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맛있게 탐미하는 법
맛도 좋고 멋도 좋은 서울의 새 레스토랑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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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정
아래가 검게 보일 정도로 깊은 우물이 있던 곳. 묵정동의 한 골목에 새로 자리한 ‘묵정’은 단순히 식사를 넘어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깊이를 선사한다. 마을에 물을 전달하며 생명의 근원을 상징했던 우물처럼 ‘묵정’은 5년 동안 직접 숙성시킨 장과 소스를 사용해 발효 음식을 기반으로 한 치유 요리를 선보인다.


한국계 미국인인 오스틴 강 셰프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서양적 요소가 약간 가미됐지만, 퓨전 요리가 아닌 엄연한 한식. 공간 또한 한국적이다. 말갛고 단아한 백자, 한옥의 기둥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 나무와 돌 등 곳곳에 보이는 자연 요소들이 세심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이는 식탁 위에서도 나타난다. 단아하고 정갈한 차림새, 슴슴한 간과 부담 없는 요리는 공간 전체에 감도는 느린 미학을 꾸준하게 이어간다.

파티나
부부가 이탈리아에서 일하던 시절, 친근한 대중식당에서 먹었던 파스타 한 그릇이 그들의 안식처가 됐다. 그 따뜻한 추억을 되살려 부부는 편안하고 캐주얼한 무드의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열었다. ‘파티나’는 생면 파스타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단품 요리를 선보인다.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페리지’에 이어 ‘파티나’를 연 건 좀 더 대중적이고 가볍게 들를 수 있는 레스토랑을 실현하기 위한 것.


너른 통창으로는 창덕궁 일대가, 반대편으로는 서울 시내가 펼쳐진다. 내부 디테일을 최소화하고 모노톤으로 구성한 것 역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창밖 풍경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파티나라는 이름은 오래된 금속의 겉면에 나타나는 녹의 빛깔을 뜻해요. 시간이 쌓일수록 우리만의 고유한 색깔로 덮였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죠.” 이곳에서의 한 끼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안식처가 될지도 모른다.

뮐
쇠고기를 메인으로 한 제철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뮐’은 흔히 말하는 '오마카세’ 레스토랑이나, 정형화된 레스토랑의 이미지를 완전히 비껴간다. 주방장이 당연히 서있을 법한 메인 홀엔 주전자 하나만 홀연히 끓고 있거나, 조리공간을 별도로 숨겨 신작을 공개하듯 코스 요리를 서빙한다. 그 덕에 손님들의 이야기가 편히 흐르는 것은 물론, 선물을 기다리는 것처럼 다음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조용히 부푼다.

‘뮐’이라는 이름은 클로드 모네의 대표작 ‘건초 더미’에서 따왔다. 모네는 같은 대상을 오랜 시간 관찰해 빛과 계절의 변화를 포착했다. 이에 영감받아 공간 대부분을 통창으로 마무리해 코스 요리가 진행되는 동안 시간 흐름에 따라 변하는 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한지를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햇빛과 편안한 분위기, 깜짝 선물 같은 코스는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부르고뉴 한남
으슥한 동굴을 탐험하듯 거친 돌벽이 있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른다. 묵직한 나무 문을 열면 프랑스의 와이너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부르고뉴 한남’은 500여 종의 와인과 어울리는 한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투박한 석조와 아치형 구조, 그와 대비되는 매끈한 실루엣의 와인병으로 구성한 공간은 우아함이 감돈다.


이곳의 특징은 와인 리스트가 없다는 점. 실제 와이너리에 방문할 때처럼 소믈리에가 손님의 취향을 듣고 와인이 진열된 동굴에서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한다. 와인 리스트도 매주 바뀌기 때문에 매번 다른 와이너리에 온 것 같은 신선함이 있다. “와인 바를 넘어 부르고뉴 자체를 경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라는 점이 저희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와인은 술이 아니라 문화니까요.” 무엇보다 특별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와인 한 잔.

꼴라쥬
노진성 셰프의 새로운 실험실이 문을 열었다. 이전 ‘다이닝 인 스페이스’에서 선보였던 클래식한 프랑스 요리에서 나아가 더욱 실험적이고 개성적인 요소를 더한 프랑스 요리 기반의 창작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발효한 토마토를 가미한 참치 요리, 꿀과 바나나를 메인으로 한 디시, 샬롯을 주제로 한 독창적인 요리 등 콜라주 기법처럼 이리저리 실험하며 여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미식의 세계로 안내한다.

내부 곳곳은 화려한 꽃 오브제로 모던하고 무게감 있는 공간에 포인트를 더했다. 특히 홀 중앙에 놓인 센터피스는 꽃과 화병, 조각상, 액자 등 다채로운 오브제를 믹스매치해 화려하면서도 빈티지한 감성을 전한다. 단순함 속에 피어난 상상력이 돋보이는 곳, ‘꼴라쥬’의 창작 실험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기가스
나무가 무성한 내리막길을 걸어가 건물에 다다른다. 붉은색의 좁고 긴 통로를 지나면 오감을 자극하는 맛있는 향기가 마중한다. ‘기가스’는 직영 농장인 ‘와니농장’에서 농사지은 식재료로 요리를 선보이고, 남은 음식은 다시 농장 퇴비로 사용하는 ‘팜 투 테이블’ 레스토랑이다.

자연을 물씬 느끼게 하는 긴 흐름의 외부 동선, 부드러운 흙 위를 걷는 듯 딱딱한 콘크리트에서 변화하는 푹신한 촉감, 켜켜이 쌓은 흙담과 여백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식탁으로 연결되는 시선까지. 단순히 식사하는 것만이 아닌, 땅에서 시작된 미식 여정을 공간으로 불러왔다. 매일 바뀌는 메뉴 또한 이곳의 매력 중 하나. 그날 수확하는 식재료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요리는 계절감을 물씬 느끼게 한다. 자연이 가득 담긴 한 상은 비할 바 없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Credit
- 에디터 이지현
- 사진 묵정·파티나·부르고뉴 한남·뮐·꼴라쥬·기가스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민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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