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첫 필즈상 받은 허준이 교수는 시인이 되고 싶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한국계 첫 필즈상 받은 허준이 교수는 시인이 되고 싶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소설 속 수학 천재만 받는 줄 알았던 필즈상.

라효진 BY 라효진 2022.07.06
'수학계의 노벨상'이자 세계 3대 수학상 중 가장 역사가 오랜 필즈상. 4년에 한 번 국제수학연맹(IMU)가 개최하는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탁월한 연구를 한 학자에게 주는 필즈상은 기초 학문 분야에서는 가장 유명한 상 중 하나죠. 시상식이 열리는 해의 1월1일을 기준으로 만 40세 미만이어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됩니다.
 
1936년 필즈상이 창설된 이래 이 상은 한국과 인연이 없었습니다. 수상자 목록엔 한국인은 물론 외국 국적을 가진 한국계도 오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5일(현지시각), 처음으로 한국계 수학자가 필즈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이자 한국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를 맡고 있는 허준이(본명 June Huh)입니다. 금메달과 함께 1만5000 캐나다 달러(한화 약 1500만 원)가 부상으로 주어집니다.
 
 
허준이 교수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이번 결과로 필즈상 수상자 한 명을 더 얻게 된 건 미국이지만, 그가 수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수학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가 어릴 적엔 별로 수학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정확히는 입시와 연관된 수학이 어린 그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죠. 아버지인 허명회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명예교수도 허준이 교수가 수학에 마음을 붙이도록 하지는 못했고요.
 
 
허준이 교수는 올 초 조선일보에 세계적 수학자가 되기까지의 작은 에피소드 몇 개를 풀어 놓았어요.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풀게 한 수학 문제집의 답을 전부 답안지를 베껴 넣는가 하면, 들켜서 답지를 뺏긴 후 동네 서점에서 같은 문제집의 답안지를 베낀 일화도 있죠. 중3 때 특수목적고에 가 볼까 싶어 상담을 하자 선생님으로부터 '지금 (수학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요. 결국 일반고에 진학했지만 학교 시스템 적응도 쉽지 않았고, 시를 쓰고 싶어 고등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좋아하는 시인은 기형도였다고 하네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은 허준이 교수는 서울대학교 물리학부로 진학했습니다. 학부 4학년 시절 '필즈상 선배(1970년 수상)'이자 하버드대학교 명예교수였던 히로나카 헤이스케와의 만남은 그를 수학의 세계로 강하게 이끌었습니다. 한국에선 〈학문의 즐거움〉의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수학자입니다. 마치 등단을 꿈꾸며 고등학교를 그만둔 허준이 교수처럼요.
 
 
늦은 시작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수리과학 석사 과정을 졸업한 허준이 교수는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유명한 난제 '리드 추측'을 풀어 버리며 미시간대학교로 적을 옮겨요. 이후엔 '로타 추측' 등 수많은 난제들을 차례로 증명한 그를 두고 수학·과학 전문매체 콴타매거진은 '테니스 라켓을 열여덟 살에 잡았는데 스무 살에 윔블던 우승한 격'이라고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몇 되지 않는 국내 인터뷰에서 달변을 자랑하며 수학의 매력과 한국 입시 수학의 병폐를 함께 역설하던 허준이 교수는 수상 직후 매일경제로부터 '젊은 학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이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의 답변은 "스스로에게 친절하라"였어요. 사람에겐 여러 캐릭터가 있습니다. 어려운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선 학자 캐릭터와 그 외의 캐릭터가 맞아야 한다는 거죠. '스스로에게 친절하라'라는 말은 학자 캐릭터 이외의 자아를 파괴하지 않으려 노력하라는 뜻으로 들려요. 그리고 이건 젊은 학자들 뿐만 아니라 삶에 지치지 않기 위한 모든 순간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이기도 하고요.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