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술 권하는 예능,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액정 너머 당신들은 자꾸 함께 취하자고 유혹한다.

프로필 by 전혜진 2025.01.25

오늘은 분명 금주하기로 했다. 연말 연초 술자리에 ‘번아웃’된 간을 자중하며 달랠 필요가 있었다. 냉장고와 와인 셀러 문을 꽁꽁 잠근 채 차나 한잔 마시며 유튜브 창을 열었더니 <짠한 형 신동엽>에서 신동엽이 얼굴이 한껏 빨개진 채 소맥을 휘휘 만다. 넙죽 받아먹는 게스트들과 서로 빨개진 채 TMI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이런, 확실히 술이 ‘말린다’.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에서 영지가 내 최애와 트월킹하며 하이볼을 원샷하고, 이현이가 <도시酒부>에서 안줏발을 세우고, <먹을텐데> 성시경이 국밥에 한잔 걸치기 좋은 막걸리를 추천하는데, 내가 참을쏘냐? 확실히 요즘 유튜브는 ‘만취’했다. 채널 이름 자체가 ‘술트리트파이터’ ‘술터뷰’라는 식으로 표현되는 것은 기본, 술잔을 꼭 쥔 채 볼을 붉힌 셀러브리티의 행복한 표정이 섬네일로 채택되기 일쑤다. 신난 주류 업계는 너도나도 상품을 활용한 칵테일 제조법을 소개하거나 알록달록한 굿즈로 시선을 사로잡는 PPL을 공격적으로 선보이기까지 하니, 분명 취한 채 느적느적 눈 감고 넘어가기만 했던 술 콘텐츠의 존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타이밍이 맞는 것 같다.

명백히 말하면 술은 ‘1급 발암물질’이 맞다. 마약인 대마초보다 중독성과 내성이 강한 만큼 잘 조절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액체다. 그러나 2023년 국립암센터의 ‘대국민 음주 및 흡연 관련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66.4%)은 술이 석면, 카드뮴 같은 1급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최근 4년간 유튜브에서의 음주 장면 모니터링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유튜브에서 ‘술방’ ‘음주 방송’ 등으로 조회되는 상위 100개 콘텐츠 모두 ‘문제음주 장면’이 묘사됐고, 모든 음주 콘텐츠가 연령 제한 설정이 돼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OTT도 비슷한 실정. ‘최근 3년간 OTT 콘텐츠의 음주 장면 묘사 모니터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에 업로드된 콘텐츠 100편 중 82편(82%)에서 음주 장면이 묘사됐다고 한다. 즉 ‘연프’에서도 술을 마시고, 여행 가서도 술을 마시고, K팝 아이돌도 마시고, 배우도 코미디언도 너도나도 마신다는 소리니 음주가 ‘힙’한 문화처럼 보이는 건 당연하다.

분명 ‘술방’은 유튜브 콘텐츠의 무궁무진한 장점이었다. 오래 예능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배우가 나와 “5년 전만 해도 이렇게 술 마시는 모습을 어떻게 공개했겠어요?”라고 격세지감을 토로했듯이 여타 콘텐츠보다 희소성이 크고 화제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평소 차분한 모습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내 ‘최애’의 높은 텐션과 흐트러진 모습, 귀여운 주사, 솔직한 속내는 ‘도파민’의 급이 다르다. 사적 술자리를 엿보는 기분도 든다. 그런 한편 이 ‘꿀잼 요소’들이 음주를 조장한다기에는 음주 소재 콘텐츠가 없던 과거의 술 풍토를 떠올리게 한다. 그때 더욱 ‘부어라 마셔라’였던 것 같기도 한데. 하물며 최근 젊은 층에서는 적정량만큼 적당히 마시는 술 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한 것으로 보이고, 젊은 층의 술 소비량 자체가 감소했다는 것도 그 증거다. 매일 술 콘텐츠를 보는 에디터 A는 술에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진짜 술꾼들은 유튜브 콘텐츠를 볼 새도 없이 이미 세상 어딘가에서 죽어라 마시고 있다. 그러니 지나친 규제가 개입되면 실효성 없이 창작과 소비의 자유를 해친다는 의견도 일정 부분 맞다. 적어도 셀러브리티의 음주 콘텐츠를 아주 즐겁게 소비하고 있는 나로서는 ‘술’은 죄가 없다는 데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 분분한 의견 속에서 이 문제가 가장 집중적으로 발화돼야 할 지점은 청소년에 관한 것이다. 최근 음주 관련 통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 ‘10대 청소년의 음주 및 폭음 증가’ 문제. 미국소아과학회에서도 “청소년의 음주 장면 노출 빈도가 1000번 늘어나면 이들이 음주를 시작할 가능성은 5% 높아지고, 폭음 위험은 13% 증가한다”고 우려를 밝혔다. 심지어 10대가 사랑하는 K팝 스타들이 음주 맞대결을 펼치고, 취한 모습으로 비틀거리는 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고 ‘긍정적’으로 보이겠는가. 사실 음주량이나 음주 방식에 관한 것보다 위험한 건 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술을 마셔야 대화가 자연스럽게 풀린다거나 술의 힘을 빌려야 진심을 드러낼 수 있다는 통념, 심지어는 연인이나 ‘썸’ 관계에서 일종의 ‘플러팅 만병통치약’처럼 치부되는 태도는 어쩌면 가장 치명적일 수 있다.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다분하다.

