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虎口) [호ː구]’, 비속어일 것 같지만, 호랑이의 입이란 뜻인, 의외로 멀쩡한 말이다. 처음 들은 건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 바둑을 배울 때. 번번이 호구 상태가 돼 집을 잃으며, 그게 얼마나 불쾌하고 수치스러운 일인지 뼛속 깊이 아로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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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건강식품 한 번 안 먹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몸에 좋다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듯 범위조차 정하지 못할 만큼 방대하면서 실체는 불분명한 건강식품. 과거 어르신들이 녹용, 개소주, 뱀탕, 해구신 등 원료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걸 ‘보약’이라 여기며 드셨다면 요즘 사람들 프로바이오틱스, 가르시니아, 크릴 오일, 루테인 등 이름이 외국어고 뭐로 만들었는지 모를 ‘건강식품’을 먹는단 것만 다르다.
건강식품은 코로나 19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아니 면역력을 키운다며 오히려 더 흥했다. 집단적으로 충분히 못 자고, 음주와 흡연을 못 피하고, 음식을 골고루 못 먹는 운명을 타고난 양 한국인은 건강 상식 대신 건강식품에 집착한다. 그래선지 누구보다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고 깐깐하게 가성비 따지는 사람들마저 건강식품 마케팅의 호구로 전락하기도 한다.
식품을 원료로 한 의약품도 많으니 주의할 것! 사진/ Nathan Dias on Unsplash
일단 건강식품이란 무엇인가 정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식품과 관련 있고 ‘몸에 좋을’ 것이라 믿어지는 상품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유명한 위장약 카베진 코와알파는 양배추에서 유래한 메틸메티오닌설포늄염화물(MMSC)이 주성분이지만 효능이 검증된 의약품이다.
이렇게 원료는 식품이지만 결과물은 약인 제품도 많다. 증상이 있어야지, 멀쩡한 사람이 아무렇게나 먹는 게 아니다. 두 번째, 약은 확실히 아니지만 장복하면 뭔가 효능이 나타나는 식품들이 바로 ‘건강기능식품’이다. ‘몸에 좋다’고 뭉뚱그려진 만큼 온갖 허위·과장 광고와 오남용 피해의 유구한 역사 때문에 대한민국 식약처는 딱 선을 그었다. ‘특정 기능성을 가진 원료, 성분을 사용해서 안전성과 기능성이 보장되는 일일 섭취량이 정해져 있고, 일정한 절차를 거쳐 건강기능식품 문구나 마크가 있는 제품’이 건강기능식품인 걸로……. 여기엔 흔히 말하는 영양제, 즉 비타민들과 칼슘, 식이섬유같은 영양소와, 프로바이오틱스, 인삼, 프로폴리스, 코엔자임 Q10같은 기능성 원료 제품이 있다.
일정 부분 효능이 검증돼 식약처 인증 ‘건강기능식품’ 표기가 분명한 상품
기능성 원료를 쓴 건강기능식품에는 ‘루테인 지아잔틴 복합 추출물’, ‘노화로 인해 감소될 수 있는 황반색소밀도를 높여주어 눈 건강에 도움을 줌’, ‘1일 1회 1캡슐’처럼 기능성 원료명, 효능, 섭취량이 명확히 표기돼 있다. ‘도움을 줌’이란 강력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효능을 뒷받침할 근거는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과는 본인 몸 상태나 섭취량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체지방 감소 기능성 원료인 가르시니아캄보지아 추출물과 녹차추출물, 풋사과추출폴리페놀을 동시에, 과하게 먹어 간 수치가 상승하고 황달이 온 사례가 몇이나 보고됐으니 말이다.
또, 건강기능식품 인증을 받았더라도 약처럼 오인·혼동할 우려가 있거나,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표기, 광고는 위법이다. 작년 모 유명 유튜버가 자기 채널에서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주는 건강기능식품을 선전했다가 검찰에선 징역 6월 구형, 최종 판결에선 벌금형을 받은 적이 있다. 사용자들 후기를 바탕으로 한 “OO 제품을 먹고 OO kg 감량했다” 같은 표현이 반복 등장하며 판매 제품 자체 때문에 체중이 준 것으로 소비자를 오인, 혼동하게 했기 때문이다.
최근 허위, 과장 광고로 가장 많이 적발되고 있는 일반식품 크릴 오일.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그런데 건강기능식품조차 아닌, 일반 식품(건강기능식품이란 표기 대신 식품의 유형 칸에 가공식품, 혼합 음료, 어유 등이 표기돼 있다.)이면서 효능이 확실한 의약품으로까지 오인하게끔 하는 간 큰 사례는 더욱 많다. 대표적인 것이 대유행 중인 크릴 오일인데 혈행 개선, 면역 강화, 항산화, 피로 해소 등 검증 안 된 효능을 내세우거나 암시를 주는 것, 비만, 고혈압, 뇌졸중, 치매 등 질병명을 사용하면서 질병 예방이나 치료에 효과가 있는 약으로 오인하게 하는 선전 모두 허위·과장 광고에 해당돼 얼마 전 무려 829건이 식약처에 적발됐다. 마찬가지로 해독 작용이 있다는 주스, 살을 빼 준다는 커피 등도 모두 일반 식품이고 위법 표현이다.
특히 해독은 간에서 하는 거라 일단 식품 광고에 ‘해독’이란 표현이 들어가면 가자미눈을 하고 봐도 무방하다. 습관적 과로와 음주에 찌든 지인이 “나 디톡스 주스 프로그램 시작했어. 항상 피곤한 게 독소 때문인 것 같아서 5일만 눈 딱 감고 해보려고......” 했을 때 차라리 잠을 더 자고 술을 끊으라고 하고 싶었지만, 다이어트의 꿈까지 야무지게 꾸는 반짝반짝 눈빛에 그래도 밥은 잘 챙겨 먹으란 조언밖에 할 수 없었다. 사흘쯤 후, 안타깝게도 과로, 음주 여파에 기아까지 맞닥뜨린 그는 피골이 상접한 채 갈대처럼 휘청거렸다.
일명 '디톡스 주스' 프로그램 역시 일반 식품이고 위법 표현이다. 사진/ JTBC Plus 자료실
기대하는 효능이 안 나타날 텐데 돈은 돈 대로 쓰고, 꾸준히 챙겨 먹는 정성과 시간을 들이고, 다른 음식을 균형 있게 먹을 기회조차 놓친다면 어찌 호구가 아닐 수 있을까? 상품을 개봉하지 않고 14일 이내 반품 요청하면 어떤 식품이든, 프로그램이 어쨌든 반품할 수 있고 부정·불량식품은 1399에 신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잘 관리하겠다는 다짐, 부모나 고령 어르신의 장수 기원 등의 실체화 도구로 건강식품을 쓰겠다면야 말릴 생각은 없다. 사실 오늘날 건강식품은 건강과 장수를 향한 드림캐처 역할이 제일 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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