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콘텐츠 구독, 정리할 때 되지 않았어요?

무한 콘텐츠 시대. '슬기로운 구독자 생활'을 위해 당신이 가져야 할 태도.

BY전혜진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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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 리스트를 정리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지출을 줄이려는 것 이상의 줄이려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자신의 고유한 취향을 조각조각 정리한, 나라는 사람의 훌륭한 취향 지표가 될 수 있다.
 
영화, 드라마, 음악, 오리지널 시리즈, 전자책까지. 월 1만 원 정도만 지불하면 세상 모든 문화 콘텐츠가 내 손 안에 있는 듯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분명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첫 달 무료라는 말에 덜컥 결제한 넷플릭스는 매월 9500원씩 꾸준히 납부 중이고, 넷플릭스에서는 보기 힘든 영화들을 독점 큐레이션해 준다는 7000원대의 왓챠도 추가 구독했다. 공중파 드라마를 챙겨 보려 웨이브를, 〈유 퀴즈 온 더 블록〉 등 tvN의 예능을 포기하지 못해 티빙도 구독 완료했다. 한 권값에 10만여 개의 전자책을 읽을 수 있다는 밀리의 서재도, K팝과 글로벌 뮤직 모두 만족스럽게 즐기려면 멜론과 스포티파이도 필수였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할 무렵,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플러스가 국내 출격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원활한 ‘덕질’을 위해 네이버 브이앱에도 매달 꼬박꼬박 3000원을 지출하는데…. 나와 같은 ‘구독 호갱님’의 메시지 함에서는 잔고 털리는 소리만 ‘텅텅’ 울린다.
 