비난의 화살은 스타에게 가장 쉽게 향하지만, 책임은 모두에게 돌아간다. 특히 가장 제재가 필요한 부분은 플랫폼. 10~30대까지 젊은 시청자 층이 주인 유튜브에서 콘텐츠 연령에 관한 규제는 하나도 없다. 그저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와 같은 경고만 잠깐 띄우면 모든 책무를 행한 것처럼 느껴지는 ‘빨간 네모창’에 정책은 참으로 관대하다. 꽤 높은 규제가 적용되는 지상파 채널이나 시청 등급을 적용해 청소년에게 노출을 어느 정도 방지하고 있는 OTT와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 유튜브의 경우 해외 사업자인 만큼 콘텐츠가 가이드라인을 위반해도 실질적인 제재는 가할 수 없는 현실도 한몫한다. 음주 방송 문제가 심각해지자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최근 유튜브와 OTT에 적용되는 ‘절주 문화 확산을 위한 미디어 음주 장면 가이드라인’ 개정안에서 기존 10개 항목에 ‘미성년자의 콘텐츠 접근 최소화’ ‘음주를 미화하는 장면의 유해성 고지’라는 항목을 황급히 추가했으나 의무사항이 아니라 실효성이 없다. 영상 게시자나 콘텐츠 제공자가 연령 제한 설정을 손쉽게 할 수 있음에도 조회 수와 파급력을 위해 고의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술이라는 소재를 풀어내는 미디어의 방식도 돌이켜봐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해 심층적으로 다룬 <한국일보>의 한 기사에서 김헌식 평론가는 “스스로 트렌드를 이끌어가지 못해 음주로 도피한 콘텐츠는 설 땅이 없다고 본다. 무조건 많이 먹기만 하는 먹방이 더 이상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것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목적인 방송은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적 있다. 유튜브는 TV 방송과 차별되는 지점을 ‘음주’로 풀어내며 자신의 자리를 꿰찼지만, 이제 술에 기댄 콘텐츠를 우후죽순 내놓으며 이에 편승하기보단 대안을 고찰해야 하는 책임에 직면했다. 소재로서 과음 트렌드는 미디어 환경에 따라 또 변할 것이며, 더 이상 ‘힙’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시대도 올 것이다. 취해야만 솔직해지고 재밌어진다는 통념에 기대 소재와 포맷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캔 커피와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살롱드립2>나 다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고 1시간 동안 얘기하는 <핑계고>의 경우처럼 술에 기대지 않고도 재미있는 말이 마구 쏟아지는 콘텐츠도 많다는 걸 떠올려보자.

여전히 뒷받침할 실질적 자료도 부족하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논의돼야 할 술과 콘텐츠의 관계성.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태도는 당연하지만, 음주 콘텐츠를 다룬 이 같은 이슈에 앞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자신의 기조를 자정해 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유튜브 술 콘텐츠의 열렬한 애청자라면 자신의 건강 농도와 즐거움의 황금비율은 스스로 만든다는 걸 늘 상기하면서 말이다. 나는 일단 섞지 말고 ‘딱 한 잔’만 마시기로 했다.

평소 차분한 모습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내 ‘최애’의 높은 텐션과 흐트러진 모습, 솔직한 속내는 ‘도파민’의 급이 다르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일러스트레이터 JOHN MOLESWORTH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정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