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낮의 자외선 지수는 최고 수준이다. 사진 이선배

자외선 차단제는 바캉스에서뿐만 아니라 언제나 필수다. 사진 이선배
자외선 차단제는 굴지의 화장품 기업과 제약기업들까지 기술을 경주하는 분야여서 자외선 차단 기능과 질감, 지속성 등 여러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외선차단제는 현재 아모레퍼시픽인 태평양화학에서 1959년 내놓은 ‘ABC 파라솔 크림’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려 1990년대까지도 자외선 차단제는 바캉스 갈 때나 쓰이는 특별한 물건이었다. 자외선 차단지수조차 없는 ‘선크림’을 바르면 바로 횟바가지 뒤집어쓴 듯 최강의 백탁 효과가 나타났으며 끈적끈적 기름지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차츰 SPF란 UVB 차단지수가 생기고 15만 돼도 좋은 줄 알았다가 30이, 다시 50이 등장했고 그 이상은 50+가 됐다. UVA 차단지수도 생겨 PA+++까지 +의 개수로 효과를 표기하게 되었다. 2001년엔 기능성 화장품법이 생겨 실제로 자외선 차단 효과가 있어야만 ‘자외선’ 등의 표현을 쓸 수 있게 됐고 자외선 차단지수도 명확히 표기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백탁효과는 없다! 다양한 제형의 자외선 차단제가 등장했다. 사진 JTBC Plus 자료실
최근 화두는 산호초를 비롯한 해양 생태계 보호다. 2015년 화학적 자외선 차단 성분으로 광범위하게 쓰인 옥티녹세이트(에칠헥실메톡시신나메이트), 옥시벤존(벤조페논-3)이 산호초 백화현상의 주범이란 연구가 나오면서 2018년 하와이 주의회가 이 두 성분이 든 자외선 차단제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산호초로 둘러싸인 팔라우에서는 올해 초 문제 소지가 있는 성분 10가지를 금지했다. 하지만 이들 자외선 차단 성분과 해양 생태계의 상관관계는 더 많은 연구가 진행돼야 해 아직 FDA 공인은 아니다. 그래도 기민하게 움직인 건 프랑스 제약사 피에르 파브르 브랜드, 아벤느. 가장 문제가 된 두 성분을 뺀 단순한 성분들로 자외선 차단제들을 바꿨고 ‘스킨 프로텍트, 오션 리스펙트(Skin Protect, Ocean Respect)’라는 캠페인까지 진행하고 있다. 다른 브랜드들도 소비자들의 반응을 주시하며 문제 성분 배제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최근 화두는 해양 생태계를 해치지 않는 자외선 차단제. 아벤느는 의심 자외선 차단 성분을 배제하고 비수용성 4가지 필터만 사용한 제품을 자체 캠페인 로고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아벤느 선 플루이드 SPF50+ PA++++ 50ml, 2만8천원
최근 나오는 자외선 차단제의 차단 지수는 거의 다 SPF 50+, PA++++인 최고 등급이다. 하지만 자외선 차단제 제조 기술과 선호하는 제형은 지역마다, 회사마다 다르다.더마 코스메틱으로 불리는 드럭스토어 화장품이 발달한 EU에선 일찌감치 자외선 A, B 차단지수와 각종 관련 인증을 관리했다. 회사는 대개 로레알, 바이어스도르프처럼 자체 연구소가 있는 곳들이고 건조한 유럽 여름에 맞게 크림, 로션처럼 유분감 있는 제형 위주다.
세계 화장품의 기준이 되는 FDA가 있는 미국은 자외선 차단제 성분 등에 대한 기본 규정은 잘 갖춰져 있으나 존슨앤존슨 같은 세계적 제약사에서 나오는 브랜드 제품부터 소규모 자연주의 브랜드에서 가내수공업에 가깝게 만드는 브랜드까지 규모에 극단적 차이가 있다. 자외선 차단제는 드럭스토어에서 취급하는 피부 보호용 OTC드럭(일반의약품)이라서딱히 질감이 훌륭하거나 메이크업 베이스 용도를 고려하진 않지만 저렴한 대용량 제품이 많다. 호주 역시 비슷. 일본은 습한 기후에 맞게 산뜻한 액상이면서 땀과 물에 지워지지 않는 자외선 차단제를 만드는 데 특화돼 있다. 여성들이 화장을 많이 해서 메이크업 베이스용도 많고 무기 자외선 차단 성분을 투명해 보이도록 하고 피부 자극을 줄인 제품이 많다. 단점은 대체로 양이 적고 옥티녹세이트를 많이 써서 배제하려면 100% 무기 자외선 차단제를 찾아야 한다.

‘아쿠아 부스터’ 기술이 적용돼 열, 땀, 물을 방어하는 지속내수성 자외선 차단제이면서 가볍고 끈적이지 않는 질감을 구현한 아넷사 퍼펙트 UV 스킨케어 밀크 SPF50+ PA++++ 60ml, 3만6천원
결과는 놀라웠다. 세계적 화장품 대기업, 제약사에서 나온 브랜드 제품들이 육안으로 보기에도 우수했던 것이다. 가격은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드럭스토어 용이어도 자외선 차단제 전문 브랜드로 기술력이 검증된 회사 제품들이 특히 훌륭했다. 같은 그룹 내 브랜드들은 대개 기술을 공유하는데 예를 들어 로레알 그룹이면 랑콤, 라로슈포제, 로레알파리, 키엘, 스킨수티컬즈의 결과가 비슷했다. 한국산 제품들도 있었는데 강력한 차단 기능이 있는 것처럼 광고한 베스트 셀러 제품이지만 마치 안 바른 것처럼 선탠과 선번(Sunburn)이 일어난 경우도 있었다. 한국소비자원에서도 몇 년에 한 번씩 국내 유통 자외선 차단제들 성능 검증을 하는데 그때마다 몇몇 제품이 표기된 수치보다 낮게 나와 곤욕을 치르곤 한다.

세럼이란 가벼운 제형에 자외선뿐 아니라 적외선, 블루라이트 차단까지 되는 AHC 내추럴 퍼펙션 프로쉴드 선퍼펙터. SPF50+ PA++++ 30ml, 2만6천원
자외선 차단제는 1㎠당 0.2mg을 발라야 해 약 400㎠인 사람 얼굴엔 한 번에 약 0.8g을 발라야 한다. 권고대로 두 시간에 한 번 덧바르면 30g짜리는 열흘 안에 다 쓰게 된다. 이건 얼굴만이라 바닷가나 수영장에서 온몸에 바를 경우 100g 이상 대용량을 며칠 만에 다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권고대로 바르지 않고 40도 가까운 폭염 속에서 운동하거나 수건으로 땀을 닦는 등 무모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빛을 발하는 게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거나 수분을 만나면 막이 더욱 단단해지는 첨단 기술이 적용된 자외선 차단제일 것이다. 그러니 자외선 차단제는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양이 많고 덧바르기 좋은 질감이거나, 한 번 바르면 효과가 강력하게 유지되는 기술력이 검증된 제품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