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굳이 줄을 서서 먹어야할까?
손님이 줄을 선다. 줄이 손님을 부른다. 줄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러면 대박 난 가게가 된다. 다시, 줄이 줄줄이 줄어든다. 거품이 사그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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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시간엔 줄 서기를 질서라 배웠다. 역사 시간엔 줄 서기를 정치라 배웠다. 새로 생긴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30분째 한 줄로 대기 ‘타고’ 있는 우리는 뭘 배우려고 여기 있나 하면 정답은 없고 이유는 맛보기 위해서다. 이름 난 건 꼭 한 번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트렌드세터,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애식가, 블로그나 SNS 활동을 위한 스포일러, 호기심 강한 따라쟁이들이 혼재한 이 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은 누굴까. 놀랍게도 ‘따라쟁이’다. 젊은 세대에 미식가는 사라졌다. 망발만은 아니다. 미식(좋은 음식)을 따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비교할 수 있는 맛의 아카이브도 필요하고 물론 세 치 혀의 감각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밥 한 끼 먹는 데 할애할 여유가 많지 않다. 그러니 ‘뭘 먹지’라는 물음을 해소하는 건 늘 남이 먹은 메뉴이자, 남이 가 본 가게다. 검색 창에 ‘강남 맛집’ ‘가로수 길 유명한 카페’ 같은 키워드를 쳐넣는다. 수도 없는 리스트와 블로거의 품평이 이어진다. 트렌드 좀 아는 사람이라면 이제 이렇게 입력한다. ‘줄 서서 먹는 집’. 리스트가 검증되면 사람들은 그 행렬에 합류한다. 제대로 음미할 시간은 없지만 고집스레 기다릴 시간은 된다는 아이러니. 바야흐로 줄 서기는 유명세의 필요충분조건이 됐고, 매장 오픈을 기념으로 입소문 마케팅을 넘어 줄 세우는 마케팅의 근간이 됐다. 프랑스의 수십 년 된 마카롱 가게나 벨기에의 장인 정신이 깃든 초콜릿 카페 같은 헤리티지는 파워풀한 입김이다. 온라인이나 SNS 릴리즈를 기점으로 사람들이 알아서 모여들고 먹어본 건 ‘찍어 올려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로 인해 당분간 그 줄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하여 생겨난 프리미엄 외식 브랜드들은 이제 포화 상태에 이르러 글로벌 한국을 대변하는 키워드가 됐지만 ‘먹어 봤다’ 이상의 맛과 임팩트를 전하지 못하는 이상 그 줄을 오래 유지시키기란 쉽지 않다. 특이하거나 스타일리시한 인테리어 역시 줄 세우는 데 한몫한다. 업사이클링 가구나 유럽의 플리마켓에서 찾아낸 빈티지 가구들이 전국의 ‘힙’한 거리, 이름난 가게들에 채워진 건 순식간이었다. 최근엔 여기다 공간 마케팅의 해법도 녹아 들어 일부러 테이블 수를 줄이거나 아예 작은 공간을 컨셉트로 손님의 일부만 먼저 들이고 나머지는 세워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편 ‘한정 판매’라는 강력한 줄 세우기 마케팅도 있다. ‘하루 50개 한정 판매 컵케이크’나 ‘한 달만 여는 맥주 팝업 스토어’ 등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심리를 자극하면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알다시피 리미티드 에디션의 지나치기 힘든 유혹은 비단 외식 업계의 전략만은 아니어서 H&M의 디자이너 컬래버레이션 한정 상품이나 애플의 한정 입고 상품 등을 먼저 구입하기 위해 앞다투어 모여드는 개미떼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브랜드 충성도다. 충성도 높은 개미와 솥뚜껑 근성을 가진 개미는 흥망성쇠의 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충성도는 시간에 비례한다. 제대로 된 상품으로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만족할 수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역동적이라고 표현한다. 금방 생기고 또 금방 사라지는 가게들은 그들이 보기에 신기한 현상이지만 우리 눈엔 아주 익숙한 풍경이 됐다. 성수족발이나 마포갈비, 밀탑 빙수 같은 전통적인 맛집, 그러니까 진짜 맛있어서 자연스럽게 그 줄에 동참하게 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새로 생긴 가게에 쓸데없이 길게 늘어선 줄은 호기심 충족으로 막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픈 빨’ 이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세상에 ‘새로 생긴 맛집’은 어불성설이다. 맛있다는 정평은 미식과 마찬가지로 시간을 필요로 하니까. 불특정 다수의 호기심 자극을 위한 줄 세우기 마케팅은 말이 된다. 스마트하다. 진짜가 되기 위한 진짜 코스프레도 역시. 기꺼이 줄을 서는 손님들의 고행도 마찬가지. 다만 ‘맛집’이란 의미가 먹거리를 파는 곳의 ‘총칭’이 되지 않길 바랄 뿐.
 
 
 
Credit
- EDITOR 채은미 PHOTO CORBIS
- TOPIC PHOTO DESIGN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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