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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의 해외 여행, 다시 떠날 수 있을까?_선배's 어드바이스 #10

3차 대전에 버금간다는 세계적 코로나 19 사태가 익숙해진 여행 문화마저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운 좋게 극복한다면, 우리 다시 떠날 수 있을까?

BY권민지2020.04.27
작년 10월, 나폴리, 카프리, 소렌토 등 이탈리아 남부를 유랑했다. 동행하기로 했던 사람이 갑작스레 사정이 생겨 할 수 없이 혼자 떠난 여행길이었다. 조금 늦지 않았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한낮엔 약간 뜨거울 정도로 태양이 눈 부셨고 사탕 색 수영복을 입은 휴양객들이 에메랄드빛 지중해에 점점이 떠 있었다. 매일 저녁 혼자서 스푸만테(Spumante)를 들이켜며, “곧 누구라도 함께 다시 와야지, 이런 풍경에 같이 마실 수 없단 건 말이 안 돼”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그것이 평화로운 풍경으로 기억하는 마지막 이탈리아 여행이 될 줄이야….
 
한 치 앞을 모르고 평화롭기만 했던 작년 10월 카프리 풍경. 언제 아무 걱정 없이 다시 갈 수 있을까? 사진/ 이선배사진/ 이선배사진/ 이선배
기존의 세계 질서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소위 일 세계 나라들도 하루 사망자가 수백 명에 달하고, 유서 깊은 성당들이 시신 안치소가 되는 지옥 같은 풍경을 보고 있다. 세계 사망자 2십만 명을 돌파한 지금, 먼저 안정권에 다다른 아시아 몇몇 나라는 조심스레 ‘뉴노멀’을 말하지만 그건 여러 면에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Alli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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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국적 항공사 알이탈리아 항공이 6월부터 완전히 국유화된다고 한다. 올해 87.5% 줄어든 매출 때문에 그 방법 아니면 파산을 막을 길이 없다고 스테파노 파투아넬리 산업부 장관이 밝혔다. 다른 항공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에어프랑스, KLM, 대한항공 등 각국 국적 항공사들 대부분이 정부의 긴급 자금 수혈을 받아야만 생존 가능하고 저가 항공사들은 파산 또는 구조 조정을 피할 수 없으며 굴지의 항공기 제조사 보잉은 예정됐던 합작 계약이 취소돼 소형 항공기 개발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Macau Photo Agenc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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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해도 타격받은 항공산업이 회복되는 데는 몇 년이란 긴 시간이 걸릴 거란 전망. 해외여행이 전처럼 일반인들에게 일상의 일부분이 아니게 될 거란 뜻이다. 항공 노선, 편수 자체가 줄어드니 항공권값은 대폭 오를 것이며, 가는 시간은 오래 걸리고, 갈 수 있는 곳 역시 한정될 것이다. 불현듯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까지 한국인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돈이 있어도 외국에 갈 수 없었다. 북한은 지금도 그렇고, 중국도 형식적으로나마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89년 이후 봇물 터지듯 외국 여행 수요가 폭발했지만, 항공권은 지금과 비교해도 액면가가 비슷하거나 더 비쌌다. 즉, 짜장면 한 그릇에 천 원이던 시절에도 가장 싸다는 일본, 동남아 왕복 항공권조차 몇십만 원이어서 누구나 해외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스웨덴의 십 대 환경운동가, 그레타툰베리가 그토록 주장했던 항공 수요 줄이기가 자연히 이루어지는 셈. 또, 아시아에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도 모르는 서양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 동양인이 안전을 위협당할 소지도 크다. 지금도 종종 벌어지고 있지만, 동양인 여행객에 대한 테러가 연달아 생긴다면 그 지역엔 당분간 걸음 할 수 없을 것이다.
 
Stem.T4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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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진화하는 가상 여행도 여행이 된다
그렇다면 여행의 판도는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일단 간단한 건 가상이라고 쓰고 망상이라고 읽는 여행이다. 여러 여행 잡지에서 ‘코로나19가 끝난 다음 여행을 간다면?’ 이란 주제로 기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현재나 한두 달 후 갈 곳을 추천하는 게 아니라 ‘언젠진 모르지만 다 같이 꿈꿔 보실래요?’ 하는 슬픈 기사들이다. 거기 불을 지핀 건 그리운 곳들의 관광청.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인상적 글귀를 올리는 작업은 재택근무로도 가능해선지 국토 전체가 봉쇄된 나라, 매일 수백 명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관광청들은 일하고 있다. 텅 빈 밀라노 두오모 광장과 사르데냐의 해변, 안달루시아 지방의 언덕 마을 풍경 등이 그 계정들에 올라와, 가고 싶은 자와 오라고 하고픈 자를 한 마음으로 울게 한다.
 
