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보복 소비’ 잘하는 법_선배's 어드바이스 #11

코로나19로 억눌린 소비 욕망이 한 번에 터져 나오는가? 당신은 ‘보복 소비’의 덫에 빠졌다. 긴 세월 칼을 갈아 한 방에 복수하는 무사처럼, 어떻게 멋지게 할 것인가?

BY권민지2020.05.04
‘보복 소비(Revenge Spending)’란 말이 핫하다. 코로나19로 집에 칩거하며 생필품만 겨우 배송받던 시기가 지나자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폭발해 보복하듯 쇼핑하는 행태를 말한다. 몇 달 전 코로나19가 ‘세계적 보건 비상사태’로 떠오르자 일차로 타격받은 업계 중 하나가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이었다. 밀라노 패션위크에선 조르지오 아르마니, 파리에선 샤넬을 위시한 주요 브랜드들이 패션쇼를 무관중 온라인 쇼로 급히 전환하거나 무기한 연기했다. 이어 아시아에서 유럽, 북아메리카로 번진 봉쇄 때문에 바이어와 소비자 모두 왕래를 못 하게 됐고 소비 심리가 극도로 위축됐다.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에서 겨울 세일 상품이나 봄 신상품을 조금씩 샀던 나 역시 물류센터마저 봉쇄되자 꼼짝없이 카드를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구찌,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을 거느린 케링 그룹 CEO가 자발적으로 임금 삭감을 하는 등 패션계는 출구 없는 암흑에 빠진 듯싶었다.

 
텅 빈 런던의 번화가 옥스퍼드 스트리트. 사진/ John Cameron on Unsplash

텅 빈 런던의 번화가 옥스퍼드 스트리트. 사진/ John Cameron on Unsplash

하지만 긴 겨울 끝에 중국 본토를 비롯해 대만, 홍콩, 한국 등에서 코로나19가 진정될 조짐을 보이자 신기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없이 바닥에 가까울 줄 알았던 매출이 작년 동기와 비슷하거나 심지어 낫다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나타난 것이다. 바이어인 지인은 “해외여행, 모임이 취소되고 스트레스받은 내국인들이 공격적으로 고가 상품을 사들이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줄 서서 들어와 이것저것 비교하지도 않고 산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비슷한 현상이 중국에선 좀 빨리 일어났다. 코로나19가 처음 터진 중국의 소비 동향은 다른 나라에도 순차적으로 나타날 선례라 보면 되어서 세계가 주목 중이었다. 미국 〈WWD〉 지 보도에 의하면 에르메스가 광저우 플래그십 스토어를 재개장한 지난 4월 11일, 1천9백만 위안(약 32억6천만 원)이란 매출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중국 럭셔리 패션 단일 부티크 하루 매출로 최고 기록이다. 그 외 고급 자동차, 부동산 등도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 동안 매출이 상승한 생활용품들. 한 번 잘 고르면 거의 평생 쓸 수 있다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 동안 매출이 상승한 생활용품들. 한 번 잘 고르면 거의 평생 쓸 수 있다
정말 보복 쇼핑이 대세가 돼 경기마저 되살릴까? 전문가들은 소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드러난 단편적 모습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코로나19가 닥쳐도 여유 자금이 충분한 계층은 럭셔리 패션 외에도 온갖 고가 제품 보복 소비에 나섰지만 파산한 기업들과 직업을 잃은 사람들은 당장 생존할 돈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국 남서 대에서 2만8천 가구를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저축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겠다고 했고 40%는 전과 비슷한 쇼핑 패턴을 유지하겠고 9%만 더 많이 쇼핑할 것이라고 답했다. 국내 백화점 정기 세일 매출 성적도 비슷하다. 전체 매출은 줄었지만, 럭셔리 의류, 시계,  보석, 생활용품 부문에선 늘었다. 즉, 일부 계층, 상품군에선 보복 소비가 살아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경기가 한참 더 회복기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여름마다 시원하고 멋스럽게 보낼 수 있는 파리 메르시(Merci)의 리넨 침구

