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위트와 퀄리티 모두 놓칠 수 없다면

위키노가 정의하는 한국 디자인은 뭔가 다르다.

프로필 by 윤정훈 2025.10.01
김수진 · 지은석 위키노 공동대표.

김수진 · 지은석 위키노 공동대표.

브레드(Bread) 모듈 소파.

브레드(Bread) 모듈 소파.

‘위키노’는 2014년에 론칭한 리빙 브랜드 ‘비아인키노’의 산하 브랜드다. 가구와 무관한 일을 하다 아내인 김수진 공동대표와 함께 비아인키노를 만들었다고

아버지가 가구 제작 일을 하셨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업에 대한 목표가 생겨 틈틈이 가구 제작과 유통 관련 실무를 경험했다. 당시 한국에는 로컬 리빙 브랜드가 막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었는데, 마침 결혼과 출산이라는 개인적인 일이 맞물려 키즈 가구를 론칭했다. 이것이 비아인키노의 시작이다. 이후 키즈에만 국한하지 않고 크바드랏(Kvadrat) 원단을 사용한 ‘디드(Deed) 소파’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며 브랜드를 키워나갔다. 그러다 2016년 파리 메종 오브제에 방문했는데, 한국 부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일을 계기로 처음으로 해외 진출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됐다.


 원판을 자유자재로 회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선반은 이광호의 ‘이클립스’.

원판을 자유자재로 회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선반은 이광호의 ‘이클립스’.

스웨덴의 노트 디자인 스튜디오(이하 노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해 위키노를 출범시켰다. 당시 국내 리빙 디자인 신에서는 보기 드문 선택인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는지

2018년 크바드랏 본사에서 열리는 바이어 초청 행사에 참석한 적 있다. 그 자리에서 한 관계자가 “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나는 “우리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해 솔직히 자신 없다”고 답했다. 이후 크바드랏 대표가 몇몇 파트너를 소개해 줬는데 그중 하나가 노트였다. 이후 노트와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기존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은 프로덕트 디벨로퍼로 포지션을 조정하고, 외부 디자이너들과 협업 체계로 전환하게 됐다. 경영자로서 낯선 도전을 한 셈이지만, 돌이켜보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위키노 위드 컬렉션으로 론칭한 스튜디오 워드의 ‘오들리 러그’.

위키노 위드 컬렉션으로 론칭한 스튜디오 워드의 ‘오들리 러그’.

그 첫 번째 결실이 ‘위키노 위드(Wekino With)’ 컬렉션이다. 이광호, 구오듀오, 스튜디오 차차, 최근식 등 총 일곱 팀의 한국 디자이너와 협업해 위트 넘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노트가 제안한 방향성은 ‘하이퍼 모던, 하이퍼 트레디션’이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조선시대의 궁과 고층 빌딩이 공존하는 풍경이 인상 깊었던 것 같다. 협업 디자이너를 한국 디자이너로만 구성한 것은 어쩌면 도전적인 결정일 수 있었으나 동시대 한국이 지닌 에너지와 역동성을 담고 싶었다. 디자이너들이 방향성을 자유롭게 해석하면서 신선하고 독창적인 작업들이 나왔다. 2024년 스톡홀름 가구 박람회에 참가했을 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국 리빙 브랜드가 처음 참가한 거라 더욱 의미가 컸다.


베이직한 아웃라인에 다양한 모듈 옵션이 가능한 ‘디드 소파’.

베이직한 아웃라인에 다양한 모듈 옵션이 가능한 ‘디드 소파’.