각 콘텐츠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수만여 개의 콘텐츠 중에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보는 것은 몇 개나 될까. 그 비효율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구독을 끊지 못하는 것에는 ‘구독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왠지 ‘힙’해 보이는 콘텐츠 구독 플랫폼을 해지하자니 트렌드에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는 사람들, 밀린 드라마와 예능을 몇 개만 챙겨보고 싶지만 방송사별 제공 플랫폼이 흩어져 있기에 하나씩 보더라도 모든 플랫폼을 결제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몇몇은 첫 달 무료라는 소리에 홀린 듯 구독을 시작했지만 매달 해지와 갱신의 경계에서 미련하게 허덕이고 있음을 호소하고, 정작 본인은 보지 않지만 ‘엄빠’와 사돈에 팔촌까지 아이디를 공유해 버리는 바람에 ‘넷플릭스 가장’을 자처하게 된 자들도 넘친다. 끊자니 아쉽고 왠지 모를 두려움까지 드는 ‘구독 해지’. 행동경제학에서는 구독을 끊지 못하는 마음을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제시한 ‘손실 혐오’가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최상의 콘텐츠 경험을 만끽한 뒤 결제를 중단할 경우, ‘경험’이라는 가치를 상실한다는 점에서 오는 두려움이 생각보다 구독자들에게 크게 작용한다는 거다. 이렇듯 콘텐츠 구독은 어쩌다 보니 무의식이 지배하는 ‘중독 현상’에 가까운 것이 돼버리고 말았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싶지만 그 안의 ‘구독 라이프’에서만큼은 맥시멀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콘텐츠 구독 정리를 도와주는 서비스 ‘왓섭’의 대표 김준태는 넌지시 조언을 건넨다. “쓰지도 않는 서비스에 몇 달째 요금을 냈다는 사실에 충격받아 구독 정리 앱을 론칭했다”는 정리에 앞서 현재 구독 상태에 관한 ‘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신용카드, 간편 페이, 휴대폰 소액결제 등 결제가 점점 쉬워지고 있지만, 정작 지금의 돈 관리 서비스로는 콘텐츠 구독 서비스에 얼마만큼 지출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매달 숨만 쉬어도 구독으로 빠지는 돈을 직관적으로 보고 인지하는 소비 통찰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실제 나와 같은 ‘구독 방랑자’들은 자신이 구독한 플랫폼의 결제수단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경우도 허다하다. 만약 혼자서 자신의 지출 상태를 정확하게 체크하는 것이 힘들다면 앞서 언급한 왓섭 등 구독 지출 관리 앱의 도움을 받아 각자의 경제 사정에 맞게 금액 기준을 설정하면 좋다. 현실을 파악하고, 한 달 예산 내에서 콘텐츠 구독 결제에 얼마만큼 지출할 수 있을지 한계를 정하라는 것. 금액적인 부분만 체크할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시간의 양과 구독, 소비되는 데이터의 총량에 관한 부분까지 고루 살펴야 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금액적 부담을 덜고 싶다면 ‘피클플러스’같이 ‘구독 파티원’을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중개하는 서비스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나의 콘텐츠 소비 행태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취향껏 구독하는 태도 또한 필요하다. 김 대표는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기준으로 소비하기 적합한 구독 서비스를 찾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틈틈이 시청하는 것을 즐기는 이들은 OTT 이용에 만족하겠지만, 완결된 작품을 정주행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은 적합하지 않은 ‘구독자’다. 결국 시간을 내 봐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OTT 구독을 결정할 땐 ‘본방 사수’가 중심인지 혹은 오리지널 시리즈에 관심이 큰지 혹은 K콘텐츠를 즐겨 보는지, 해외 콘텐츠에만 관심이 있는지 등을 반영한 일종의 취향표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예컨대 독서 습관의 경우 많은 양의 책을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밀리의 서재를, 독서량은 적지만 사용자 친화적 환경을 선호한다면 편안한 UI를 제공하는 리디셀렉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콘텐츠 취향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장르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메인으로 구독한 뒤, 2순위로 선호하거나 메인 플랫폼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나만의 ‘구독 플레이 세트’를 완성하는 것도 좋다. 예컨대 스탠드업 코미디를 즐긴다면 넷플릭스가 유일하니 필수로 구독하고, 여기서 코미디 관련 영화에 더 몰입할 것인지(왓챠), 국내 예능을 실시간으로 달리고 싶은지(웨이브)를 선택하는 식. 플랫폼별로 묶어 구독하려는 소비자들이 성향을 반영한 ‘넷챠(넷플릭스+왓챠)’ ‘웨플릭스(웨이브+넷플릭스)’ 등의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많은 이가 이 방식을 구독 정리에 활용하고 있다.
 
콘텐츠 구독을 정리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지출을 줄이려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자신의 고유한 취향을 조각조각 정리한, 나라는 사람의 훌륭한 취향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움 전문가 곤도 마리에 또한 “언젠가 읽으려는 책은 과감히 버리고, 나만의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한 책을 남기라”고 책 정리 기준을 제시한다. 이는 비단 방 정리뿐 아니라 콘텐츠 구독 정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쉬움 같은 감정적인 측면에 기대지 말고 진짜 원하고 필요한 것인지를 구독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 정리를 통해 취향의 자리를 제대로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짜릿한 구독의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
 
물론 강박적으로 구독을 해지할 필요는 없다. 지불한 비용만큼의 가치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은 나일 뿐, 콘텐츠는 죄가 없으니까. 이왕 즐기기로 했다면 넷플릭스, 웨이브 등 대표 OTT 채널의 구독료를 20% 할인해 주거나 멜론, 지니, 유튜브 프리미엄 등 4개 디지털 스트리밍 구독료를 청구 할인해 주는 여러 카드사의 구독료 할인 혜택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 대표는 “누릴 수 있는 혜택이 가장 많은 카드 하나를 정한 뒤, 정기 구독 결제되는 것들을 모아두면 한눈에 쉽게 구독 지출 정리가 가능하다”며 이에 관한 팁을 덧붙였다.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계획한 금액 안에서 꾸준히 즐길 때 비로소 ‘슬기로운 구독 생활’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