여름마다 시원하고 멋스럽게 보낼 수 있는 파리 메르시(Merci)의 리넨 침구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 개인은 어떤 방식으로 소비해야 할까? 긴 자발적 격리 기간을 보내며 느낀 것이 있다. ‘그동안 사들인 수많은 물건이 사실 별 필요가 없는 것이었구나’.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르는 물건들이 집안을 꽉 채웠단 걸 처음으로 구석구석 둘러보며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지 원하면 가져가라고 온갖 물건을 내놓은 집이 많았다.
 
인간이 덜 움직이고, 덜 만드는 동안 자연은 되살아났다. 놀랍게도 미세먼지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절반 가까이 줄고(한국환경공단, 3월 국내 17개 시도의 일평균 미세먼지 농도 46% 감소), 동물원 판다 커플이 십 년 만에 사랑을 나누고, 해변은 갓 태어난 새끼 거북이들로 뒤덮이고 도시엔 사슴과 홍학 떼가 돌아왔다. 환경단체들이 몇십년간 목이 터져라 외쳤던 걸 역병이 단숨에 해치운 걸 보니, 조금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 모든 비극과 희극을 목도한 패션업계에선 본격적으로 ‘지속 가능한(Sustainable)’, ‘느린(Slow)’ 소비를 말하고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와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꾸준히 지속 가능한 패션을 추구해 왔고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는 이번 시즌 다소 충격적인 유튜브 영상을 통해 주의를 환기시켰다. 코로나19를 통해 현재의 봄, 여름과 가을, 겨울 컬렉션 체제에 회의를 품고 본격적으로 슬로 패션을 주장하게 된 기업, 디자이너도 늘었다. 패션 트렌드를 너무 일찍 기획하면 이상 기후, 갑작스러운 정치, 사회적 이유 등으로 적중하지 못했을 때 대량 재고가 돼 폐기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시즌 상품을 더 늦게 기획하고, 시즌을 코앞에 뒀을 때 판매해야 한다”, 마이클 코어스는 “소비자는 더는 시즌 개념으로 패션에 다가가지 않는다. 당장 자기에게 필요한 게 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를 포함해 소비자들은 신상품이 나오거나 세일을 하면 필요와 무관하게 쇼핑을 하는 데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는 게 사실이다. 옷장에서 비슷한 데님 셔츠가 네다섯 개 발굴되고, 유행 지난 핏이라고 버린 바지를 유행 돌아오면 다시 사는 행위 말이다. 이제는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업계가 먼저 솔직하게 고백한 것.
 
 브랜드 시그너처 향과 핸드크림의 결합, 스몰 럭셔리 대표 아이템인 탬버린즈 누드에이치앤드크림

브랜드 시그너처 향과 핸드크림의 결합, 스몰 럭셔리 대표 아이템인 탬버린즈 누드에이치앤드크림

보복 소비를 하더라도 가치 있는 것에 하는, 구습의 대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려면 첫째, 하나를 사더라도 편하고, 잘 어울려서 오래 쓸 수 있는 걸 사자. 나도 늘 다짐하면서 실천은 잘 못 하는 원칙인데 주위 60대 멋쟁이분은 평생을 그렇게 쇼핑해 완벽한 옷장을 갖고 계시다. 최근에 산 듯한 주얼리는 수십 년 된 것이고 클래식이 된 소재와 재단이 훌륭한 코트, 재킷은 수도 없다. 가장 놀라웠던 건 20년 넘은 스타킹을 지금도 신으신단 것. 거미줄처럼 고운 실크 스타킹인데 한 번 신은 후 바로 가볍게 빨아 별도 천 주머니에 보관한다고…. 살 땐 비싸더라도 아주 오래, 행복하게 쓴다면 훨씬 합리적인 소비일 것이다.
 