이어서 ‘비노(Vino)’ 컬렉션을 지난해에 공개했다. 기본에 충실한 이 미니멀 시리즈는 어떤 고민에서 출발했나

브랜드의 성장 속도에 비해 기본 제품 구성 폭이 좁다는 게 늘 고민이었다. 위키노 위드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구오듀오가 디자인한 제품에서 대담하면서도 위트 있는 형태미를 발견했고, 우리가 추구하는 재미와 과감함 같은 방향성과 잘 맞아떨어져 자연스럽게 협업으로 이어졌다. 비노 컬렉션은 체어와 테이블, 소파, 로 테이블 등 네 가지 제품으로 구성된다. ‘비노’는 이탈리아어로 와인을 뜻하는데,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식사 장면을 떠올리며 디자인을 완성했다. 밝고 부드러운 톤의 너도밤나무를 주재료로 해 자연스럽고 화사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집이나 카페, 라운지 등 다양한 공간에서 널리 쓰일 수 있는 편안하고 담백한 실루엣을 구현했다.


조각보를 감싼 천에서 영감을 받은 ‘크로마 미러’.

조각보를 감싼 천에서 영감을 받은 ‘크로마 미러’.

곡선과 직선이 극대화된 형태가 특징적인 ‘보이드 소파’.

곡선과 직선이 극대화된 형태가 특징적인 ‘보이드 소파’.

제작 과정이나 기능 면에서도 위키노만의 방향이 있을 것 같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용될 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위키노의 기본 전략이다. 크바드랏, 마하람 같은 브랜드의 소재를 사용하는 것도 단순히 유명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좋은 소재를 쓰고 싶어서였다. 늘 좋은 소재를 기반으로 위키노만의 합리적 접근을 고민해 왔다. 예컨대 ‘디드 소파’는 구스다운 대신 고밀도 메모리 폼으로 형태를 잡고, 겉은 구스 패드로 마감해 형태감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러운 주름이 생기도록 설계했다. 제작은 국내뿐 아니라 이탈리아 등 기술력 있는 해외 공장과도 협업하며, 철제 제품은 마지스(Magis)와 같은 공장에서 생산하기도 한다. 디자인뿐 아니라 기능과 완성도에서도 우리만의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 구오듀오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비노 컬렉션.

디자인 스튜디오 구오듀오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비노 컬렉션.

 위키노 위드 컬렉션의 일환으로 제작한 구오듀오의 ‘릴 행거’.

위키노 위드 컬렉션의 일환으로 제작한 구오듀오의 ‘릴 행거’.

주로 어떤 경로로 고객에게 소개하고 있나? 요즘엔 브랜드마다 B2B 확장도 활발하게 이뤄지던데

B2C 비중이 높긴 하지만 B2B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위워크, 패스트파이브, 맹그로브, 네이버, SK 등의 비즈니스 공간에 우리 가구를 제안했다. 기존 제품 입점부터 신규 개발까지 다양하게 접근했고, 그 과정에서 ‘뉴도큐먼트’라는 오피스 가구 라인도 론칭했다. 앞으로 위키노와 뉴도큐먼트를 함께 발전시키면서 더 다양하게 확장하고 싶다.


프레임과 패널을 여러 형태로 구성할 수 있는 ‘베이 베드 10’.

프레임과 패널을 여러 형태로 구성할 수 있는 ‘베이 베드 10’.

아이들의 드로잉에서 출발한 키즈용 ‘포포 체스트’.

아이들의 드로잉에서 출발한 키즈용 ‘포포 체스트’.

위키노는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 같다. 어떤 브랜드가 되고 싶은가

브랜드의 정체성을 특정 단어나 이미지로 고정하고 싶지 않다. 정형화된 아이덴티티보다 ‘이번 컬렉션은 어떨까?’ 하고 매년 기대하게 만드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또한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브랜드로서, 한국의 에너지를 과감히 드러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동시대 확장된 한국성을 디자인적으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노트와는 지난여름까지 협업하고 좋은 관계에서 마무리했다. 함께하며 배운 것도 많았지만 거리상의 한계 등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 보다 밀착해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했고, 올해 초 이광호 작가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해 호흡을 맞춰가고 있다.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해도 좋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사진가 KANG JI HOON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WEK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