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재테크 입문하고 깨달은 것들
나는 과연 부자가 될 수 있을까? 20대 끝자락 무렵, 재테크에 입문하고 깨달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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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앞두고 부동산 앱을 뒤적거렸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방 한 칸 더 있는 전세. 그러나 방 한 칸을 더 가지려는 건 욕심이었다. 적어도 5000만 원은 더 필요하다. ‘내가 짐을 좀 더 줄이면 되겠지 라며 오랜만에 외식하러 호쾌하게 나섰다. 친구와 밥 한 끼에 커피 한 잔 마셨을 뿐인데 6만 원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왠지 우울했던 그날 밤, 2000년대 초반 일요일 저녁이면 텔레비전 속의 스타들이 유치한 로고가 박힌 ‘만원의 행복’ 가방을 멘 장면이 불현듯 기억났다.
당시 열 살 남짓했던 내게 그 방송은 연예인들의 처절한 절약 ‘쇼’이자 ‘만 원만 있으면 일주일은 거뜬히 행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제적 낙관론이었다. 잔돈 몇백 원에 희비가 엇갈리던 그들의 모습이 희화화됐지만, 적어도 그 시절의 만 원은 한 끼 식사 이상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시절의 만 원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4만4000원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애석하게도 이 숫자는 우리에게 행복을 약속하지 않는다. 이제 만 원은 점심 한 끼와 커피 한 잔을 다 마시지 못하고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금액이 됐고, ‘일주일의 행복’은커녕 ‘반나절의 생존’을 담보하기에도 벅차다!
스물아홉, 서른이라는 숫자를 앞두고 내가 마주한 경제적 공기는 그 시절 TV 속 낙관론과는 전혀 딴판이다. 단순히 물가가 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실함의 상징이었던 적금은 자산 폭등의 시대 앞에 무력해졌고, ‘아끼면 잘살 수 있다’는 어른들의 격언은 이제 순진한 환상 같다. 부모님 세대에는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 집을 사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서울 아파트 중윗값이 월급쟁이가 평생 숨만 쉬고 모아도 닿기 힘든 수준이 됐고, 노동의 가치보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본의 가치가 훨씬 빠르게 뛰는 걸 목격하면서 일만 해서는 절대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없겠다는 공포가 생존 본능을 자극했다. 그렇게 나는 자본 가치를 불리는 데 저력을 보이겠다며 주식, 부동산, 재테크 막차에 올라탔다.
내 하루는 완전히 달라졌다. 오전 9시, 출근길을 함께하는 국장 개장 알림! 어제 뉴스에서 본 반도체 공급망 이슈가 내 포트폴리오에 어떤 색깔을 입힐까? 빨간색과 파란색 선이 어떤 리듬을 보일지, 그 타이밍과 원리는 잘 몰라도 이 단순한 색깔 변화에 하루의 기분을 저당잡힌 건 사실이었다. 안전하게 해보겠다고 산 삼성전자와 두산에너빌리티로 수익률 20%를 찍었을 때는 적은 돈이어도 월급의 절반을 몇 년간 부어온 적금 만기액을 손에 쥐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즐거웠다.
이런 나를 보던 친구는 ‘미장(미국 주식)이 진짜’라며 ETF에 대해 설명했다. 트럼프의 거침없는 발언 한 마디에 나스닥 지수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졸린 눈을 비비며 환율과 금리 추이를 살피는 일이 얼마나 도파민을 자극하는지 느껴보라면서. 그날 이후 SNS를 비롯해 유튜브나 구글 크롬 알고리즘은 주식을 하거나 재테크 후기를 설명하는 2030들의 영상으로 물결쳤다. 그러다 보니 눈에 보인 것. 요즘 2030 사이에서 재테크는 유행을 넘어 거의 정서가 됐다는 사실이다.
