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삼의 건축 도시 탐험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한글을 사랑한다. 글을 깨친 후 40년 넘게 쓰고, 뱉고를 거듭해왔지만 현재도 나 스스로가 제대로 한글을 사용한다고 생각진 않는다. 세상의 저 많은 편집쟁이들이 교열 교정본답시고 내 글 특유의 리듬일랑은 완전 무시하고, 판에 박힌 문장의 규칙으로 자르고, 붙이고를 반복하고 있는 걸 보면 특히 그렇다. :: 광화문,광장,공간,전진삼,엘르,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광화문,광장,공간,전진삼,엘르

Profile전진삼은 건축비평가로 격월간 건축리포트 발행인 겸 광운대 겸임교수다. 1960년 생. 최근 네 번째 비평집 를 냈다. 80년 6월, 시 '참회'를 월간 시문학에 발표하면서 등단한 시인이다.한글을 사랑한다. 글을 깨친 후 40년 넘게 쓰고, 뱉고를 거듭해왔지만 현재도 나 스스로가 제대로 한글을 사용한다고 생각진 않는다. 세상의 저 많은 편집쟁이들이 교열 교정본답시고 내 글 특유의 리듬일랑은 완전 무시하고, 판에 박힌 문장의 규칙으로 자르고, 붙이고를 반복하고 있는 걸 보면 특히 그렇다. 그 사이 ‘나’라는 화자는 쉽게 실종사고를 당하고 만다. 나는 우리말이 문법에 치우치기보다는 화법에 이끌리어 성장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말하고 쓰는 이에 따라 새로운 느낌의 말과 글을 엮어내 주는 것이 우리말, 한글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광화문광장에 입장하면서 처음 맞닥뜨린 대왕세종과의 밀담은 그렇게 시작했다. 황금빛 피막으로 두른 대왕세종의 동상은 듣던 대로 거대했다. 솔직히 그에 관한 민족의 사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보다 크게 만들어놓았던들 욕할 것이 못되었다. 오히려 스케일이 클수록 좋았다. 북한의 김일성 동상과 같이 스케일의 장대함에는 반 인본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신격화하는 구성방식은 시대역행적이다. 그 참에 대왕세종이라는 군주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한글창제의 배경에 대해서 되짚어보았다. 제왕의 존재를 복원하는 이 시대의 논리가 의문되었다. 광화문 앞 세종로가 자동차 도로로 전용되고 있을 때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광장은 천지개벽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시민들 다수가 찾아와서 한때를 즐기고 가는 명소가 되었다는 점에선 관료적 발상이나마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할 것이다. 부족하나마 조선조 육조거리의 역사적 공간성을 고취시킨다는 점에서도 이 광장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겨울철 스케이트장이 개장되고, 빛의 마당이 개설되고, 블록버스터 드라마세트장과 국제스포츠이벤트의 장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광장의 현란한 마스크를 보고, 경험하면서 이 새로운 장소에 관한한 좋고 나쁨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참으로 소모적이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무엇보다도 나는 이곳의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광화문광장이라니. 우리에게도 광장의 역사는 혁명의 공간으로부터 다가왔다. 100만 인파가 빼곡히 모여들던 과거의 5.16광장은 냉전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군사정권의 무력을 바탕으로 한 민주압제의 장소성이 강했다. 그 장소를 애용하던 종교단체와 기관들은 한결같이 인구동원력을 과시하는 선전장으로 활용했다. 그러던 것이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서울시청 앞 열린 공간을 중심으로 국민적 응원의 코어가 생성됨으로써 우리에게 광장의 의의를 되새기게 해준 것이 최근의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서울시청 앞 열린 공간은 광장의 이름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오늘 현재도 열린 광장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그러나 여전히 통제되고 있는 외부공간으로 남아 있다. 반면 광화문광장은 오래전부터 각계각층의 발원이 빌미가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니만큼 감회가 새롭다. 90년대 이후 순차적이나마 차 없는 거리로부터 출발하여 광장 조성의 가치를 여러 번에 걸쳐 예행연습을 해온 터라 이곳이 광장의 잠재적 가치가 높은 곳이라는 점에서는 이의를 달 여지가 없다. 학습된 광장이란 뜻이다. 