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셀린의 카탈로그 광고. JTBC Plus 자료실
전후 일본 경제의 대호황으로 중산층 이상 계층이 성공을 과시할 훈장 같은 매개체가 필요해졌다. 경제적 동물이라 불릴 만큼 일에 매달렸던 세대가 마침내 여유가 생겨 서양, 특히 유럽 여행길에 올랐을 때, 왕족과 귀족에게 공급한다는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 하우스들을 발견했다. 역사와 품질의 대명사인 교토 기모노나 아리타 자기에서 떠올리던 ‘명품’이란 이미지가 그들 상품에 자연스레 덧씌워졌을 것이다. 그리고 1972년 구찌, 1978년 루이 비통이 도쿄에 상륙하면서 본격적인 ‘명품’ 마케팅이 시작됐다.
평생 함께할 친구 같은 물건
아시아에서의 광풍 초기에 명품은 그 자체로 품질을 대변했다. 유럽 왕족과 귀족이 신뢰하고 가족 기업이 공방에서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드니 믿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시대를 초월한’, ‘대를 물려 쓰는’ 물건이란 광고 카피가 흔했고, 설령 내구성이 떨어지거나 작은 결함이 있는 브랜드였더라도 아시아 소비자 요구 수준에 따라 품질 관리를 하면서 실제 고품질이 되기도 했다. 30년 이상 된 빈티지 가죽 가방들을 보면 대체로 안감까지 스웨이드 등 부드러운 가죽이나 실크 등 좋은 소재를 써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게 보이고 겉가죽이 낡으면 왁스를 발라 광을 낼 수 있는 등 실용성도 미덕이다.

장인들과 공방에서, 페라가모. JTBC Plus 자료실
지금은 그때만큼 정교한 물건이 확실히 줄긴 했지만 씹고, 뜯고, 맛보면 분별할 수 있다. 쉬운 방법은 빈티지 가게를 뒤지는 것.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시아에선 빈티지가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상태 좋은 클래식 아이템이 ‘안 쓰는 엄마 가방’ 식으로 나와 있는 게 많다. 현재 구찌, 디올, 루이 비통 등 상당수 브랜드가 여전히 클래식 모델에서 영감을 받았으면서도 모던한 디자인을 내놓고 있으니 그 원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본인의 이름을 딴 가방을 든 그레이스 켈리. JTBC Plus 자료실
그 자체로 패션이 된 브랜드에 대한 사랑
영화 〈해롤드와 쿠마 2〉에서 난봉꾼 닐 패트릭 해리스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불에 달군 인두로 자기 이니셜을 찍으려다 총에 맞아 죽는다. 그 직전 분노에 찬 한 여성이 외친 말이 “That prick f**king branded me!”다. 브랜드란 단어가 강렬하게 뇌리에 꽂힌 순간이었다. 브랜드(brand)는 불로 새긴다는 고대 노르웨이어 ‘brandr’, 가축에게 낙인을 찍는 영어 ‘burned’ 등 불로 소유를 의미하는 표식을 새기는 행위와 어원이 이어져 있다.

JTBC Plus 자료실
기존 고객층보다 스무 살은 젊은 아이돌, 인플루언서가 걸치고 소셜미디어에서 보여주려면 브랜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했다. 거기에 ‘80년대 미국 힙합 신과 1990년대 동유럽 스트리트 감성까지 돌아오며 브랜드 로고는 역사상 최대로 팽창했다. 백 년 가까이 간직한 로고를 단순하고 강렬한 ‘폰트’처럼 바꾼 브랜드도 많다. 그 사이 디자이너 하우스들의 1세대 쿠튀리에들은 거의 다 스러졌다. 죽은 자의 이름으로 몸을 뒤덮는다는 건 그들에 대한 순수한 경외와 함께 가장 원초적인 패션에의 욕망을 표출하는 행위 아닐까?

로고가 가방보다 커질 지경인 발렌티노 슈퍼비 백. 사진/ 이선배
우량주보다 탄탄한 투자 가치와 환금성
최근 샤넬 제품 가격이 오르기 전 사려고 새벽부터 매장 앞에 줄 서 있다 문이 열리자 마자 달려 들어가는 서울의 ‘오픈 런’ 풍경이 외신에까지 보도됐다. 샤넬 가방이 어느덧 예단, 예물 등 관혼상제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십여 년 전 후배가 샤넬 클래식 미디엄 플랩 백을 면세점에서 1백만 원대 후반에 산다고 했을 때 “너무 오른 거 아니야?”라고 한 게 뒤늦게 미안해질 만큼(다행히 그때 샀다) 가격이 껑충 뛰어올랐다. 미국 달러 기준으론 1955년 220달러에서 시작한 가격이 이제는 6496달러다. 시대에 따른 물가상승률도 있겠지만, 가격이 오르는 데도 수요가 증가하는 베블런 효과를 생각해 보면 명품 브랜드들도 고객의 신뢰도, 차별화 등을 고려해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에르메스와 샤넬의 클래식 백들. 사진/ 이선배

코로나 19 로 전체적 소비는 줄었지만 일부 명품 브랜드들은 보복 소비의 수혜를 보고 있다. 사진/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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