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모래 위에 쌓아 올린 리부트
시리즈 분위기를 완벽히 반전시켰다는 점에선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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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에 영화 <슈퍼맨>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은 슈퍼맨입니다. 그 서사는 신화에 가깝죠. 슈퍼맨의 출신지 크립톤 행성은 지구보다 월등한 문명을 자랑하고, 거기 사는 크립톤인은 지구인과 비교할 수 없는 신체 능력을 갖고 있어요. 크립톤 과학자 부부의 외동아들인 칼-엘로 태어난 슈퍼맨은 고국의 멸망 앞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지구, 미국 캔자스 시골 마을로 보내집니다. 지구에서 바라본다면 하늘로부터 땅으로 떨어진 '무언가'입니다. 인간과 흡사한 외모와 더불어 인간을 압도하는 힘을 지닌 이 생명체는 신과 매우 닮았습니다.

잭 스나이더가 DC 유니버스를 맡은 후 슈퍼맨은 이전보다 더 신으로 추앙됐습니다. 슈퍼맨이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세계관 최강자라는 점은 변치 않는 사실일텐데요. <맨 오브 스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저스티스 리그>를 거치며 슈퍼맨은 두려운 존재로 변모했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지구를 지키려는 다른 히어로들이 고군분투 끝에 소환하는 최후의 병기로 탈바꿈했죠. 이를테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 속 센티넬처럼요. 우리 편이 아니면 절망적일 만큼의 힘으로 빌런들을 찍어 누르는 슈퍼맨의 모습은 공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제임스 건이 DC 유니버스의 지휘자가 된 후 뜯어고친 건 바로 이 신격화된 슈퍼맨 서사입니다. 그가 새로 내놓은 <슈퍼맨>은 원작 만화의 설정을 최대한 살리되,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에서 봤던 육중하고 속도감 있는 액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슈퍼맨을 더 이상 DCEU의 유일신처럼 받들지도 않죠. 그래서 <슈퍼맨>의 첫 장면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슈퍼맨(데이비드 코런스웻)이 빌런과의 대결에서 처음으로 패배해 남극 설원에 처박히는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영화의 주요 내용도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앞에서는 세계 평화를 주창하면서도 뒤로는 침략의 명분을 만들어 약한 나라를 삼키려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대부분의 히어로물이 냉전과 신냉전을 소재로 하고 있다해도, <슈퍼맨>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뉴스를 통해 자주 봤던 모습들이 나라 이름만 바뀐 채 등장합니다. 슈퍼맨은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외계인으로서, 오로지 약자를 지키기 위해 싸움에 개입해요.
그런 슈퍼맨의 행동에 강자는 야유하고 약자는 환호할 겁니다. 다만 극 중 슈퍼맨의 판단 기준은 세계 정세나 거기에 작용하는 정치 공학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습니다. 더 무기가 적고, 더 많이 죽는 게 약자입니다. 그리고 약자는 더 약하고 선하게, 강자는 더 강하고 악하게 그려지죠. 현실의 한 단면을 가져온 것 치고는 선악 구도가 몹시 단순하고 강렬하게 대비됩니다. 그래서 슈퍼맨과 데일리 플래닛의 에이스 기자 로이스(레이첼 브로스타한)의 토론도 매우 얕은 수준에서 이뤄집니다. '슈퍼맨은 멋대로 전쟁에 개입해선 안 된다'와 '슈퍼맨은 약자가 죽어 나가는 걸 손 놓고 볼 수만은 없다'는 평행선 토론에 고성까지 오고가는 대목에선 피로감이 느껴집니다.
이처럼 선과 악을 단순화한 연출은 앞으로 나올 <슈퍼맨> 시리즈의 무게감을 더는 데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전쟁에 미친 강대국들과 군수업체 사장은 당연히 악입니다. 평화를 위해 불가피한 폭력을 사용하는 슈퍼맨은 물론 선이고요. 비슷한 토론을 이미 떼거지로(?) 벌인 <어벤져스: 시빌워>와 달리, 이 문제에 대해 크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영화 속 악당들이 가짜 뉴스를 만들어 슈퍼맨을 나락으로 보내고, 원숭이들이 조작된 여론을 강화하는 댓글들을 쏟아내는 장면 역시 지루한 풍자라고 흰 눈 뜰 필요 없이 '나쁜 행동'이라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감독은 이로 인해 분열된 세계를 비판하면서도 슈퍼맨을 향한 여론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건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눈 감고 넘어가니까요.

