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살다 보면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들
회색 고양이, 갈색 개와 먹고 먹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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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splash
기숙사에서 짐을 빼고 집에서 지낸 지 3주째다. 2년 만에 가족과 같이 산다. 식비도 아끼고, 저녁이 되면 대화할 상대도 생기니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기숙사 한 칸보다 큰 집에서 눈을 뜨니 꽤 외로웠다. 내가 일어날 즈음이면 인간 구성원들은 직장으로, 학교로 모두 떠나고 없었다.
그래도 집에 돌아와 좋은 점이 있다면 같이 사는 고양이가 제법 나를 따른다는 것이다. 2년 동안 주말에 얼굴을 비추는 정도로 지냈더니 나를 ‘그냥 가끔 보는 애’ 정도로 대하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아침에 눈뜨면 다리 사이에 언제나 그 애가 있다. 일어나라고 사정해도 절대 비켜주지 않는 고양이 때문에 다시 까무룩 잠든다는 게 문제지만….
반대로 나이 많은 개는 내가 집에 오래 없어도 혹은 매일 있어도 특유의 초연함으로 나를 대한다. 그의 생애 전반에 내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잠시 집을 비우는 정도로는 타격감이 없는 것 같다. 스킨십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람의 손길을 오래 허락하지 않지만, 가끔 침대에 올라올 때 손톱을 세워 벅벅 긁어주면 점점 몸을 기울이면서 자신의 배를 보여주곤 한다. 나는 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동그란 배를 벅벅 긁고, 쿡쿡 누르고, 지문으로 쓰다듬는다. 몇 년 전부터는 몸 구석구석을 주무르는 버릇도 생겼다. 혹시 나도, 얘도 모르는 무언가가 몸에서 자라고 있을까 봐 겁나서.
회색 고양이와 갈색 개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탓에 우리 집 대기의 10% 정도는 얼룩덜룩한 털로 구성돼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건 침대 이불보에 잔뜩 묻어 있거나, 우리 개가 좋아하는 수건에 붙어 있고, 고양이가 머리를 비비는 스크래처에 붙어 있다. 그리고 내가 마시다 남긴 물잔(80% 확률로 다시 입을 댈 것이다)에 동동 떠 있고, 인간 식구들이 먹는 음식 표면에도 붙어 있다. 인간 가족은 스파게티를 먹다가 혀에 걸리는 면 아닌 식감의 물체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기도 하고, 개가 우리에게 체하지 말라고 고상하게 띄워줬을 털을 우악스럽게 손가락으로 건져내고 물을 마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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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그냥 먹는다. 얼마 전에 새벽까지 컴퓨터를 하다가 책상에 있는 물잔을 들었는데, 어두운 방 안의 컴퓨터 화면이 물 표면에 반사되면서 선명히 떠 있는 고양이 털 세 가닥이 보였다. 고양이는 책상에 올라와 내 얼굴에 몸을 비비며 시야를 가리곤 하니 그때 들어간 것일 테다. 나는 잠시 바라보다가 입술을 소심히 내밀어 물을 슬쩍 빨아들였다. 남은 털의 개수를 굳이 세진 않았다.
더 많은 순간 나는 이 애들의 일부분을 먹을 것이다. 나른히 햇살에 늘어진 고양이의 길쭉한 몸을 볼 때면 아무 저항 없이 무릎을 꿇고 그 애의 뱃살에 “우푸푸푸” 소리를 내며 바람을 불 것이므로. 그러면 내 얼굴에 대략 스물여덟 가닥의 회색 털이 붙고 그중 4분의 1 정도는 내 입에 들어갈 텐데 대강 골라내고 나서 포기할 것이다. 또 개가 내 얼굴에 엉덩이를 들이댈 때면 꼬리와 엉덩이에서 탈출한 털들이 내 입에 들어갈 것이고, 나는 몇 가닥을 먹고 말 것이다. 어쩌면 그 애들이 곁에 없을 때가 되어도 나는 냄새가 밴 이불에 고개를 파묻다가 대기 중에 남아 있는 털이 내 숟가락 위에 내려앉을 때마다, 소파 뒤에 있는 장난감 공을 발견할 때마다 조금씩 먹게 될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부속물까지 먹을 수 있다는 섬뜩한 선언은 아니다. 그냥 자연히 얘들과 살다 보면 나는 그들의 털을 먹게 되고, 단지 그것이 이상하지 않을 뿐이다. 사랑하면 조금씩 먹게 되니까. 어쩌면 먼 훗날 애타게 하고 싶어도 절대 할 수 없을 테니까. 너희도 나를 먹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개가 침대로 올라와 다리를 싹싹 핥았다. 내 땀과 피부 조각의 일부를 얘가 먹고 있었다.
(*이 글은 2023년 ‘내가 먹는 것’이라는 테마의 글방 활동 당시 쓰였다.)
김지우
‘구르님’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든다. 뇌병변 장애인의 삶을 담은 <굴러라 구르님>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등을 펴냈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김지우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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