그래서 현재의 모습으로 조성된 광장에 대하여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광장의 공간구성과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통째로 모순덩어리로 비추어지고 있다 할 것이다.문(門)은 길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광화문은 세종로라고 하는 남북의 장축과 함께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비록 자동차도로에 한정된 공간활용에 국한되었을지라도 그러한 관계가 광장의 의미보다 중요한 것이다. 현재 공사하고 있는 광화문의 건축술적 복원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도 광화문삼거리의 차량통행 제한에 역점을 둔 교통체계의 지속적인 연구가 따라야 할 것이다. 현재의 10차선으로 다이어트된 세종로의 차로는 여전히 이 광장의 의미를 압박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그 같은 일련의 후속조치가 따라주었을 때라야 만이 광화문과 육조거리로 통칭되는 남북축선 상의 가로의 성격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하더라도 이곳을 두고 광화문광장으로 이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광화문 앞 공원’ 또는 ‘세종로 가로공원’이라 부르는 것이 제격이다. 경계해야할 것은 북경의 천안문광장화(化) 하는 것이다. 현재의 광화문광장 조성의 배경에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상징공간 수법이 노골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차로에 둘러싸인 열린 공간에 나무그늘 하나 찾을 수 없는 대신 거리가구와 같은 성격이 강한 장치물만이 몇 점 덩그러니 놓여있는 꼴이며, 언제든 공권력에 의해 통제 가능한 공간의 구성형식이 불안함을 가중시킨다. 광장의 양옆에 도열하듯 서 있는 근현대의 기념비적 건물들. 그것들의 용도가 차후 문화시설로의 변경의 여지를 안고 있다하지만 광로를 곧장 광장화 하는 과정에서 이곳의 장소성이 흡사 상징공간에 연연한, 포토그래피적 장소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야기 시킨다. 게다가 혹자의 말마따나 지상 최대의 중앙차로분리대라는 비판이 억지스럽지 않다고 해야 할 판이다. 광장의 지하 일부를 이용한 전시공간 ‘세종이야기’는 지상에 모신 대왕세종과 한글창제의 의의를 전파하려는 의도를 읽는 대는 어려움이 없었고, 나름 효과적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까지 구상했을 바에야 대왕세종의 동상을 지하의 이 공간에 보다 인간적 스케일의 규모로 모셔놓았다면 그 시대 백성과 함께 한 제왕의 기품을 다른 각도에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상의 광장은 시민 다수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좀 더 열어놓을 수 있었을 것이고 여름의 태양과 겨울바람에 완벽하게 노출되는 방만한 외부공간의 형식보다 자연환경을 적절히 조절하는 조경디자인의 식재수법을 적극적으로 가미하여 이용자가 불편한 광장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역시 기념비적 광장 조성의 발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도시의 외부공간은 시대에 따라 내용과 형식이 변한다. 그것은 5.16광장이 현재의 여의도광장으로 변화되어온 과정만 되돌아보아도 싶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광화문광장, 즉 세종로 가로공원의 공간적 재편을 예기하고, 상상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광장 운영의 관리자들에 의한 인위적인 프로그램 이전에 시민들이 스스로 발의하고, 꾸려나가는 작은 단위의 프로그램들이 모여서 광장의 순기능을 채워나갈 때 비로소 이곳의 정체성도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관은 광장의 성격을 좌지우지할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시민에게 개방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 과정에서 관과 민의(民意) 사이에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게도 되고, 때로 물리적 충돌이 난무하는 광경을 보여주게도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참여와 활용에 의해서 열린 공간의 성격이 정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이다. 현재와 같이 행정의 통제와 강제된 프로그램의 공간씀씀이가 지속된다면 수년 내에 광화문광장은 최악의 도시 내 공간으로 추락할 것이 자명하다. 그곳엔 시민에게 열린 공간이 아닌 권력집중형 기념비적 공간만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2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