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NEWS

가족은 스릴러일까, 코미디일까? 독특한 가족 영화 2

사랑의 아이러니는 소중한 마음이 커질수록 뒤틀린 방식으로 발현되기 쉽다는 점이 아닐까요? 가족의 사랑을 일깨우는 영화 두 편을 소개합니다.

프로필 by 라효진 2025.10.08

가족의 침묵을 스릴러처럼 그린 섬세한 영화 <장손>(2024)

2025 제34회 부일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쥔 독립영화 <장손>. 제목부터 어떤 이야기를 그릴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죠.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한 한국 전통의 상징이자 무게 중심이 되는 ‘장손’이라는 단어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 전통으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가족 구성원 각자의 서사를 한 겹씩 벗겨냅니다.

제사를 위해 오랜만에 3대가 모이는 시끌벅적한 풍경. 하지만 할머니 말녀가 갑자기 세상을뜨며 가족 간 말 못하고 묻어둔 앙금과 욕망, 억울함과 분노가 폭발합니다. 죽음, 명절, 제사, 유산 등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건을 통해 가족의 민낯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영화는 평단의 극찬을 받았는데요. 한정된 상영관임에도 입소문을 타며 독립영화로는 의미 있는 기록인 3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죠.

관객들의 반응은 ‘지금 시대에도 이런 집이 있다고?’라며 아연실색하거나 ‘우리 집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이퍼리얼리즘으로 그려낸 영화’라며 격하게 공감하는 반응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요.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오정민 감독은 “스무살 무렵 할머니가 돌아가신 기억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밝혔는데요.

대가족의 침묵과 불편한 공기를 영화는 스릴러처럼 밀어붙입니다. 우리나라 산천초목의 아름다움과 집성촌을 이루며 살던 시절의 시골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화면은 아름답고 고요하지만 그 속에 일렁이는 감정의 파동은 폭풍 같이 흐르죠. 가족 간의 위계, 남아선호사상, 돌봄의 책임, 사랑과 효라는 단어가 가질 수 있는 폭력성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죠.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익숙할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 명절 친지와의 만남은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만남이 되어버리는데요. 가족이 남보다 못한가족의 속물적인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가 나이를 먹으며 자신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다는 걸 깨닫고 한때 미워했던 가족을 배척하기보다는 좀 더 이해해보고 싶었다고 얘기한 오정민 감독의 말처럼 추석 명절에 보며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세대와 정체성, 전통의 경계를 유쾌하게 넘나드는 따뜻한 리메이크<결혼 피로연>(2025)

9월 24일 국내 개봉한 한국계 미국인 영화 감독 앤드류 안의 <결혼 피로연>은 이안 감독에게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안겨준 작품 <결혼 피로연>(1993)을 리메이크한 영화입니다. 동성 커플이 가짜 결혼을 계획하지만 피로연을 하며 일이 꼬이며 모든 게 탄로나고 마는 당시로서 파격적인 스토리로 LGBTQ 영화의 대표 작품으로 꼽히는데요. 앤드류 안 감독 역시 처음 본 퀴어 영화라 남다른 의미의 영화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안 감독은 이 영화를 요즘 세대의 감각과 한국의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다시 써내려 갑니다. <스파 나잇>, <드라이브웨이>, <파이어 아일랜드>를 통해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정체성과 가족, 그리고 욕망을 섬세하게 다뤄온 만큼 <결혼 피로연>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의 위트와 해학이 드러날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이번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섹션에 공식 초청되며 개봉 전 미리 관객을 찾았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감독 자신도 퀴어로서 결혼과 아빠가 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며 작품에 그 희망과 불안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었다고 고백했는데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 동성 커플의 ‘가짜 결혼식’을 통해 가족과 사회의 규범과 프레임을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비틉니다.

이민자 부모 세대에게 체면과 명예는 여전히 중요하게 남아 있지만, 젊은 세대는 그 안에서 자신의 사랑을 감추지 않으려 하죠. 앤드류 안은 이 미묘한 균열을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또 윤여정 배우가 손자를 전통혼례 시키는 할머니로 등장해 극의 리듬을 변화시키는데요, 항상 뇌리에 박히는 명대사를 남기는 그녀가 이번에는 어떤 명언을 배출할지도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피로연인 이유는 결혼이라는 제도적 관례 이후의 진짜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 아닐까요? 관계의 피로, 사랑의 피로, 가족의 피로가 쌓인 자리를 웃음과 눈물로 정화하는 의식처럼 말이죠.

관련기사

Credit

  • 글 이다영
  • 사진 각 영화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