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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소외된다, 그건 '어쩔수가없다'

노동하는 인간, 특히 직장인이라면 도무지 어쩔 수가 없는 거대한 흐름이 한 편의 잔혹동화로 재탄생했다.

프로필 by 라효진 2025.09.24

*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일부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뜨끔했다. 제법 매력적으로 보이는 직장이 있었다. 몇 없는 그 자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이었다. 한 번 채워지면 도통 비워지질 않았다. 동료들에게는 우스갯소리 반, 볼멘소리 반으로 "그 자린 누구 하나 암살하지 않는 이상 안 나올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계획은 커녕 구체적 상상조차 해 본 적은 없다. <어쩔수가없다>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암살을 실행에 옮기려는 한 남자, 만수(이병헌)가 나온다. 뜨끔하면서도 아차 싶었다. 그 자리가 물리적(?)으로 비워진다고 해서 내 자리가 된다는 보장이 없음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영화 <어쩔수가 없다> 스틸컷

영화 <어쩔수가 없다> 스틸컷


제지회사 25년 경력 만수의 삶은 충실했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이었다. 그의 앞에는 부장이라는 직함, 특수제지 노하우, 화목한 가족, 너른 마당에 온실까지 있는 전원주택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회사는 '도끼'를 들고 노동자들의 목을 쳐내기 시작했다. '해고는 살인'이라 외치며 해고자 명단 제출을 거부하던 만수도 살아남진 못했다. 오랫동안 누리던 걸 뺏길 때의 좌절은 애초에 없던 걸 갈망하며 겪는 감정과는 다르다. 3개월 동안 '뺏긴 것' 하나라도 되찾아 보려 애를 쓰지만, 애매하게 젊은 만수의 재취업은 쉽지 않다.


기적처럼 나타난 단 하나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만수는 극단적인 결심을 한다. 나라와 가족에 헌신하며 살았던 아버지의 총을 쥐고, 그 자리를 탐낼 만한 모든 후보자들을 제거하자고. 심지어는 지원하려는 회사 사장까지 죽이려고 한다. 총의 주인이 어떤 죽음을 맞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한 채다. 이 과정에서 만수는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제지업계 베테랑 범모(이성민)과 시조(차승원), 그리고 제지회사 사장 선출(박희순)과 얽히게 된다.


영화 <어쩔수가 없다> 스틸컷

영화 <어쩔수가 없다> 스틸컷


영화는 박찬욱 특유의 장식적이고 의미심장한 연출 탓에 일견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내러티브와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성실히 직장 생활을 해 온 덕에 남들 만큼은 갖추고 사는 중년 남자가 실업 후 취직을 목적으로 한 살인을 계획한다'는 내용에서 칼 마르크스의 '소외' 개념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특히 마르크스가 언급한 네 번째 소외, '인간에 의한 인간의 소외'는 극 중 인물들 사이 공기처럼 작용한다. 모두가 이 소외의 사슬을 끊으려 하지 않고 되려 강화에 기여한다. 이들이 악인이라서가 아니다. 취직 하려고 살인을 계획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 것이다. 다만 경쟁이 자연 그 자체인 구조에서 소외는 대전제에 가깝다. 전부 '어쩔 수가 없는' 일들인 것이다.


<어쩔수가없다>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보편적 냉소를 한국의 특수한 지형으로 재편한다. 대개 '실업'의 앞에는 '청년'이 붙지만 영화에 청년은 등장하지 않는다. 직업을 잃은 만수와 범모, 시조는 청년을 관리하던 중년이다. 조직에선 위보다 아래가 훨씬 많은 관리자였다. 그런데 25년을 걸려 얻은 자리가 25분도 기다려 주지 않고 사라졌다. 청년이고 중년이고 가리지 않는 소외의 잔혹한 평등성은 여러모로 닮은 이 인물들을 통해 번쩍이며 가시화한다.


영화 <어쩔수가 없다> 스틸컷

영화 <어쩔수가 없다> 스틸컷


"우리가 종이를 안 쓰면 누가 쓸까요?"라던 만수가 AI 기술이 탑재된 조작 패드를 써서 홀로 커다란 공장을 돌리는 대목은 영화 속 그 어떤 유혈의 순간보다 공포스럽다. 전 세계 '사용자'들이 일단 어디가 됐든 일단 AI를 접목시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광경을 볼 때와 마찬가지다. '왜, 여기에, 어떻게 AI를 써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속도보다 덮어놓고 접붙여 보자는 논리가 몇 배는 빠르다. 어떤 분야에서 AI를 학습시키는 건 스스로 들어갈 관을 짜는 행위와 마찬가지임에도 말이다. 그 관 뚜껑에 못을 박아 주는 건 AI에게 밀려 몇 남지 않은 후대의 노동자일지도 모른다. '노동하는 인간은 사라질 것'이라는 도시괴담 같은 이야기가 픽션으로나마 눈 앞에서 펼쳐진다는 건 확실히 잔혹한 경험이다. 아쉬운 건 유독 매 순간에 힘을 준 듯한 장식적 미장센이 <어쩔수가없다>에는 거추장스러워 보인다는 점이다. 마치 극 중에서 선출을 죽이려 옥상에 올라간 만수가 집어 던질 화분을 고르다가 그만 살인에 실패하는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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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