2025년 중반부터 왜 이렇게 많은 젊은 세대가 숫자와 차트, 금리와 환율, 청약과 ETF에 마음을 빼앗긴 걸까? 우선 나부터 들여다보니 적어도 두 가지 심리적 요인이 겹쳤다. 첫째는 결핍.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행동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과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 엘다 샤퍼는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서 “부족함은 단순히 통장 잔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방식 자체를 바꾼다”고 말한다. 실제 연구에서도 ‘희소성 마인드셋’이라는 개념은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신경 메커니즘을 바꾸고, 인지적 여유를 좁혀 당장의 손실과 기회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걸 의미했다. 가진 것이 넉넉하지 않을수록 사람은 더 냉정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한정된 선택지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
둘째는 비교의 감정이다. 재테크는 SNS 피드 위에서 전시되는 라이프스타일이 됐다. ‘사회초년생 1억 모으기’ ‘미장으로 수익률 몇 퍼센트 달성’ ‘월급 외 현금흐름 만들기’를 소개하는 릴스는 정보인 동시에 자극이었다. 댓글에 ‘미장’ ‘1억’ 등의 키워드를 쓰면 정보를 보내준다. 밀레니얼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유행에서 나만 뒤처지고 소외될까 봐 느끼는 불안을 의미하는 ‘포모(FOMO)’와 군집 행동이 투자 의도를 유의미하게 높인다고 봤고, 또 다른 연구는 소셜 트레이딩 환경에서 주변 투자자의 수익 성과가 개인의 거래 활동을 늘린다고 분석했다. 재테크는 돈을 버는 기술인 건 맞지만, 뒤처지지 않기 위한 감정 관리사 역할도 하는 것. 이런 심리를 부추기는 경제적 배경 역시 분명하다. 우선 생활비의 체감 난도는 꾸준히 높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서울의 연간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2.0% 상승했고, 개인 서비스 가운데 커피(외식)는 3.7%, 구내식당 식사비는 2.7% 올랐다. 밥 한 끼와 커피 한 잔이 유난히 비싸게 느껴지는 건 과장이 아니라 통계가 뒷받침하는 현실이다.
한편 주거는 더 멀어졌다. 한국부동산원 KOSIS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서울 아파트 매매 실거래 평균가격은 16억3290만 원이었다. 같은 통계 체계에서 발표된 수도권 생활지표를 보면 2023년 서울의 PIR, 즉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은 9.1배였다. 서울의 집 한 채는 단지 비싸진 게 아니라, 소득으로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멀어졌다는 뜻이다. 한편 청년 소득은 늘었지만 부채 속도는 더 빠르다. 국가데이터처의 ‘청년 삶의 질 2025’에 따르면 19~34세 가구주의 가구 중위소득은 2015년 2916만 원에서 2023년 3778만 원으로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가구 부채 비율은 94.2%에서 172.8%로 뛰었다. 같은 해 전체 가구 기준으로도 평균 부채는 9534만 원, 상대적 빈곤율은 15.3%, 소득 5분위배율은 5.78배라니. 그러니까 돈을 모으는 게임보다 빚과 격차를 견디는 게임이 먼저 시작된 셈이다.
아직 ‘주린이’인 나는 책상에 놓인 책을 들췄다. 금융 칼럼니스트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이었고, 유독 한 구절이 눈에 띄었다. ‘진정한 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부는 보이는 소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선택의 총합이라는 뜻이다. 누군가의 수익률, 누군가의 청약 당첨, 누군가의 전세 탈출, 누군가의 조기 은퇴. 현대 자본주의가 부를 만드는 동시에 질투도 함께 생산한다는 하우절의 통찰은 유난히 비교가 일상화된 오늘의 재테크 문화에서 더욱 날카롭게 읽혔다. 거대한 경제지표 속에서 휘청거리는 스물아홉의 나는 어떻게 하면 중심을 잡고 나만의 속도로 걸어 나갈 수 있을까?
투자가 필수인 시대라지만, 숫자에 매몰돼 ‘오늘의 나’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다. 적은 돈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구석을 남겨두되, 세상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유연함을 갖는 것. 그것이 내가 내린 똑똑하게 버티기의 정의다. 무리한 레버리지를 활용하지 않기, 10~20년 후에 열어보며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안전하게 투자하기, 적금은 유지하기. 불안을 견디며 한 뼘씩 자라나는 내 경제관념이 훗날 서른의 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길 바라며. ‘만원의 행복’은 이제 없지만, 존재 가치를 완전히 증명해 주는 것들을 찾아 나서야겠다 마음먹으며 오늘을 시작해 본다.
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일러스트레이터 KAT SCHNEIDER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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