 실내와 집 근처, 리조트에서 언제든 개성을 발산할 수 있는 실크 라운지 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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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으로 시선을 돌릴 필요도 있다. ’60-‘70년대까지는 동네마다 양장점이 있어서 옷을 맞춰 입는 게 보편적이었다. 둘러보면 그 시절 옷을 잘 입었던 분들이 확실히 핏, 색에 예리해 자신이 편한 옷을 안다. 디자이너들도 남성 양복점에서 하던 반맞춤-소비자가 매장에서 샘플 옷을 고르면 가봉을 해 몸에 잘 맞게 따로 완성하는 방식-을 여성복에 도입하려 하고 있다. 막스마라는 맞춤 코너에 이미 다양한 여성용 수트를 갖췄다.
 
 모든 부분을 선택 가능해 자기만의 시계를 맞출 수 있는 홍콩 브랜드 이오니크(eoniq.co)

모든 부분을 선택 가능해 자기만의 시계를 맞출 수 있는 홍콩 브랜드 이오니크(eoniq.co)

둘째, 온라인에선 매 같은 눈썰미로 쇼핑하자. 3월 말 상하이 패션위크는 티몰과 제휴해 패션쇼와 프레젠테이션, 상품 판매를 모두 온라인에서 하는 사상 초유의 실험을 강제로 치렀다. 그 절반의 성공에 다른 패션 브랜드, 업계도 같은 방식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온라인 쇼핑은 점점 더 정교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데, 코로나19가 가속도를 붙인 셈이다.
 
지나치게 싸고 편리한 한국 택배 문화 탓인지 좋아 보이는 것들을 마구 주문한 후 마음에 안 드는 건 반품한다는 사람이 많다. 그 이면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와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탄소 에너지가 있다. 소재, 사이즈, 색상 같은 정보는 애초에 잘 파악해 가능하면 한 번에 ‘보복’하자. 옷 같은 경우 각 브랜드마다 사이즈 표준이 조금씩 다르고 같은 브랜드여도 오버사이즈로 나오는 것과 꽉 끼는 게 있어서 가슴과 목, 엉덩이 둘레, 밑위 길이 등 자기 몸의 실측 사이즈를 알아 두는 건 기본이다. 상품과 모델 사이즈를 최대한 자세히 표기한 온라인 매장에서 사자. 소재 명도 마찬가지. 리넨, 텐셀, 비스코스, 메리노울 등은 무엇이고 어떤 질감인지, 세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 두자. (섬유정보센터 링크 바로 가기)


 기성품에 수공예를 더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상품으로 탄생한 패션 소품들

기성품에 수공예를 더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상품으로 탄생한 패션 소품들

셋째, 자신만의 취향과 안목을 키우자. 땅굴을 뚫어 은행을 털려 했는데 그사이 아내의 위장 쿠키 가게가 흥하면서 졸부가 된다. 하지만 큰돈 들여 꾸민 집은 빈곤한 미적 감각으로 기껏 초대한 상류사회 인사들의 비웃음만 산다. 영화 〈스몰 타운 크룩스〉에 등장한 블랙 코미디 요소다. 사실 어글리 스니커즈, 대드 진(Dad Jeans) 열풍이 불었듯 일관된 추함도 취향이다. 진짜 문제는 취향과 그것을 관철할 안목이 없는 것. 어릴 적 뒷골목 낙서에서 이미 화풍을 완성한 고 바스키아처럼 찾아오는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데 집중하다 보면 자연히 안목도 따라올 것이다. 그래도 안목이 쉽게 안 생긴다면? 복수의 칼날을 가는 무사처럼 언젠가 보복 소비할 자금이 차곡차곡 쌓일 테니 좋은 일 아닌가!
 
 
*지금 반드시 알아야 하는 뷰티,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그리고 생활의 지혜! 까지, '선배' s 어드바이스'는 매주 월요일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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