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추억을 함께한 '카세트테이프'

내가 사랑해서 모으기 시작해,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설명이 돼준 <엘르> 에디터들의 소장품. 소중히 모아온 그들의 유산과 의미를 담은 시간을 공개한다.

프로필 by ELLE 2014.11.14

features editor lee kyong eun

요즘은 음반계 유행이 LP로 회귀하고 있다지만, 30대인 내게 추억을 방울방울 플레이하는 건 카세트테이프다. 서로가 가진 플레이어가 소니 워크맨이냐 아이와냐를 놓고 누가 더 멋있는지 싸우곤 했던 그때, 앨범이란 자고로 테이프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하는 게 당연했다. <엘르>가 나온 1992년 즈음부터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특히 라디오를 주름잡던 뮤지션들의 가요 음반들을 꾸준히 사모았는데, 그중에서도 실제로 테이프가 늘어져버린 것들만 가지고 왔다. 물건을 거의 모으지 않는 내게 유일하게 추억을 재생시켜 주는 보석 같은 음악들.

 

 

 

 

 

 

1 패닉 1집 <Panic> 중학교 때 장기자랑에서 HOT의 캔디를 부르자는 대다수 친구들 사이에서 패닉의 달팽이를 부르자고 말했다가 곧바로 찌그러졌던 기억.

2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당시에 최고였던 포크송들로 채워진 김광석의 유작 가사를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눈물이 나곤 했다.

3 카니발의 <카니발>. 이적과 김동률의 프로젝트 음반으로, 이 카세트만 늘어져서 다시 사길 아마 네 번쯤 반복했다.

4 크라잉 넛 3집 <하수연가>. 그들이 여전히 ‘말달리자’ 원 히트 원더로 남은 것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명반.

5 윤상 3집 <클리셰>. 윤상이란 이름이 ‘드럼 앤 베이스’의 고유명사로 뇌리에 새겨진 음반.

6 유재하 트리뷰트 <1987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음악 좀 듣는 언니 오빠들이 이미 세상에 없는 유재하 얘기를 할 때마다 질투가 났고, 마침 이 트리뷰트 음반이 나왔다.

7 조규찬 6집 <해빙>. 뭉개지는 발음과 스캣과 비음, ‘외제’ 냄새 나는 싱어송라이터가 그렇게 멋져 보이던 시절.

 

 

 

 

 

 

 

8 루시드폴 1집 <Lucid Fall>. 미선이부터 루시드폴까지, 시와 같았던 가사들.

9 토이 3집 <Gift> 유희열이 ‘저질 킹’으로 알려지기 이전, 맑고 순수한 영혼의 끝을 달릴 때 나온 음반.

10 전람회 3집 <졸업>. 나는 왠지 이 음반 이후 소녀를 졸업해 버린 것 같았다.

11 이승환 3집 <마이 스토리>. 지금은 오글거리는 내레이션 트랙조차 넘기지 않고 다 듣곤 했다.

12 이규호 1집 <Alterego>. 그의 소년 같기도, 모기 같기도 한 목소리는 대체 에너지가 없다.

13 전람회 1집 <Exhibition>. 사실 ‘기억의 습작’이 다시 유행하는 게 화가 날 정도로 나만의 추억이고팠던 앨범. 남들이 다 김동률을 좋아할 때 나는 서동욱을 좋아했다.

14 <10+1> 트럼페티스트 이주한과 세션들로 구성된 음반. 당시 최고의, 지금도 최고인 뮤지션들이 모두 모여 있는 저력의 음반.

 

 

 

 

 

 

 

15 마이클 잭슨 리믹스 음반 <Blood on the Dance Floor>. 나는 오직 ‘You are not alone’ 때문에 음반을 샀는데 정규/ 비정규 개념이 없어서 이 리믹스 음반 속엔 온통 모르는 노래뿐이라 매우 실망했다.

16 시나위 2집 <Down and up> 독서실에 있는 대학생 오빠들이 시나위를 듣는다고 해서 억지로 샀는데 나는 한 번 플레이하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내가 산 것 중에서 가장 덜 들은 음반.

17 이승환 4집 <Human>. 이승환이 ‘천일동안’으로 전 국민을 노래방에서 울게 한 1995년. 버림받은 남자의 힘 빠진 콧소리는 그 시절 발라드의 정석이었다.

18 패닉 2집 <밑>. ‘엘리트 반항아’란 여고생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적이 쓴 그로테스크한 노랫말들은 지금 들어도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흡입력 있다.

19 이 카세트 테이프들을 위해 돌고 돌았던 파나소닉 카세트플레이어. 여전히 잘 작동한다.

20 김광석 <다시 부르기 1> 우연히 이 음반을 사고 1994년인가 중학생 시절 대학로에 가서 김광석 생전에 콘서트를 한 번 본 적 있다. 인생 최초이자 최고의 공연으로 기억한다.

21 긱스 1집 <Gigs>. 정원영한상원이 함께 밴드를 한다는 건 용호상박, 쌍벽, 난형난제 그 자체였다.

22 김현철 <베스트 앨범>. 두 장의 테이프 속에 그의 히트곡이 빼곡히 담겼다. 이전 김현철 음반들은 그가 살찌고 나서 다 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다.

 

 

 

Credit

  • editor 이경은
  • 천나리
  • 유리나 photo 우창원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