<슈퍼맨>은 쉽게 풀어낸 배경 위로 DC 유니버스에선 볼 수 없던 새로운 캐릭터들을 생성합니다. 우선 슈퍼맨을 가볍게 만들며 반려견 크립토와 숫자로 이름 붙인 인공지능 로봇들을 '심적 조력자'로 등장시켜요. 치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관객들의 마음을 뺏기 좋은 캐릭터들입니다. 양부모와 로이스 외엔 맘 붙일 곳 없던 슈퍼맨의 새 가족은, 제임스 건이 MCU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속 그루트와 로켓 라쿤을 부각하며 썼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슈퍼맨 외에는 모두 적이었던, 엘리먼트맨을 비롯한 외계인 중 일부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입니다. 리부트된 세계관에서 영화로는 첫 선을 보인 저스티스 갱의 캐릭터들도 미형을 고집하지 않아 친근합니다. 껄렁껄렁하고, 다혈질이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치는 제임스 건 식의 캐릭터들은 분명 멋지지 않아도 정이 가죠. 지나치게 비장했던 서사와 인물들이 팬 유입을 가로막았던 이전의 시리즈와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동시에 <슈퍼맨>에서 강렬한 기시감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한데요. 챗GPT에 '제임스 건 스타일로 슈퍼맨 시나리오를 써 줘'라고 치면 이 영화와 비슷한 결과가 도출될 것 같거든요.

여성 캐릭터 활용 방식은 매우 지루합니다. 로이스가 슈퍼맨의 '역(逆) 크립토 나이트' 같은 존재라는 건 변치 않는 설정입니다. 궁극적으로 슈퍼맨을 움직이게 하고, 살리는 도구로 기능해 왔죠. 세계관 리부트 시작 단계에서 로이스의 주체성 부각까지 기대하긴 힘들다고 선해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슈퍼맨>에서 로이스 외의 여성들이 심각하게 평면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금발에 태닝한 피부, 요란한 차림을 하고 생각 없이 행동하는 여성 캐릭터가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슈퍼맨에게 도움을 주는 걸 유머라고 볼 시대는 이미 지났으니까요. 심지어 언론사인 데일리 플래닛에도 비슷한 외형을 한 여성 캐릭터가 나와서 로이스에게 불필요한 수다를 떱니다. 잭 스나이더의 DC 확장 유니버스에서 이름 만으로 배트맨과 슈퍼맨의 싸움을 막았던(?) 마사 켄트의 말들은 더 이상 조언이 아닌 잔소리였고요.
그 와중에도 <슈퍼맨>이 영리했던 대목은 슈퍼맨과 크립톤의 관계를 끊어낸 부분입니다. 극 중 슈퍼맨이 인간을 구하려 했던 건 크립톤의 친부모가 남긴 메시지 때문이었는데요. 영상의 뒷부분이 손상돼 줄곧 전체 내용을 알 수 없었죠. 그러나 복원된 메시지에 담긴 친부모의 진짜 속내는 '크립톤의 마지막 아들로서 인류를 말살하라'였습니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서 정체성 혼란으로 번민하던 슈퍼맨은 이 메시지를 통해 과거와, 고향과 작별하고 비로소 지구에 발을 내딛습니다. 마치 완전히 새로운 DC 유니버스가 펼쳐질 것을 암시하듯 말이죠. 분위기는 반전됐고, 제임스 건의 성은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제임스 건의 자기 복제와 설정 및 서사 단순화는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슈퍼맨>이라는 성이 모래 위에 지은 것처럼 불안하게 느껴지는군요.
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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