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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미국작가조합 제명의 전말

'집필 서비스'에 대한 의견 차이도 원인 중 하나.

프로필 by 라효진 2025.08.13

2023년 미국작가조합(WGA) 파업은 팬데믹이란 긴 터널을 겨우 지나 온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을 뒤흔든 사건이었습니다. 미국배우조합(SAG-AFTRA)까지 파업에 동참하며, 진행 중이던 작품들의 제작이 '올 스톱'됐으니 말이죠. 조합원들은 미국제작사연맹(AMPTP)와의 최소기본협약을 갱신하는 과정에서 OTT 플랫폼 활성화로 변화한 콘텐츠 환경에 맞는 처우 개선과 인공지능(AI) 시대의 디지털 저작권 및 초상관 보호 대책 등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제작사연맹은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의 요구가 가혹하다며 맞섰고요.



두 조합은 글쓰기를 중단하고 카메라 앞에 서기를 멈춘 채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결과적으로 파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작가조합은 약 5개월 동안의 시위 끝에 제작사연맹과의 합의에 성공했는데요. 약 1만1500명의 조합원 중에는 박찬욱 감독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작가조합이 2023년 파업 당시 규정을 위반했다며 박 감독을 제명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현지 언론은 작가 7명이 조합으로부터 징계를 받았고, 여기에 HBO 시리즈 <동조자> 극본을 쓴 박 감독과 돈 매켈러가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박 감독 등이 파업 기간에 <동조자>를 쓴 것이 제명 원인일 것으로 짐작돼요. 그는 따로 조합 측에 항소를 하지 않고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유사한 징계를 받은 작가 중에는 A&E <베이츠 모텔> 시리즈 각본에 참여한 안소니 시프리아노도 있었어요.



박 감독은 항소를 포기했지만 거기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합니다. 그의 입장은 2023년 5월 2일 파업 시작 시점에 이미 <동조자>의 대본이 완성됐고 촬영까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조합의 '파업 중 집필 금지' 규정을 어긴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파업 기간 중 <동조자> 편집에 참여했으나 이는 집필 행위가 아니며, 새로운 대본 작성 및 수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거죠.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조합은 그조차 '집필 서비스'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두고 미국감독조합(DGA)은 조합원 개인에게 파업 기간 동안 편집을 수행할 계약상 의무가 있을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조합 재판위원회는 박 감독 등의 파업 중 규정 위반이 의도치 않은 것이며 작업 중 역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며 비공개 경고 정도를 권했습니다. 그러나 조합 이사회는 이를 무시하고 제명을 결정했다는 것이 박 감독 측의 설명입니다. 단, 박 감독이 항소를 하지 않은 건 <어쩔수가없다>의 후반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업계에서는 작가조합의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에 처해질 경우 조합과 단체협약을 맺은 스튜디오와의 협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 조합 선거 투표 및 사무실 근무, 행사 참석이 불가능하며 조합상을 받을 자격도 사라집니다. 게다가 조합은 자발적으로 탈퇴했거나 제명된 회원의 이름을 올려 둔 사이트까지 운영하고 있어 작가로서 이미지 타격을 걱정하게 되고요. 하지만 이는 미국에서 불공정 노동 관행으로 여겨지는 일이기도 해요. 사실상 조합에 회비를 내면 취업 기회가 제한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박 감독도 제명에 대해 따로 액션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군요.

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영화 <아가씨> 스틸컷 · Getty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