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품과 한정판 소비에 열을 올리는 최근 흐름에 대해 전문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이론을 내세운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베블런 효과’는 앨프리드 마셜의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가 늘어나고, 반대로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떨어진다’는 내용에 최초로 반기를 든 이론이다. 그는 ‘가격이 치솟는 데도 오히려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이 분명히 있다고 주장했는데, 고가의 제품을 예시로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가의 제품을 원한다.” 이는 비싸면 비쌀수록, 요즘 럭셔리 브랜드처럼 가격을 인상할수록 오히려 대중의 애타는 욕망을 효과적으로 자극한다는 얘기다. 물론 저명한 학자의 이론이 지금 이 복잡다단한 현상을 완벽하게 뒷받침하기엔 다소 부족하다. 지난 2년간 우리 생활 전반에 큰 변화를 야기한 팬데믹을 빼놓을 수 없다. 연준(Fed)의 주도 아래 수도꼭지처럼 풀린 돈이 시장에 쏟아졌고, 많은 이가 부동산과 주식, 코인 등에 눈을 돌렸다. 더불어 전염병 탓에 평소 누리던 여행 소비를 제한당한 이들의 억눌린 욕구가 명품 소비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요약하면 오갈 데 없는 돈이 일부 계층의 투자와 과시적 소비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셈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베블런 효과를 떠올려보길. 그 이론 저변에는 ‘남이 사는 것들 그대로 따라 한다’는 심리 또한 존재한다. 시장에 돈이 풀리고 부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면서 가진 자의 부는 더욱 비대해지고, 얄팍한 지갑을 가진 보통의 삶은 더욱 얄팍해졌다. 이 당황스러운 흐름 속에서 자신만 뒤처지거나 소외되는 듯한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었다. 부동산은 오를 대로 올랐고, 주식과 코인은 이미 번 사람들의 영역이 됐으니 남는 건 허탈함과 불안감뿐. “집값이 너무 올라 월급으로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갑자기 스트레스가 마구 올라오지 뭐야? 그래서 오랫동안 위시리스트였던 주얼리를 과감하게 질러버렸어. 그거라도 가져야 마음이 좀 덜 괴로울 것 같아서.” 최근 오픈 런에 성공해 고가의 주얼리를 구입한 친구가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실하게 일하고 착실하게 벌었지만 오갈 데 없는 젊은 층의 무력감이 ‘넘사벽’ 부동산에서 보다 쉽게 즉각적 만족감, 남들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안도감을 줄 명품 소비로 이어지고 있는 것. 또 오픈 런 행렬의 반 이상이 리셀러라 할 만큼 현재 폭발적인 투자 열풍 역시 오픈 런 현상에 힘을 보탠다. 기습적인 가격 인상 소식에도 사고자 하는 사람은 넘치는 반면 실물은 한정적이다 보니 명품은 ‘오늘이 제일 싸다’는 굳건한 믿음 아래 더 이상 패션이 아닌 투자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고, 리셀러들은 득템한 명품을 ‘피(프리미엄)’를 얹어 되팔아 수익을 창출한다. 최근 SNS를 뜨겁게 달군 버버리×슈프림 협업 컬렉션 판매 일정이 공개된 직후, 텐트 속에서 며칠 동안 ‘노숙 런’을 감행해 화제가 된 이들 역시 리셀러가 대부분일 거라고 추정해 본다.
이처럼 과열된 물가 상승세와 빠르게 이동하는 돈의 흐름이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보복 소비’라는 이름으로(보복할 대상이 명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명품 소비를 멈추지 않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자니 마음 한구석이 괜스레 복잡해진다. 업무를 마친 늦은 밤, 동호대교를 가로지르는 택시 안에서 어김없이 ‘노숙 런’을 감행 중인 백화점 앞 인파와 마주한다. 마침 라디오 뉴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기 위해 맥도날드 본사가 러시아 내 영업 중단을 발표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마지막 빅맥’을 사수하기 위해 러시아인들이 꼭두새벽부터 오픈 런 대기 중이라는 뉴스가 들리는 순간, 꼬리처럼 길게 늘어선 백화점 앞 행렬이 마치 긴 불안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2022년, 지금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