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 주소를 입력하고 서울에서 3시간 30분을 차로 달려 도착하니 360˚로 산등성이 물결치는 숲속의 숲이다. 이곳에 알바로 시자와 승효상의 건축물, 조경가 정영선이 매만진 풀과 나무를 모두 품은 ‘사유원’이 있다. 사유원에 총 일곱 개의 건축물을 설계하며 놀라운 마스터플랜에 동행한 승효상의 기록을 보면 이 땅을 조금 더 상상하기 쉬워진다. “키 큰 리기다소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고 산등성이가 말발굽처럼 휘어지는 모양새다. 누군가는 휘어진 산등성 양쪽이 움푹 파인 게 마치 밥사발 같다고 했다. 밥사발 하나엔 수백 그루의 느티나무가 조림돼 있었다.” 10만 평 규모의 정원이자 수목원으로 개발된 사유원은 정원에 열성적인 기업가로부터 시작됐다.
철강회사 ‘태창철강’을 이끌어온 유재성 회장이 이곳의 땅 9만3000평을 최초로 매입한 때는 2006년 3월. 대구의 태창철강 사옥에 1000여 평이 넘는 한국형 정원을 두고, 자택의 부지 수백여 평가량에 마당을 여럿 가꿀 만큼 수목과 정원을 사랑하는 그는 개인 정원사에게서 일본으로 밀반출되는 모과나무에 대한 사연을 전해 듣는다. 모과나무가 일본인에게 굉장한 인기가 있어 자주 팔려가는데, 정작 일본 땅에 뿌리를 내린 다음엔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유재성은 밀반출되기 직전의 모과나무가 모여 있는 광경을 보고 곧장 웃돈을 치르고 전량 매입했다. 그렇게 모으기 시작한 모과나무를 몇 개의 사유지에 흩어두었다가 사유원을 만들며 드디어 한데 모았다. 300년 이상 된 모과나무 108그루를 식재한 모과나무밭 ‘풍설기천년’은 사유원의 얼굴이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이긴 모과나무들은 향기 나는 노란 열매, 윤기 나는 잎과 굽이치는 잔가지, 그 끝에 한 송이씩 피어나는 꽃까지 사계절 내내 웅장한 신비감을 뿜어낸다. 모과나무 108그루를 필두로 유재성이 수십 년간 수집해 온 적송, 소사나무가 이곳의 대표적인 수종이며, 매해 가을마다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가 모인 자리에는 ‘별유동천’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붙었다. 사유원의 주연은 역시 갖은 종류의 풀과 나무와 꽃을 비롯한 자연이다.
그리고 초록 숲 사이를 거닐다 보면 마주치는 비범한 순간들. 바로 건축이다. 지난 9월부터 지금까지 시범 운영 기간 동안 사유원을 찾은 관람객 대부분은 건축학도이거나 건축계 종사자였다. 사유원은 지금 가장 뜨거운 건축적 랜드마크다. 지난 몇 해간 건축된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 석 점과 승효상의 건축물 일곱 점이 있고, 최욱이 설계한 티 하우스는 현재 공사 중이다. 수목원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50개의 독실로 이뤄진 스테이 ‘고침정사’가 들어선다. 승효상이 설계를 맡아 착공을 앞두고 있다. 인공물이 전혀 없던 산속에 들어선 모든 건축물은 광활한 풍경을 깊이 끌어안는다. 이들이 지형을 빌려 제안하는 건 결국 자연이 지닌 명상의 힘이다. 사유원의 모든 공간은 명상하고 소요하는 철학을 배경으로 기획됐다. 수목원 북쪽 봉우리 전망대인 ‘명정’은 승효상이 설계했다. 전망대이지만 거대한 육면체를 땅속으로 밀어넣은 모양새다. 돌벽과 계단으로 내놓은 길을 따라 땅속으로 내려가는 동안 보이는 건 오직 나무껍질로 무늬를 찍어낸 콘크리트 벽과 머리 위의 하늘뿐인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침잠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팔공산을 바라보는 사유원의 동쪽 자락에는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인 ‘소요헌’이 있다. 사유원에 세계적 건축물을 심겠다는 일념으로 전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건축가를 만난 유재성이 어느 날 이탈리아의 한 건축가로부터 알바로 시자를 소개받으며 시자와 사유원의 인연이 시작됐다.
장자의 〈소요유〉에서 이름을 딴 소요헌에선 자연과 인공 공간의 간극이 가장 극명하고도 조화롭다. 가끔 찾아오는 새소리만이 울리는 공간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느새 코앞에 숲이 펼쳐지기도 하고, 하늘만이 눈에 가득 담기기도 한다. 깊은 사색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시자는 소요헌 이후로 사유원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인 ‘소대’, 알바로 시자의 건축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작고 검박한 성당 ‘내심낙원’을 사유원에 지었다. 대구 문화예술의 대단한 후원가인 유재성의 뜻에 따라 많은 건축물은 모두 공연장 기능을 겸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고 가더라도 어디에서든 한 공연의 드라마틱한 한 장면을, 울려 퍼지는 음악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유재성은 사유원의 첫 삽을 뜨며 기록해 온 사진들을 묶은 책을 내며 이렇게 썼다. ‘40년 공원 염원을 12년 동안 여기 사유원에 펼치다.’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얼마 전 시범 운영을 시작한 사유원은 여전히 땅을 매입 중이다. 현재까지 확보한 땅은 20만 평이 넘는다. 일대가 여느 유원지처럼 변모하지 않길 바란 조치이기도 하다. 진정한 사유의 정원이 되기 위한 사유원의 행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땅과 하늘, 대자연 앞에 누구나 홀로 설 수 있는 이 거대한 공원의 이야기가 언젠가는 구전설화처럼 전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소요헌. 알바로 시자가 설계하였으나 실제 건축되지 않았던 아트 파빌리온 계획안이 이곳에 지어졌다.