Parker Byr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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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을 자발적 자가 격리 생활을 해온 나 역시 종종 망상 여행에 빠져들었다. 여행 소멸로 큰 타격을 입은 공유 숙박 기업 ‘에어비앤비’는 역발상으로 새로운 체험 상품을 내놓았다. 세계 곳곳의 호스트가 온라인 클래스를 열고 화상 통화 서비스를 활용해 게스트들이 그곳에 모인 것처럼 가상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직접 방문한 것과 똑같이 숙박비 대신 체험료도 내야 한다. 와인 전문가와 함께 포르투갈 포도밭을 산책하고 숙성 중인 와인을 시음하며 좋은 와인 쇼핑법을 배우는 코스, 모로코 마라케시 호스트 집에서 전통 방식으로 닭고기 타진과 샐러드를 만들어 함께 즐기는 코스 등 다채로운 문화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VR 헤드셋이 있으면 망상 여행은 한결 쉬워진다. 구글에만도 360도 풍광을 볼 수 있는 가상 현실 콘텐츠가 상당수 있어서 원하는 지역을 탐험가처럼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다. 카프리 해안 절벽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베르사유 궁전 예술품들을 감상하고 세계 최대 규모 손둥 동굴 안도 헤매 보았다. 집에서 휴양 여행도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폐쇄 중인 일본 효고현 아리마 온천 90개 업소가 가상 온천 콘텐츠를 유튜브에 올렸다. VR 헤드셋을 쓰고 집 욕조에 몸을 담그면 마치 아리마 온천에서 노천 욕을 하는 듯 풍광도 즐기고 오가는 나카이 상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상으로 그룹을 지어 알래스카, 몬태나 동물원, 푸에르토리코 등을 모험한 프로그램도 인기가 좋았고 페루, 유타 마이티5 국립공원, 그랜드캐니언 등 투어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 신기한 망상 여행들의 치명적 단점은 끝나면 급격히 밀려드는 일명 ‘현타’,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다. 와이너리에서 익어가는 와인을 시음했는데 마트에서 산 와인 맛이고, 바닷가 절벽에 섰는데 바닷바람이 전혀 불지 않고, 온천에 몸을 담갔는데 감전될까 두려워지는…. 오감까지 만족시키는 4D 콘텐츠나 기기는 없나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코로나19라는 변수를 예측 못 해 아직은 드물지만, 곧 생겨날 예정이라고 한다.
 
스노우 어플을 활용한 #어디갈래_챌린지. 인스타그램 @modelhanhyejin랜선 여행! #어디갈래_챌린지. 인스타그램 @keemwj인스타그램 @dlehdgnl
외국은 못 가더라도 어딘가는 가야만 하는 사람들 덕에 국내 여행은 전에 없이 활성화될 것 같다. 사실 수십 년 전만 해도 신혼여행조차 제주 등 국내로 가는 게 당연했지만, 최근엔 상대적으로 싼 주변국 관광 물가 때문에 국내 여행이 한없이 사양길을 걸었던 게 사실이다.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직전 강원도 스키장에 갔을 때 성수기임에도 텅 빈 슬로프에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시설 대비 싼 스키장 내 호텔엔 내국인 스키어보다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 눈 체험 차 온 외국인이 더 많았다.
 
하지만 해외로 나갈 길이 좁아진 지금부턴 마치 ‘80년대 성수기 같은 국내 여행 붐이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5월 초황금연휴엔 제주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7만 명이 제주를 찾을 거라고 한다. 없는 지방색까지 만들어 아기자기하게 즐길 거리를 준비한 타국에 비해 국내 지방 관광지들은 너무 비슷비슷하고 가격적 메리트도 적은 게 문제긴 하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지방 정부와 민간 창작자들이 힘을 합쳐 지역색을 만들고 바가지 물가도 단속한다면 외국인들도 힘들여 찾는 관광 명소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Dayne Topk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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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시 여러 명이,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쓰지 않고, 항공권이나 인종 차별, 다녀온 후 슈퍼 전파자가 될 걱정을 하지 않고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까? 그때까지 우린 창의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여정 없는 여행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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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이선배
  • 사진/ 이선배 언스플래시 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