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디자이너 문승지의 프로 집콕러를 위한 가구
하바구든 디렉터 문승지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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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구든’은 디자인 스튜디오 ‘팀바이럴스(teamvirals)’가 올해 선보인 가구 브랜드다. 팀바이럴스 공동대표이자 하바구든 디렉터로서 배경을 설명해 준다면
가구 디자이너로서 주로 상품보다 메시지를 담은 작업을 선보였다.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걸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씩 만들다 보니 6년이 흐르면서 자체 브랜드의 필요성을 느꼈다. 또 하나는 시스템에 대한 갈망이다. 늘 협업을 제안받는 입장에서 그 반대가 돼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할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싶었다. 팀바이럴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클라이언트 잡보다 ‘우리 것’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공간과 브랜딩, 전시 등을 다뤄온 우리 역량을 마음껏 쏟기로 했다. 스스로를 클라이언트로 삼은 탓에 욕심도 많아지고, 컬렉션 품목도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첫 단추 치고는 꽤 큰 규모로 시작하게 됐다(웃음).

문승지 하바구든 디렉터.
하바구든을 위한 팀은 어떻게 구성했나
팀바이럴스의 조직 구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부 인원을 하바구든 브랜드 팀으로 이동시켰다. 지금도 계속 채용 중인데, 시스템을 만든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더라. 잠을 못 잘 정도로 힘들지만, 나를 포함해 팀원들이 즐거워하는 게 느껴진다. 물론 앞으로도 잘 키워야 하겠지만.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몇 달 된 브랜드가 론칭하자마자 성공할 순 없지 않나. 지금은 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데 집중하는 중이다.

원형 상판에 직사각형 다리로 흥미로운 변주를 꾀한 ‘카브(Carve) 티 테이블’.

연남동에서 발견한 평상에서 출발해 미세한 다리 각도로 내구성과 겹쳐 쌓는 기능을 구현한 ‘YN 체어’.

왼쪽의 소파는 편안한 낮잠이 가능하도록 팔걸이 각도를 세밀하게 조정한 ‘냅 소파’, 바닥의 테이블은 소반이나 그릇 같은 동양적 오브제를 연상시키는 ‘바리 티 테이블’.
이미 가구 브랜드가 넘쳐나는 시대다. 그럼에도 하바구든 같은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은 ‘쉼’이다. 방식은 다를지언정 그 안에는 늘 가구가 있다. 하바구든은 집으로 향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인사말 ‘해브 어 굿 원(Have a Good One)’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디자인 업계는 늘 바쁘고, 야근이 일상이다. 어느 날 ‘내 삶은 출근 후부터인가?’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출근할 땐 긴장하고 옷도 차려입지만 집에선 완전히 오프 상태가 된다. 소파 위 널브러진 모습도 결국 ‘나’다. ‘집에서의 나’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브랜드, 집에서 소소한 행복을 인지하고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브랜드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평상 구조에서 착안해 편히 모여 쉬는 휴식의 의미를 담은 ‘YN 바 스툴’.
트렌드 변화가 빠른 한국 시장에서 가구 브랜드를 론칭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나
오히려 변화가 많고 빠른 시장일수록 한결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브랜드가 필요할 것 같았다. 빠른 시대 흐름에 편승하게 되면 금방 정체성을 잃을 것 같기도 했고. 첫 컬렉션에 내 취향이 많이 반영됐다. 나는 가구가 공간의 주인공이 되기보다 조용히 뒷받침하는 존재가 됐으면 했다. 한번 들이면 쉽게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너무 선명한 캐릭터의 가구는 다른 작은 취향을 가려버릴 수 있다. 강렬한 색상의 소파가 하나 놓이면 공간의 모든 요소가 그것에 맞춰져야 하지 않나. 그래서 자연스러운 텍스처와 재료 본연의 감촉, 둥글고 편안한 형태를 지향했다. 컬러보다 질감에, 형태보다 조화에 집중했다. 여러 제품군이 섞여 있어도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지도록, 시간이 지날수록 더 편안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가구가 목표였다.

곡선과 직선이 완만하게 만나는 모서리를 지닌 ‘바리 티 테이블’.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꿈꾸지 않나. 단번에 주목받는 아이템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은 없었는지
단기간에 눈에 띄는 아이템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브랜드가 성숙해지고, 고객과 더 많이 소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코닉한 디자인도 생겨날 거라고 믿는다. 실제로 론칭 당시 누군가 하바구든을 ‘저자극 브랜드’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이 반가웠다. 그 안에 편안함이라는 가치가 담겨 있다고 느꼈다. 가구의 수명을 늘리는 데 더 관심이 많다. 처음부터 대부분의 제품을 부위별로 분해하고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오랫동안 사용한 소파의 팔걸이가 변형됐다면 그 부분만 교체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낮잠을 뜻하는 ‘냅(Nap) 소파’, 룸메이트에서 비롯된 ‘루미(Roomie) 모듈 소파’ 등 친근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우리 제품 중엔 집에 있을 때 나오는 사소한 습관이나 자세에서 모티프를 얻은 게 많다. 예를 들어 모서리가 살짝 둥근 ‘허밍(Humming) 다이닝 테이블’은 무의식적으로 식탁 가장자리를 만지는 내 습관에서 비롯됐고, 냅 소파는 소파에서 자주 자는 내가 더 편하게 쉬고 싶다는 바람에서 탄생했다. ‘루미 모듈 소파’는 체격이 큰 룸메이트를 떠올리며 지은 이름이고. 이렇게 일상적인 동작과 관계에서 출발한 가구는 자연스럽게 집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좁은 공간에서도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사이즈로 구현된 ‘콤팩트 라운지체어’.
소재나 기능 면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는
‘허밍 다이닝 테이블’은 오픈 포어 도장 방식으로 마감했다. 광택은 줄이고 나뭇결을 드러내는 기법이다. 소재를 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햇살이 잘 맺히는가’이다. 빛이 닿았을 때 질감이 살아나고, 신체가 닿았을 때 촉감이 느껴져야 사용자 입장에서 ‘공간의 밀도’가 높아진다. 그것이 공간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루미 소파는 종아리가 닿는 부분을 살짝 앞으로 빼는 등 좌식에 익숙한 한국인의 생활방식을 고려해 설계했다. 소파 아래쪽에 등을 대고 앉거나, 배달 음식을 먹을 때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우기 불편한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기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각도만으로도 일상이 달라질 수 있고, 그렇게 쌓이는 생활의 궤적이 결국 좋은 가구의 이야기가 된다.

소파 아래에 앉아 등을 기대는 습관을 반영해 미세한 곡률을 더한 ‘루미 모듈 소파’.
하바구든의 다음 챕터가 궁금하다. 협업 또는 확장 계획을 들려준다면
한남동 ‘하바구든 하우스’는 팀바이럴스의 본사이자, 전시나 협업 등 커뮤니티 기반 프로젝트를 위한 공간이다. 그래서 ‘쇼룸’ 대신 ‘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였고, 올 하반기에 청담동에서 새로운 쇼룸을 오픈할 예정이다. 현재 협업 디자이너를 구체적으로 선정한 단계는 아니지만, 좋은 브랜드가 돼야 좋은 디자이너들도 관심을 갖는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단순 판매 증대가 아니라 우리와 결이 맞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 한 사람의 감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브랜드가 아니라, 다양한 창작자의 시선과 이야기를 아카이빙하는 브랜드가 되길 바란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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