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가벼움의 건축, 포용의 건축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바래'의 건축.

프로필 by 윤정훈 2025.02.06

BARE

가볍고 유연한 공간의 힘, 바래 전진홍·최윤희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함께 개발한 조립식 이동형 음압 병동 ‘에어빔 파빌리온’.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함께 개발한 조립식 이동형 음압 병동 ‘에어빔 파빌리온’.


재난 발생 시 머리를 보호하는 ‘에어 캡(Air Cap)’을 모듈로 활용한 ‘에어 캡 파빌리온’.

재난 발생 시 머리를 보호하는 ‘에어 캡(Air Cap)’을 모듈로 활용한 ‘에어 캡 파빌리온’.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건축물, 딱딱하지 않고 유연한 건축물, 빠르게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건축물을 만들어왔다
건축에 담긴 ‘시간성’에 관심이 많다. 건축의 긴 역사 속엔 ‘영속성을 지닌 기념비적 건축’에 대한 열망이 자리한다. 불변의 가치이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탐구하고 싶은 지점은 좀 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는 오늘날의 환경과 조응하는 건축이 그것이다. 기후위기나 디지털 대전환, 탈성장·다원사회 시대에서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반응하는 건축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무관심하고 저항하는 건축보다 가볍고 움직이는 ‘포용의 건축’을 지향한다. 이것이 가벼운 건축이 아닌 ‘가벼움의 건축(Architecture of Lightness)’을 탐구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보편적 건축이 지극히 현실적 조건과 제약에 뿌리를 둔다면, 바래의 건축은 미래와 상상에 근간을 두고 있다. 바래에게 공간을 만드는 일이란
우리 작업도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법과 제도 등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관점 때문에 현실과 괴리돼 보이는 것 같다. 전형적인 건물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인 것도 있겠다. 건축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매체이며, 단순한 용도나 기능 이상의 무엇이 담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공간을 만들 때 ‘생각의 힘’을 훈련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우리 작업은 ‘어떻게 지을 것인가’가 아닌 ‘왜 짓는가’를 고민하는 일에 더 가깝다.


에어빔 파빌리온 내부.

에어빔 파빌리온 내부.

을지로 일대에서 제조 과정 중 발생하는 부산물을 수집해 재분류하는 로봇과 네트워크를 고안한 ‘루핑 시티’ 프로젝트.

을지로 일대에서 제조 과정 중 발생하는 부산물을 수집해 재분류하는 로봇과 네트워크를 고안한 ‘루핑 시티’ 프로젝트.


지난 11월 노원달빛산책 2024에서 선보인 야외 미디어 설치미술 작품 ‘공기 울림’.

지난 11월 노원달빛산책 2024에서 선보인 야외 미디어 설치미술 작품 ‘공기 울림’.


버려지는 미역을 재료로 재가공한 쉼터 ‘에어 폴리(Air Folly)’의 바닥.

버려지는 미역을 재료로 재가공한 쉼터 ‘에어 폴리(Air Folly)’의 바닥.


‘에어빔 파빌리온(AirBeam Pavilion)’은 한국과학기술원과 함께 개발한 조립식 이동형 음압 병동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정점에 달해 음압 병동이 모자랐던 2020년 겨울, 실제로 설치돼 사용됐다
‘에어빔 파빌리온’은 이틀 만에 설치해 6개월가량 시범 운영됐다. 안전성과 관련된 갖가지 인증 절차를 통과해 임시 병동으로 인증받은 프로젝트다. 미술관이나 전시장을 떠나 실생활에서 작동한 사례라 우리에게도 의미가 크다. 프로토타입을 넘어서는 것이 다음 목표다. 에어빔 구조가 특수 상황이 아닌 일상에서 사용되는 모습을 구상 중이다.

