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물 묻히기 싫을 정도로 진짜 예쁜 정수기 디자인

공식보다 우리만의 리듬으로. 비밥(BEBOP) 정수헌, 박리치의 경계 없는 디자인.

프로필 by 권아름 2025.10.28
박리치.

박리치.

정수헌.

정수헌.

BEBOP 정수헌, 박리치

정수헌과 박리치 디자이너가 이끄는 ‘비밥(BEBOP)’은 기존 공식을 따르기보다 자신들만의 리듬으로 디자인을 풀어낸다. 즉흥적인 프로세스의 변형과 끊임없는 실험은 경직된 틀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새로움을 향한 집요한 탐구는 예측할 수 없는 우여곡절조차 이들에게 에너지를 준다. 고정된 질서를 흔들고, 그런 흐름을 즐기는 과정에서 비밥의 디자인이 완성된다.


비상용 창문 파쇄기 ‘오브제머’.

비상용 창문 파쇄기 ‘오브제머’.


사람과 사물 사이의 감성적 유대를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고요. ‘감성적 연결’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나요

언제나 사물을 통해 사람에게 어떤 감성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사물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야 하고, 사람은 그 사물에 자연스럽게 애착을 느껴야 해요. 이를 위해 제품이 사람과 만나는 모든 접점, 즉 시각 · 촉각 · 청각 · 촉감에서 어떤 감각을 줄 수 있을지 세심하게 설계합니다. 단지 기능적으로 완성된 도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부드럽게 스며들어 감정을 매개하는 오브제를 만들죠.


감성적 접근이 제품의 형태나 디테일로 어떻게 전개되고, 그것이 사용자 경험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감지되는지

SK브로드밴드의 ‘AI 4 Vision’ 셋톱 박스는 카메라 기능을 활용해 운동과 게임, 영상통화 등 다양한 TV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됐습니다. 집 안 카메라에 대한 해킹 우려를 고려해 사용하지 않을 땐 카메라가 물리적으로 숨어 오브제처럼 보이도록 했고, 사용할 때만 자동으로 등장해 생동감과 친근함을 더해줍니다. 또 다른 사례는 현대렌탈케어 큐밍의 ‘딜라이트’ 정수기입니다. 대부분의 정수기가 정면에 집중할 때, 정수기를 공간 속 입체 오브제로 보고 컬러를 자유롭게 조합하고 배치할 수 있도록 했죠.


작업 전반에 깃든 유쾌함과 세심함의 근원은

저희 둘의 성격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해요. 장난기 많고 긍정적 기질이 컨셉트나 조형 언어에 반영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애정을 갖고 오래 사용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생명력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도록 캐릭터를 부여하려 합니다. 과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위트를 지닌 사람에게 끌리듯 비밥의 제품도 그런 매력을 가졌으면 해요.


현대렌탈케어의 생활가전 브랜드 큐밍을 위해 디자인한 ‘딜라이트’ 정수기.

현대렌탈케어의 생활가전 브랜드 큐밍을 위해 디자인한 ‘딜라이트’ 정수기.


차량용 비상 탈출 망치 ‘오브제머(Objemer)’처럼 오래된 형식을 가진 도구를 새롭게 정의한다는 건 어떤 도전일까요

오브제머는 대학생들이 의뢰한 소규모 작업이었어요. 대부분의 비상 탈출용 망치는 투박한 외형 때문에 조수석 서랍이나 뒷자리 포켓처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지기 마련인데, 문제는 사고 시 그런 위치가 치명적이라는 단점이 있어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망치’를 만들자는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새로운 형태를 찾는 일은 수월했지만, 초기 프로토타입은 실제로 창문을 깨지 못해 본래 기능과 충돌했어요. 수차례 테스트를 거친 끝에 비로소 기능과 형태를 만족시키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예산 문제로 출시되지 못했어요. 기능성과 감성, 구조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긴 프로젝트로 오래 기억에 남아 있어요.


디자인에서 창의성과 실현 가능성은 때때로 충돌하기도 하죠. ‘좋은 아이디어’와 ‘실현 가능한 결과물’ 사이의 간극은 어떻게 메우나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구현해 내는 것, 이 둘은 모두 빠질 수 없는 요소예요. 한쪽만 충족되면 제품은 세상에 나오지 못하거나 나와도 의미가 없어요. 디자인 초기 단계에서 실현 가능성에 너무 매몰되지 않으려 해요. 오히려 상상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비현실적 아이디어를 의도적으로 쏟아내죠. 그 후 우리만의 기준으로 아이디어를 정리해요. X축은 ‘혁신성’, Y축은 ‘실현 가능성’으로 삼아 배치해 보면 비현실적이지만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보여요. 우리는 그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아 실현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발전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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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권아름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 COURTESY OF BEB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