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취향이 무르익은 거실
때마다 다른 목적을 안고 타인의 집에 훌쩍 뛰어드는 건축 · 디자인 분야의 프리랜스에디터 윤솔희. 그는 지금도 어떤 집에서 이건 왜 좋은지 묻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unsplash
아트 토이 컬렉터의 집이었다. 부부와 딸 한 명이 살고 있었다. 대개의 스리 룸 구조가 그렇듯 거실은 현관과 부엌, 안방, 작은방을 이어주는 허브 역할을 했다. 다만 이 집의 거실은 한 걸음 나아가 가족을 연결하고 지난 세월과 오늘을 잇고 있었다. 서로가 한동안 빠졌던 책과 그림, 피규어가 당당히 거실에 놓인 모습에서, 어느 것을 가리켜도 관련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읊는 모습에서 느꼈다. 예컨대 컬렉터와 그의 딸이 좋아하는 <토이 스토리>의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 피규어가 각자 좋아하는 모습으로, 그 맞은편에는 이에 질세라 아내가 좋아하는 디즈니 어드벤처 시리즈가 굳건히 평행을 이루고 있었다. “저희 집에는 과거형이 없어요. 모두 지금 좋아하는 것들이죠.” 인터뷰이의 말을 듣고 문득 다른 집이 떠올랐다. 2018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남편 동료에게 저녁 식사를 초대받아 그의 집에 갔을 때다. 거실 한쪽의 목가구가 눈에 들어왔다. 가슴까지 오는 높이였고, 작은 열쇠 구멍이 달린 여닫이문 형식이기에 수납장으로 추정했다. 눈으로 더듬는 내 모습을 봤는지 갑자기 집주인 얼굴에 생기가 돌더니 “소개해 드릴까요?”라며 다가왔다. 열쇠를 돌려 문을 열자 평범한 수납 선반이 보였고, 그 선반을 뒤로 젖히자 술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인데, 금주령이 있던 시절에 술을 숨겨놓고 몰래 즐겼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내 옆에 있던 그의 아들도 이 가구를 물려받겠지. 그리고 말하겠지.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아빠도 여기에 술을 보관하고 한 잔씩 드셨어. 아트 토이 컬렉터의 집에서 그 순간이 오버랩된 건 거실은 내가 좋아하고 우리가 아끼는 이야기를 함께 키워나가는 장소라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호모나랜스(Homo narrans). 사람은 본디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거실은 인간의 본능을 키우기에 가장 최적화된 곳이다. 그래서 누구네 집을 갈 때마다 거실 이쪽저쪽을 서성인다. 푸석푸석하던 우리 집 거실에 인스타그램에 저장만 하던 파랑 책장과 목각 고래 모빌, 튤립 다이닝 테이블 등이 들어온 것도 그쯤이다. 건축을 배우고 공예와 디자인 전문가에게 귀동냥하며 마음이 설레었던 것을 이제야 모으고 있다. 자랑스럽게 펼칠 만큼 내 취향이 완숙되지 않았고, 모아놓은 것들은 당분간 어울리지 않아도 괜찮음을 이젠 안다. 남과의 비교라는 허물에서 벗어나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 덕분이다. 나는 남의 집에서 내가 잘 사는 법을 배운다.
윤솔희
때마다 다른 목적을 안고 타인의 집에 훌쩍 뛰어드는 건축 · 디자인 분야의 프리랜스에디터. 지금도 어떤 집에서 이건 왜 좋은지 묻고 있을지도 모른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원
엘르 비디오
엘르와 만난 스타들의 더 많은 이야기.
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엘르의 최신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