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부터 공연 활동을 시작해 2018년 발매한 첫 번째 EP 〈조용한 폭력 속에서〉로 젊은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거침없이 출발한 버둥. 거친 환경 속에서 날이 선 20대 초반의 시간을 지나쳐 자리를 다져놓은 지금은 세상을 느끼는 감정이 다양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버둥의 새 EP 〈너에게만 보여〉는 더 세심해진 시각으로 당신의 마음을 매만져 편안한 숨을 내쉬게 한다. 지난 8월 30일에 발매한 세 번째 EP 〈너에게만 보여〉의 큰 주제는 ‘응원’이다. 응원을 주제로 삼게 된 배경이 있었을까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쉽고 편하게 들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전보다 더 단순한 주제를 모색했다. 정규 1집과 같은 이전 음반들은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한 단어로 정리를 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자 했다. ‘응원’이 예술에서 흔하게 쓰이는 소재이기는 하지만 버둥만의 시각으로 소수에게도 닿을 수 있도록 곡을 만들어 오히려 다양한 이들에게 공감을 사고 싶었다.
버둥 세 번째 EP 〈너에게만 보여〉커버 이미지
용기 내 출발하는 사람, 영원을 약속하는 사람, 가스라이팅 당하는 사람 등 곡 소개에서도 알수 있듯이 다양한 리스너를 설정하고 곡을 만든다. 이러한 상상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지
주제를 ‘응원’으로 정한 후, ‘어떤 말을 해야 듣는 사람이 좋아할까?’를 가장 많이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번 EP가 처음으로 듣는 사람들을 위한 음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 자신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수록곡인 ‘제비’는 힘들지만 계속 나아가려고 하는 내 자아의 일부분에 관한 응원이고, ‘신과 함께’라는 곡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을 응원하는 곡이다.
〈너에게만 보여〉의 피지컬 앨범 제작을 위한 텀블벅 후원이 오픈 당일에 100퍼센트를 달성한 소감은
대략 8분 안에 100퍼센트를 달성했더라(웃음). 전혀 예상 밖이었다. 일등공신은 고액의 리워드였던 축가 제작이었다. 직접 곡을 쓰고 결혼식장에서 부르는 이벤트까지 더해 백 만원으로 측정했는데 팬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비싸게 느껴지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지만 우려는 기분 좋게 빗나갔다. 수록곡인 ‘편지’에서 영감을 얻어 응원 편지를 앨범과 함께 후원자에게 배송하는 리워드도 열 개 업로드 해두었는데 이것 또한 금방 소진되었다. 아직 후원자들에게 앨범이 배송되기 전이기 때문에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싶다.
이번 EP의 수록곡에는 뮤직비디오가 따로 없는 점도 특이했다. 공개를 앞두고 있는 걸까
그렇다. 나는 뮤지션이기에 음반 제작에 최대한의 시간과 비용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기에 음반을 먼저 발매한 후 음원 수익이 돌아올 때에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것으로 순서를 바꿔보았다. 정규 1집의 타이틀 곡 ‘연애’의 뮤직비디오는 백 만원으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서 영상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뒤 혼자 편집했다(웃음). 예고하자면 이번에는 ‘제비’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싶다는 제안이 먼저 들어와서 함께 제작할 예정이다.
올해 2월에 결혼한 사촌오빠의 결혼식 축가로 〈너에게만 보여〉의 수록곡 ‘약속’을 불렀다고. 직접 지은 곡으로 가족을 축하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
음악은 가장 빠르게 어떤 한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기폭제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식장에서 내가 불렀던 ‘약속’도 사촌오빠 부부가 다시 들었을 때 결혼하던 날이 바로 떠오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곡을 제작하면서 사촌오빠 커플과 많은 소통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모르던 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가령 사촌오빠가 언니를 부르는 애칭 중 하나가 ‘걱정 천사’라는 것. 걱정이 많아서가 이유였는데 그런 언니에게 사촌오빠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약속’에 ‘그런 걱정은 좀 미뤄둬도 괜찮아. 어떤 맘인지 내가 이해하려 하니까. 넌 잠깐이라도 더 예쁘게 웃었음 좋겠다’라는 가사를 담았다.
