 못 나간다는 규칙을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모두 제게 와서 ‘내가 할 일은 없을까?’라고 묻더군요. 덕분에 부엌을 15분 더 빨리 나오게 됐고 훨씬 행복해졌어요.”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마저 15분의 시간을 놓고 협상한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여자들이 짊어져야 하는 부담은? 2000년에 창립한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은 아프리카의 성 평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멜린다는 여성으로서 집에서 느낀 괴리감을 1993년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비로소 선명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일의 양과 시간을 분배하는 방식에 있어서 아프리카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현실과 자신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멜린다는 농장과 집에서 여자들이 하는 일과 남자들이 하는 일이 적힌 카드를 모아놓고 아프리카 부부들이 분류하도록 한 적 있다. “앉아서 카드를 나누면 나눌수록 여자들은 점점 화가 났어요. 여자 쪽에는 카드가 45장이나 쌓였는데 남자들이 가진 패는 5장쯤 됐을까요. 민망한지 남자들은 킥킥 웃더군요. 자기네가 그렇게 일을 조금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던 거예요.”삶의 동반자, 빌 게이츠와 런던에서.게이츠 재단은 최근 제2차 ‘골키퍼스 리포트’를 발표했다. UN이 정한 지속가능 개발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수행하기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적 발전의 추이를 고찰한 보고서다. 올해 골키퍼스 리포트는 인구의 무려 60%가 25세 이하인 아프리카 청년층에 초점을 맞췄다. 이 젊은 인력에 투자하면 세계 최빈국들이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 인도와 중국의 길을 걷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리포트의 요지다. 진보적인 원칙을 세우고 여성 인권 문제에 집중하는 멜린다는 가족계획과 피임을 강경하게 옹호해 왔다. 이는 특히 아프리카 청년층에게는 중요한 이슈다. 이제 아프리카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숫자가 비등하고, 이들은 대륙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건강과 교육이 우선순위에 놓인다면 기후 변화와 정치적 불안정성, 폭력과 성 평등을 포함해 아프리카의 빈곤도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거대한 대륙 아프리카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해결 불가능한, 너무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멜린다는 이런 시선을 인지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대해 구시대적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직접 그 땅에 가 보면 에너지와 진정성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져요. 제대로 투자하면 완전히 날아오를 힘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한국을 보세요. 엄청난 투자 결과, 이제는 최첨단을 달리며 세계에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죠.” 케냐의 아이들과 함께.온갖 대륙을 횡단하며 다양한 현실을 목격하는 멜린다 게이츠에게 2018년의 페미니스트는 어떤 의미일까?  “지구상의 모든 여성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거죠. 과거의 성공한 여자들은 다음 세대 여성을 위한 일을 할 여력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여성을 강하게 만드는 데 관심이 있어요.” 미국이나 프랑스의 여성을 위한 일이 아프리카 시골이나 인도의 작은 마을에 사는 여성들에게도 좋지 않을 리 없다. “여성들이 힘을 모으면 그들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요. 강간범은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 마을에 의료 혜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힘을 얻는 거죠.”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업무 중 하나는 이미 아프리카에서 문화적 역학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국제 그룹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이다. 아무리 557억 달러(약 63조 4000억 원)의 자본금을 가진 재단이라도 해당 지역에 믿을 만한 협력 단체가 없고 그 문화적 맥락에 맞게 실천하지 못한다면 듣기 좋은 구호에 그칠 뿐이다. 게이츠 부부는 워런 버핏과 2010년에 시작한 인도주의 운동 ‘기빙 플렛지(The Giving Pledge; 베풂의 약속)’에 동참해 900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생전에 기부하고 세 자녀에게는 거대한 부의 일부만 상속할 것을 약속했다. 사회 환원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두 사람이지만, 정부 역할을 대체할 의도나 목적은 전혀 없음을 강조한다. “재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듣도록 계속 북을 두드리는 일과 비슷해요. 혁신적 기술을 발굴하고 가끔은 위험을 무릅쓴 행동을 한 후 효과적인 방법은 정부가 살펴보도록 제안하는 거죠."인도의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로부터 선물을 전달받은 멜린다 게이츠.재단이 주관한 ‘골키퍼스 2017’에서 버락 오바마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멜린다는 늘 현장에서 배운 교훈을 생각하기 위해 애쓴다. “아프리카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째서 이곳 사람들은 이런 걸 가질 수 없을까, 왜 이렇게 무력할까 하는 질문이죠. 그러다 보면 우리가 과연 얼마나 더 진보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어요.” 2015년부터 멜린다는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허브인 시애틀에서 피보털 벤처스(Pivotal Ventures)를 통해 여성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자본은 엄청나게 기운 저울의 평형을 복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멜린다에 따르면 “벤처 투자의 40%가 하버드와 스탠퍼드를 졸업한 남자들에게 가는 반면,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이 받는 자본은 0.05% 이하에 불과해요. 여성들이 눈에 띄는 곳에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배제와 편견은 더 커지겠죠.” 그런 편견은 이미 수많은 IT 산업에 팽배해 있다. 애플의 시리나 아마존의 알렉사만 봐도, 이런저런 여성의 목소리로 마음을 달래주고 편하게 해주는 비서 역할을 수행하지 않나!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보다 여성 중심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멜린다는 덧붙인다. 아무리 강력한 리더십도 여성들이 서로 지식과 권력을 공유할 네트워크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멜린다는 아프리카 여성 사업가들과 나눴던 저녁 식사를 기억한다. “그들은 함께 일하면 모두 비상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뭐든 할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믿는 근사한 여성들이었죠. 하지만 그 누구도 혼자서 해낼 수 없어요. 함께 뭉칠 때, 더욱 강해지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