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뉴요커들이 요즘 죄다 속옷바람으로 돌아다니는 이유

뉴욕 패션위크에서 포착한 속옷의 발칙한 변신.

프로필 by 박지우 2025.09.19

속옷은 더 이상 옷 속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뉴욕 패션위크가 증명하듯, 이제 속옷이라는 단어 자체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지도 모르죠.

캘빈 클라인 2026 S/S 컬렉션.

캘빈 클라인 2026 S/S 컬렉션.

레디 투 웨어 속에 감춰져 있던 속옷이 이젠 당당히 런웨이 위로 올라섰습니다. 최근 런웨이와 레드카펫을 휩쓴 ‘노 팬츠’ 열풍에 이어, 속옷과 수영복을 아무렇지 않게 일상복처럼 즐기는 흐름은 결코 엉뚱한 발상이 아니죠. 랄프 로렌마이클 코어스 쇼에 등장한 브라 톱과 클래식 수트의 절묘한 조합, 캘빈 클라인의 속옷 밴드에서 힌트를 얻은 드레스, 샌디 리앙의 레이스와 깅엄 체크 팬티 장식 미니드레스까지,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상상 속에나 존재하던 속옷의 발칙한 변신을 현실로 옮겨두었습니다.


사실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

케어링 재단이 뉴욕 더 풀에서 개최한 '케어링 포 우먼' 만찬에 참석한 다코타 존슨.

케어링 재단이 뉴욕 더 풀에서 개최한 '케어링 포 우먼' 만찬에 참석한 다코타 존슨.

패션은 본래 결코 수줍은 산업이 아니었죠. ‘네이키드 드레스’라는 이름으로 최소한의 속옷만 걸친 듯한 룩은 역사 속에서 숱하게 반복돼왔으니까요. 최근 구찌아르마니 프리베의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에 선 다코타 존슨마고 로비 그리고 이 트렌드를 널리 퍼뜨린 에밀리 라타코프스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네이키드 드레스가 몸 자체를 강조했다면, 이번 시즌의 주인공은 속옷 그 자체죠


“우리는 투명함을 갈망하는 세상에 살고 있고, 패션은 이 욕망을 그대로 구현하는 중입니다.” 블루밍데일스 패션 디렉터 데이비드 틸레뵐의 말입니다. 시스루 오간자 스커트가 브리프를 과감히 드러내고, 레이스 슬립 드레스가 칵테일 드레스를 대신하며, 조형적인 브라가 테일러링 속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는 식이죠. 즉, 마땅히 감춰져야 할 것이 이젠 당당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대가 온 겁니다.


런웨이를 장악한 속옷들

마이클 코어스 2026 S/S 컬렉션.

마이클 코어스 2026 S/S 컬렉션.

얼마 전 레이첼 코미의 쇼에서는 셔츠 안에 새빨간 브라를 과감히 드러낸 룩이 등장했습니다. 마이클 코어스 쇼에서도 모델 아멜리아 그레이 햄린이 착용한 수영복을 연상케 하는 브라 톱이 여름 슈트 룩에 반전을 선사하는 요소로 활용돼 화제를 모았죠. 코미는 이렇게 말합니다. “속옷을 드러내는 건 시크하고 재미있어요. 겉옷이 시스루라면 소재를 강조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브라나 보디수트가 룩의 주인공이 될 수 있죠.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심카이는 이 같은 아이디어를 하의에 적용했습니다. 남녀 모델 모두 허리선 아래로 드러낸 박서 쇼츠에 재킷을 매치하거나, 수영복 톱 혹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등장했죠. “베니스 비치의 스케이트 및 서핑 문화와 영화 <Lords of Dogtown>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바지 위로 보이는 속옷 밴드가 이 무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샌디 리앙 2026 S/S 컬렉션.

샌디 리앙 2026 S/S 컬렉션.

캘빈 클라인 2026 S/S 컬렉션.

캘빈 클라인 2026 S/S 컬렉션.

알투자라는 브라 톱에 테일러드 블레이저를 매치해 관능적인 무드를 강조했고, 마리아 맥마너스는 시그니처 재킷에 과감히 브라를 더했습니다. 애슐린은 브라렛과 러플 스커트로 뉴욕 패션위크 데뷔를 장식했고, 니콜라스 어번은 농구장에서 셔츠를 벗어 어깨에 걸친 남자들에서 영감을 얻어 브라의 디테일을 후디와 재킷에 적용했죠. 캘빈 클라인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베로니카 레오니는 속옷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올려두었습니다. CK 로고가 새겨진 브리프 디테일과 속옷 밴드로 제작한 선글라스까지, 그야말로 속옷이 테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며칠 뒤 샌디 리앙은 깅엄과 새틴 팬티로 장식한 여성스러운 미니드레스를 선보이며 같은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칼마이어 2026 S/S 컬렉션.

칼마이어 2026 S/S 컬렉션.

뉴욕 패션위크 마지막 날 칼마이어는 크로셰 브라를 루즈한 크림 컬러 팬츠와 핀스트라이프 블레이저에 매치해 시크한 데이 룩을, 스커트에는 가디건을 매치해 이브닝 룩을 완성했습니다. 이로써 2026 S/S 시즌의 주인공은 속옷임이 증명됐죠. 언더웨어를 레디 투 웨어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양하겠지만, 가장 좋은 접근법은 인식 자체를 바꾸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레이첼 코미는 이렇게 덧붙였죠. “우선 속옷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게 좋아요. 고정관념이 발목을 잡기 마련이니까요. 누군가 속옷을 바지처럼 입고 싶거나 브라를 톱처럼 입는다면 오히려 더 멋질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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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JESSICA MINK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