곡을 처음 구상했던 시기를 곡 소개에 꼭 적어둔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번 앨범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한 ‘신과 함께’는 버둥에게 어떤 곡일까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없었던 곡이다. 정규 1집의 마지막 곡으로 수록하려고 ‘기일’과 함께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도저히 완성이 안되더라. 올해 3월에 공연 준비로 다시 꺼내 보았는데 여전히 죽음을 다루는 곡은 가사가 중구난방이고 죽음에 대한 이해도도 낮은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의 혼란스러움을 기록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지금의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정도로 곡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두려움으로부터 가장 멀어졌던 시간이었던, 자기 전에 아빠가 전래동화를 읽어주는 순간의 느낌으로 풀어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잠깐이라도 걱정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버둥 정규1집 〈지지않는 곳으로 가자〉 커버 이미지
2018년에 첫 EP 〈조용한 폭력속에서〉로 데뷔 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작년 10월 18일에 정규 1집〈지지않는 곳으로 가자〉를 발매했더라. 정규 앨범을 발매한 뒤 체감하는 변화는
대외적으로는 정규 앨범 발매 이전에는 ‘낙수’나 ‘이유’라는 곡이 많은 사랑을 받았었는데, 정규 앨범에는 한 번에 많은 곡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런지 팬들이 좋아하는 곡이 다양해졌다. 나조차도 점점 잊던 곡을 꾸준히 좋아하는 팬도 있어서 감사하고 신기한 감정이 든다. 음악적으로는 첫 번째 EP에 비해 모든 면에서 훨씬 나아졌다고 확신한다. 정규 1집을 작업하는 동안 버둥의 아티스트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했고,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이후의 공연 연출이나 기획,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에 있어서 결정이 빨라졌다. 또한, 다양한 악기를 활용하거나 코러스 라인을 구성한 것처럼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어서 완성도가 올라갔다.
유튜브 채널 또한 활발하게 업로드 중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되는 라이브 스트리밍 ‘둥요일’은 버둥에게 어떤 기쁨을 선사하는지
일년 반을 넘는 시간 동안 방송을 유지하는 과정이 크게 부담스럼지 않았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보다 일을 멈추는 걸 더 어려워하는 성격이다. SNS를 통해 팬들과의 소통을 자주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면서 활력을 얻는다. 일주일에 한 번, 이 기점을 두고 방송 전에 연습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내 재능은 노력했을 때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지금까지 수많은 곡을 커버했고, 본인이 듣고 싶은 곡을 부른다고 했었다. 유튜브 채널에 있는 영상 중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자주 재생하는 커버곡 영상은
최근에는 NewJeans의 ‘Hype Boy’ 클립 영상을 다시 들어보니까 새롭게 좋았다. 케이팝을 어쿠스틱하게 나의 언어로 부른 곡들이 재미있다.
버둥의 목소리에서는 클래식함도 느껴진다. 본인만의 색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듣고 싶은 느낌대로 들리는 목소리이지 않나 싶다. JTBC의 〈싱어게인〉이 처음으로 불특정다수에게 평가를 받은 자리였는데 ‘한국스럽다’는 댓글이 있는 반면 ‘팝에 잘 어울린다’ 등의 상반된 반응도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솔직한 것. 지금 갖고 있는 걸 있는 그대로 충실히 보여주는 걸 제일 잘한다. 내가 낼 수 있는 고음보다 굳이 더 높게 고치지 않고 나의 한계를 받아들인다. 그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다. 앞으로 더 지키고 싶은 것이 많아지더라도 끝까지 솔직하고 싶다.
2018년도의 한 인터뷰에서는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것과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는 일을 목표로 삼았더라. 둘 다 이룬 지금, 앞으로의 계획 혹은 목표는
내년부터는 싱글로 곡을 발표해서 느끼는 감정 혹은 달라지는 계절 단위로 팬들과 만나고 싶다. 목표가 있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노동에 걸맞은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여 그들의 땀을 존중하는 것.
베리코이버니 - 모자라 해파 - I Finally A Ghost 숨비 - Lucky 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