공기를 주입해 만든 모듈로 모자나 의자부터 파빌리온, 음압 병동까지 바래의 프로젝트는 늘 다음이 궁금해진다. 공기와 모듈로 구현하고 싶은 또 다른 공간이 있나
2022년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열린 <해비타트 원 Habitat One> 전시 출품작이 대답이 될 수도 있겠다. 탄소중립 시대에 지속 가능한 셸터를 상상하는 것이 주제였다. 다양한 내·외부 환경에 노출돼 스스로 공간을 만드는 로봇 ‘에어리 Air(e)’를 제작하고, 이것으로 이뤄진 셸터 구조물을 선보였다. 특정 형상을 만들기보다 가변식 모듈을 이용해 ‘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의 가능성을 열어보고 싶었다. 이 다음은 우리도 기대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 전시에서 디지털 세계와 데이터를 주제로 선보인 ‘에어 마운트(Air Mount).

국립현대미술관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 전시에서 디지털 세계와 데이터를 주제로 선보인 ‘에어 마운트(Air Mount).


휴식이 필요할 때 나타나 스스로 셸터를 만드는 로봇 유닛 ‘에어리(Air(e))’.

휴식이 필요할 때 나타나 스스로 셸터를 만드는 로봇 유닛 ‘에어리(Air(e))’.


그간 만들어온 것들은 언뜻 설치미술 작품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바래의 작품은 일반적인 예술 작품과 어떻게 다르나
공간의 스케일로 확장돼 실제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 아닐까? 건축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사회와 맞닿은 부분도 많아 ‘우리네 삶’에 대한 환기를 돕는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예술 작품이 그러하듯 자신과 주변에 대한 여러 감정을 일깨워주는 역할도 할 것이다. 그래서 현대미술 전시 등에서 우리 작업이 호출되는 것 아닐까.

올해 제5차 광주폴리의 일환으로 제작된 ‘에어 폴리(Air Folly)’는 미역을 재활용한 재료로 만든 쉼터다. 기존에 사용하던 재료에 대한 고민이 있었나
하나둘 작업물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가 ‘아름다운 쓰레기’를 만들고 있지 않나 하는 자기비판을 하게 됐다. 최초의 시도는 지난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순환 도시 Circular City>전이었다. 당시 우리가 만들어낸 수많은 PVC와 폴리우레탄 오브제가 해양에 부유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겼다. ‘에어 폴리’는 형태가 아닌 재료를 디자인한 프로젝트다. 버려진 자원을 활용하고 다시 자연으로 보내는 ‘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실질적 사용 연한을 디자인하고 폐기 방식을 고민하며, 생산의 관점이 아닌 ‘소멸의 관점’에서 ‘어떻게 잘 사라질까’를 생각했다. 생애주기를 갖는 건축 공간을 구현한 셈이다. 전남 고흥 지역에서는 매년 미역 생산의 부산물(미역귀, 줄기, 뿌리 등) 약 9만 톤이 바다에 버려진다. 이를 수거해 구조물을 이루는 재료로 활용했다. 해조 생분해성 원료를 사출해 만든 견고한 바닥, 비닐을 압출해 만든 구조, 막으로 이뤄진다. 공기주입식 구조에 분리 가능한 모듈로 조립과 해체가 용이한 이동식 시스템이다. 현재 특허를 출원해 일상에서 다양한 쓰임을 모색하고 있다.

에어 캡 파빌리온의 디테일.

에어 캡 파빌리온의 디테일.


건축가 박경과 함께 진행한 ‘새로운 유라시아 파빌리온’ 프로젝트.

건축가 박경과 함께 진행한 ‘새로운 유라시아 파빌리온’ 프로젝트.


2014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고유한 철학을 유지해 왔다. 무엇이 동력이 되나
우리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보내주는 응원. 근래 스튜디오 구성원들이 각기 다른 배경의 사람들로 유입돼 우리 작업이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될 것으로 기대한다.

건축가로서 품은 이상에 얼마큼 도달했을까?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바래’라는 이름처럼 여러 사람의 바람을 잘 담아내는 건축을 일상에서 구현하고 싶다. 지난 10년이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을 사회와 호흡하며 찾아가는 여정이었다면 이제 건물로 구현하는 과제가 남은 것 같다. 앞으로의 10년은 우리가 축적해 온 생각을 더 큰 스케일로 키워나가는 과정이 될 것 같다. 건축가라는 직업의 수명은 꽤 긴 편이지만, 그때 못하면 다음 10년을 기약하기로. 내년에 작품집을 낼 예정이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 COURTESY OF BARE