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은한 플로럴 프린트의 1920년대풍 튜닉 드레스.
막스마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언 그리피스(Ian Griffiths)는 “지난 3월에는 컬렉션 사전조사를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렀어요. 돌아와보니 이탈리아 전체가 록다운 상태더군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막스마라 그룹의 PR 및 커뮤니케이션 대표인 조르지오 귀도티(Giorgio Guidotti)와 함께 2021 리조트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두 사람은 이 컬렉션을 두고 ‘이성과 낭만주의’의 산물이라고 불렀다. 리조트 컬렉션은 한 벌 한 벌이 각자의 여정을 담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록다운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칩거가 찾아왔고,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기적적으로 탄생했다는 의미다.
귀도티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언의 아이디어였어요. 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몇 년 전에 읽었던 펠릭스 유수포프(Felix Yusupov) 왕자에 관한 책을 떠올렸죠. 집에 보관하고 있던 그 책을 다음날 이언에게 가져다주었어요.” 물론 이 책 속의 이야기는 러시아 소설처럼 복잡하다. 로마노프 왕조가 러시아를 통치하던 시절, 펠릭스 유수포프는 가장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의 부유한 상속자였다. 그는 황제의 조카인 이리나 알렉산드로브나(Irina Alexandrovna)와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역사에 남을 만한 성대한 결혼식을 치른 뒤 행복하게 살았다. 이언 그리피스는 이들의 이야기에 흠뻑 매료됐다.
“펠릭스는 밤에 여자 옷을 입고 클럽에 노래를 부르러 가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죠.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두 사람의 사진을 보면 언뜻 이리나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펠릭스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의 중성적인 면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1916년 12월의 어느 날 밤, 펠릭스는 황제의 고문 역할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ij Rasputin)을 저녁 만찬에 초대했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그를 독살하려 했다. 라스푸틴이 국정을 어지럽힌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리나와 함께였는지, 펠릭스 혼자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전이 실패하자 그들은 라스푸틴을 총살한 뒤 네바 강에 던져버렸다. 시신이 발견된 이후, 펠릭스는 체포됐지만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 모두 크림반도로 추방됐을 뿐이다. 1919년, 붉은 군대가 크림반도에 도착했을 때, 유수포프 부부는 다시 한 번 급하게 짐을 꾸렸다. 몰타를 거쳐 이탈리아로 도망친 이들은 마지막으로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이언 그리피스는 “우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수포프와 로마노프 왕국의 아름다운 무도회복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기록보관소를 연구하는 특권을 누렸어요. 그 웅장함, 이리나와 펠릭스의 매혹적인 이야기 그리고 세계에서 일어났던 주요한 일에 대한 생각들이 명백한 대비를 이뤘죠. 또 말레비치(Malevich)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추상적인 그래픽이 박물관의 신고전주의 배경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것도 놀라웠어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다녀온 후에 새로운 스케치를 여러 점 그려낸 걸 보면 그때 받은 영감이 컬렉션에 큰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해요. 러시아에서 여정을 마친 뒤에는 런던으로 날아갔는데, 그사이 이탈리아가 록다운됐죠. 그런 상황에서도 의상 시제품이 3개월 만에 나온 것은 대단한 일이에요. 우리 팀원이 보여준 훌륭한 노력의 산물이죠. 결국 영감은 나와 내 컬렉션에 훨씬 더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아요. 현대 여성들이 바깥 세상에 나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땐 편안하고 실용적인 옷이 필수예요. 하지만 낭만 역시 필요하죠. 이게 바로 이성과 낭만주의의 감각이에요. 막스마라의 합리적인 디자인과 랩소디 감각이 섞인 것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엄격한 건축물이 여전히 차이콥스키와 도스토옙스키의 메아리와 공명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1770년대에 지어진 유수포프 궁전 내 화이트 필라 홀.

