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등린이'가 됐나?
한국에는 또 다른 트렌드가 있다. 코인 붐과 올해의 주식 투자 열풍을 경험하면서 투자도 유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큰돈이 오가는 투자 유행을 따르는 것이 맞는 걸까?
몇 년 전 가상화폐거래 붐이 일었을 때 나는 2개월간 코인 트레이딩에 미쳐 있었다. 정부에서 시장 과열을 경고할 정도로 한국 가상화폐 시장이 특히 뜨거웠다. 나도 유행에 뒤질세라 뛰어들었고, 집착을 넘어선 중독 증세까지 생겼다. 주식시장과 달리 24시간 돌아가는 가상화폐 시장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두해야만 했다. 출근해서도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매수와 매도 버튼을 쉼 없이 눌러댔다. 심지어 사내 메신저로도 종일 동료와 특정 코인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찾아왔고, 집 근처 식당에서 파스타를 시켰다. 파스타를 허겁지겁 먹었던 그 짧은 시간에 나는 1,500만 원을 날렸다. 그 충격적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식당을 다시 가지 않는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언젠가 코인 자산이 회복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사망한 주인을 기다리는 하치코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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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유혹을 견디지 못했다. 주식 계좌를 개설하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주식을 하고 있었고, 커피숍에 들어가도, 식당에 들어가도,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핸드폰으로 주식 시세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해보고 싶어졌다. 증권사에 들러 난생처음 주식 계좌를 만들었다.
거금을 들였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주식 몇 가지를 샀고, ‘주린이’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내 주식의 시세는 파도를 타듯 출렁였고 그럴 때마다 조울증에 걸린 것처럼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시작할 때 부풀었던 기대와 다르게 나의 주식 성적은 썩 좋지 않았고, 지금은 얼마를 더 잃게 될지 매일매일 노심초사하고 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 놓인 건 나만은 아닌 것 같다
돌아보면 내가 왜 코인에 그렇게 많이 투자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특정 코인은 구매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 당시 나는 뭔가에 씌어 있었다. 사행성이 가져다주는 일시적인 희열은 쉽게 중독될 정도로 강력하다. 벼락부자가 된 극히 일부 사례를 보며 지루한 일상을 꾸역꾸역 견뎌내던 때라 투자를 통한 인생 역전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왜 이런 투자 열풍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 지금 한국의 청년들은 노후를 예측하기 어렵고, 직업을 가질 기회조차 갖기 힘든 현실을 마주한다. 그들에게 미래는 마주하기도, 예상하기도 두려운 존재가 된 지 오래다. 20년 후, 10년 후, 5년 후, 심지어 1년 후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일 건지 알 수 없는 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안정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개인의 심리적 안정과 직결되며 행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적 불안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 증가한 현실에서 개인이 매달릴 곳은 많지 않다. 그래서 아마 많은 사람이 투자에 뛰어드는 게 아닐까. 경제적 불안정성을 직면한 청년들은 미래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며 몸부림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한국살이 10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