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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반려견과 함께 살면 반드시 일어나는 일

반려견과 함께 산다는 건, 어쩌면 크레이프 케이크 한 조각을 곁에 두는 일이다.

프로필 by 전혜진 20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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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들과 피크닉을 위해 반려견 호삼이를 대동해 함덕 바다에 갔다. 김밥을 싸서 찾은 초가을의 해수욕장은 여전히 푸르렀다. 제주를 제주답게 만들어주는 야자수 그늘 아래 긴 연휴를 만끽하러 온 관광객과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반려인들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면서 말이다. 나도 풍경의 일원이 될 차례. 캠핑 의자를 ‘착’ 하고 펼쳐 앉으면 1분도 되지 않아 ‘힐링’할 수 있는 호사와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제주에 살지만, 오히려 자주 놓치곤 하는 이런 순간을 오랜만에 챙기는 날이었다.


이럴 때 호삼이까지 함께하니 더없이 좋았다. 호삼이와 함께한다는 건 인간끼리 있을 때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날 차례.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개를 사이에 두고 스몰 토크를 시작하는 일이다. 나와 함께 외출을 나선 우리 집 둘째 강아지 호삼이는 10년 전 제주에서 길거리 캐스팅한 진도와 골든 리트리버 믹스로, 줄여서 ‘진트리버’라 부르는데 호삼이는 두 종의 장점만 따왔다. 골든 리트리버처럼 금빛 털을 가졌으며, 체구가 높고 다리가 긴 데다 진돗개처럼 충성심이 높아 반려인을 잘 따르기 때문에 평소에도 호삼이와 산책하면 말을 걸어오는 이가 많다.


심지어 피크닉을 한다고 앉아 있으니 사람들은 산책 중인 본인의 개를 앞세워 “얜 종이 뭐냐?” “나이가 어떻게 되냐” “멋지다”며 말을 건넸고, 멀리서 활짝 웃으며 다가온 외국 관광객은 호삼이가 ‘He’인지 ‘She’인지 물어보며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요청했다. 그렇게 다가온 몇몇과 이야기를 나누다 말문이 봇물같이 터지고, 자연스럽게 반려인들의 정보도 공유하고, 종국엔 서로의 SNS 구독까지 이어지니 그야말로 스몰 토크의 향연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한 친구(MBTI가 I로 시작하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기라면 절대 못 할 일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속으론 나는 ‘산책하지 않아도 되는 고양이와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을 거다.


개와 함께 산다고 모두가 이렇진 않겠지만, 개와 함께 살면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긴 하다. 제주에서도 시골 동네에 살기에 조금 덜한 편이긴 하지만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산책 때 자주 마주치는 반려인이 있고, 개들도 서로 좋아한다면 시간을 맞춰 함께 산책하기도 하고, 그러다 친해지면 단톡방을 만들어 산책 코스 등의 정보를 공유하며 때로는 유실된 개들을 앞장서서 찾고, 임보처를 자처하기도 한단다. 반려동물이 매개가 돼 만났지만 이제는 서로가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친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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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이 세상은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수많은 레이어로 이뤄져 있고, 자신이 그 속에 속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어떤 층위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일은 새로운 레이어 속에 들어가는 일과 같은데, 그 세상에 들어가면 일단 반려묘나 반려견과 살기 전엔 보이지 않았던 길냥이나 떠돌이 개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편의점으로 달려가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서 나누기도 하고,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실종 개를 찾는)를 유심히 보고 동네 구석구석도 찬찬히 살피게 된다. SNS를 하다가도 가족을 찾는 개나 고양이 또는 안락사를 앞둔 개들을 ‘리트윗’하고, 새로운 동물병원이 생기면 눈여겨보거나 산책하는 개가 저 앞에서 보이면 내 앞으로 지나가길 바라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이 반려인이 된 후 펼쳐진 반려인들의 레이어다.


나아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지 않았으면 결코 모를 내 성격까지 알게 된다. 반려동물을 향한 유아적 목소리나 개랑 산책할 때 시비가 붙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용기, 개와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어 저녁 약속도 취소하고 집으로 달려가는 스피드는 잠재돼 있지만 몰랐던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여름 해가 가을 문턱 앞에서 짧아져 이내 붉은 노을이 바다 위로 내려앉는다. 밤 산책 나온 강아지들의 목에는 네온빛이 반짝이고, 끝나는 휴가가 아쉬운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폭죽을 터뜨린다. 그리고 어둠이 더 내려앉기 전에 하나둘 해변을 떠나간다. 함께 피크닉을 온 친구도 집에 두고 온 고양이를 더는 기다리게 할 수 없다며 일어선다. 조금은 지루했을 인간들의 피크닉을 잘 참아준 호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 역시 짐을 정리한다. 차로 향하는 길 끝에 해변을 뛰어다니는 고양이가 보인다. 함덕 해변을 찾은 개와 고양이 모두가 충만한 하루였기를 바라본다. SNS에선 오늘 친구 추가한 개 친구의 사진이 뜬다. 이렇게 나의 레이어는 추석 보름달처럼 풍성해졌다.



한민경

제주에서 개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와 살며 반려동물의 일상을 기록한 <호호브로 탐라생활> <개만 살던 집에 고양이가 들어왔다>를 썼다. 반려동물 팟캐스트 <니새끼 나도 귀엽다>를 100회까지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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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전혜진
  • 글 한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