소요헌의 내부. 고요한 사색 공간이다.

알바로 시자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위해 이 파빌리온을 설계했다. 시자는 소요헌 내에 자신의 코르텐강, 대리석, 나무 조각과 세라믹 타일 벽화를 설치해 이를 대체했다.

알바로 시자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위해 이 파빌리온을 설계했다. 시자는 소요헌 내에 자신의 코르텐강, 대리석, 나무 조각과 세라믹 타일 벽화를 설치해 이를 대체했다.

긴 상자 같은 구조물 두 개를 좁은 ‘V’ 형태로 연결했을 뿐 어떤 기능이나 장식도 없다.

사유원의 깊숙한 곳에 있는 ‘내심낙원’. 알바로 시자가 지은 전 세계의 수많은 성당 중 가장 작은 성당으로 수세기에 걸친 교회 건물의 전통적인 기본 요소를 압축해 고유의 우아한 형태로 설계됐다. 가장 앞쪽, 기둥이 없고 과장된 구조의 캔틸레버가 인상적이다.

사유원의 깊숙한 곳에 있는 ‘내심낙원’. 알바로 시자가 지은 전 세계의 수많은 성당 중 가장 작은 성당으로 수세기에 걸친 교회 건물의 전통적인 기본 요소를 압축해 고유의 우아한 형태로 설계됐다. 가장 앞쪽, 기둥이 없고 과장된 구조의 캔틸레버가 인상적이다.

새들의 수도원이라는 뜻의 ‘조사’. 사유원에 물이 고이고 흐르면서 몰려드는 새들의 거처가 필요하게 되어 지었다. 조류마다 날며 활동하는 높이가 다른 점을 고려해 높이가 각각 다른 둥지를 수직으로 연결했다.

소요헌 맞은편에는 사유원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인 ‘소대’가 있다. 알바로 시자의 요청으로 세운 이곳에 오르면 소요헌을 비롯해 사유원 전망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사유원 북쪽 봉우리 전망대인 ‘명정’은 커다란 침묵의 공간이다.

소요헌 맞은편에는 사유원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인 ‘소대’가 있다. 알바로 시자의 요청으로 세운 이곳에 오르면 소요헌을 비롯해 사유원 전망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사유원 북쪽 봉우리 전망대인 ‘명정’은 커다란 침묵의 공간이다.

명정의 바닥으로 내려가면 돌 벽을 타고 내리는 물과 그 물로 덮인 바닥, 건너편의 무대와 무대로 향하는 길이 있다. 고요한 공간 속에 방점처럼 놓인 것은 최재훈 작가의 달 항아리.

명정의 바닥으로 내려가면 돌 벽을 타고 내리는 물과 그 물로 덮인 바닥, 건너편의 무대와 무대로 향하는 길이 있다. 고요한 공간 속에 방점처럼 놓인 것은 최재훈 작가의 달 항아리.

사유원에서 가장 외딴 곳에 놓인 사유의 공간, 와사.

수목원 아래쪽에는 계곡의 낙차를 이용해 다섯 개의 연못이 조성됐다. 다섯 개의 연못을 연결하기 위한 기다란 쉼터 와사. 지형에 따라 높이가 변하면서 전체 형상이 유기체처럼 만들어졌다.

수목원 아래쪽에는 계곡의 낙차를 이용해 다섯 개의 연못이 조성됐다. 다섯 개의 연못을 연결하기 위한 기다란 쉼터 와사. 지형에 따라 높이가 변하면서 전체 형상이 유기체처럼 만들어졌다.

물가에서 공연을 즐기기 위해 만든 ‘사담’은 무대의 배경이다. 벽에 노출된 가파른 계단을 올라 옥상과 연결되며, 옥상에는 또 다른 무대가 있다. 내부에 작은 식당을 두었다.

노을 지는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사담.

사유원은 오래된 모과나무에서 시작됐다. 설립자인 유재성이 오랜 시간 수집해 온 모과나무가 모여 있는 ‘풍설기천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