펠릭스 유수포프와 이리나 알렉산드로브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방문한 이언 그리피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공간에는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옷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러시아 전통의상인 카사바로트카(Kosovorotka)에서 영감받은 셔츠에는 앤티크풍의 트리밍이 더해져 있었고, 금실로 자수를 놓은 실크가 화려한 빛을 냈다. 캐시미어와 플리세, 브로케이드로 만든 자카르 스웨터는 흰색과 검은색, 금색이 조화를 이루며 러시아의 전통 문양을 떠올리게 했다. 캐멀 컬러의 튜닉 아래로 행커치프 스타일의 밑단을 살린 스커트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 1920년대 스타일의 의상은 ‘이리나의 순수한 영혼’이다. 자수를 놓은 밴드는 머리에 착용하거나 벨트로도 사용 가능하다. 단추를 측면에 배치한 코트는 앞섶이 벌어지지 않도록 리본을 맸고, 막스마라 하우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테디 코트는 슬리브리스 형태로 변신했다. 재킷 아래에는 의외로 은은한 분홍색 블라우스나 선명한 파란색을 매치했다.
“우리는 유수포프 궁에서 쇼를 하고 싶었죠. 캐비아를 올린 저녁 식사와 함께 〈백조의 호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볼쇼이 에투알(Bolshoi E′toile)을 초청하려 했어요. 이런 복잡한 프로세스를 하나씩 세분화하는 작업이 정말 재미있어요. 모든 것의 기본이기도 하죠. 작은 디테일이 모여 추상적 인상을 만들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제공하잖아요. 우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릴 쇼를 상상하면서 그에 맞는 가구를 찾으러 골동품 상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어요. 속이 비어 있는 액자부터 가구, 천으로 덮여 있어 버려진 듯한 분위기를 내는 소품들을 찾았죠. 유수포프 궁에도 작품이 남아 있긴 해요. 렘브란트는 아니지만 안토니오 카노바의 작은 조각품들이 대표적이죠. 쇼의 형태는 안락의자에 앉은 관객들과 라운지를 행진하는 모델이 함께 어우러지는 오트 쿠튀르 방식을 생각했어요. 참, 이리나와 펠릭스도 파리에 패션 하우스를 세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두 사람의 이니셜을 딴 이르페(Irfe′)예요. 망명자 신분에서 다시 한 번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두 번째 삶을 창조한 거죠. 내가 한창 쇼를 준비하는 도중에 팬데믹 사태로 많은 브랜드가 패션쇼를 취소하기 시작했어요. 나에게도 많은 사람이 조언했죠. 부디 쇼를 취소하지 말고 연기하라는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나는 노스탤지어를 좋아하지도 않고, 한번 받은 영감을 재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어요.”

금실로 수를 놓은 라펠과 헤어밴드로 제정러시아 시절의 웅장함을 표현한 수트 룩.

시어한 드레스와 테디 코트의 매치로 낭만과 실용성의 만남을 표현한 룩.

유수포프 궁전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내부 전경.

그리고리 라스푸틴의 딸 마리아 라스푸틴.

에르미타주 박물관 기록보관소가 소장한 드레스와 패브릭을 감상하는 이언 그리피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릴 뻔했던 쇼가 팬데믹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무산된 후, 이언 그리피스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화려한 귀족의 삶에서 망명자 신분으로 급락한 이리나와 펠릭스가 결국 시대 변화를 알리는 창조적 직감을 얻었던 것처럼 이성과 낭만의 연대기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언 그리피스의 막스마라는 지난 9월 밀란에서 거리 두기를 유지한 채 2021 S/S 컬렉션을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우리는 쇼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귀도티는 말한다. “우리 옷에는 품질과 옷감, 색상으로 만든 부가가치가 있죠. 모든 사람이 느낄 수는 없더라도 물리적 이벤트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번 시즌은 긴급한 상황에서 탄생했지만, 모두 각자 원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어요. 실제 공간과 실제 여성을 상상하지 않고는 창의적인 메커니즘을 유지할 수 없어요.” 이언 그리피스가 영국의 시골집에 머물 때만 해도 이 쇼의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었다. “S/S 컬렉션이 열릴지조차 미지수였죠. 하지만 나는 가능성을 믿었어요. 이른바 어둠 속의 도약이랄까요. 생산과 자재 조달, 포장은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하지만 이탈리아에 닥친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조직하는 능력을 발견했죠. 쇼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저 약간의 불편함과 안전 예방 조치를 고려사항에 추가했을 뿐이죠. 그 결과 우리는 런웨이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놀라운 자부심을 얻었어요. 막스마라뿐 아니라 이탈리아 패션 산업 전체의 승리였죠.” 이성과 낭만주의 또는 실용적인 정신과 발명할 용기. 미래는 이렇게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